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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인환 Jan 23. 2024

[소설] '하루키'를 읽게 되는 이유_도시와 그 불확실





 무라카미 하루키의 책


 읽고 있으나, 읽고 있지 않은 듯 하고, 읽었으나 읽지 않은 듯하다. 명료할 수 없다. 전체가 다가와 하나가 되는 듯하다. 무엇을 말하는지 알 것 같으면서 모르겠고, 모르겠으며 알 것 같다.


 소설 줄거리 따위가 '맥'이 아닐 수 있나. 그러나 그럴 수 있다. 줄거리가 아니라 '하루키'의 글이라서다. 꿈처럼 절반은 잊혀지고 절반은 흐려지고 나머지는 모호해는 기억 한편 같은 글.


 '생각보다 별거 없네'. 그랬다. 명성에 비해 별 것 없네. 그랬다. 흥미진진한 플롯도 없다. 눈을 뗄 수 없을 서사도 없다. 대단한 소재도 아니거니와 그냥 뜨뜻미지근하다. 그러던 것이 원래 있던 체온인 것 마냥 그냥 그렇다. 그렇게 완독된 것도 잊혀질 만큼 무존재하게 존재하다가, 어느 순간, 이렇다.



 '그 기억이...나의 기억이던가... 꿈이었던가... 어디선가 들은 내용이던가...' 



 나중에 보면 '하루키'의 것이다. 강력하지 않은 은은한 향이 털어도 털어지지 않는 여향으로 피부에 묻어 버린다.


 별것 없던 것이, 아무리 흔들고 털어도 털어지지 않는다. 그 사실을 알게 되면 결국 묻어 버렸구나, 인정한다. 그러면 다시 하루키의 글을 찾게 된다. 단순한 문자 나열일 뿐인데, 글이 정체성을 가졌다. 스믈스믈 아지랑이가 공기에 묻듯. 보이지 않는 수증기가 적시는 듯. 날카롭지도 명료하지는 않다. 밑그림 없이 수채화처럼 은은하다.



 가판대에 하루키 책이 계속 보인다. 


'하루키스러운 글이겠지.', 외면한다.


다시 그것이 보인다. 그러나 외면한다.


몇 번이 되고, 다시 그 앞에서 그것을 발견한다.


'하루키스러운 글이겠지'.


그러나 몇 번을 그렇게 하다가 어느새 나는 그 책을 읽고 있다. 왜 나는 하루키의 글을 읽고 있나. 그것은 그냥 그렇게 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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