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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인환 Feb 07. 2024

[소설] '몽환의 숲'이 떠오르는 소설_도시와 그 불확

 '키네틱 플로우'의 '몽환의 숲'은 '이루마' 반주에 독특한 가사가 매력적이다. 한때, 이 노래를 무한 반복으로 들었던 기억이 있다. 누군가의 말에 따르면, 슬플 때는 멜로디가 들리고, 즐거울 때는 가사가 들린단다. 가사는 제목처럼 몽환적이다. 몽환의 숲은 오감을 초월한 곳으로 묘사도니다. 화날일도 아픔도 없다. 이 노래에서 주인공은 소설과 같이 한 남자다. 새벽을 비추는 초생달 밑 술취한 도심을 걷는 남성의 이야기다. 이야기는 도심의 남성이 갑자기 '몽환의 숲'으로 들어가며 시작된다. 몽환의 숲에서는 모든 것이 초월적이다. 거기서 '그'는 '그녀'를 만난다. 오감을 비롯한 모든 것을 초월한 그곳에서의 초월적 교감을 나눈다. 그리고 그는 다시 현실로 복귀한다.

 4분짜리 짧은 이 음악은 2006년에 발표한 '키네틱 플로우'의 데뷔 앨범 수록곡이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도시와 그 불확실한 벽'을 읽는 내내, 이 음악이 떠올랐다. 물론 음악이 주는 분위기와 소설의 주는 분위기는 완전 다르다. 소설은 가까이 보기에 방향없이 감정의 흐름만을 전개한다. 그렇게 세계관을 확장한다. 다만 소설을 멀리서 보면, '몽환의 숲'이 떠오른다. 음악을 먼저 알아서 그럴까. 마치 이 노래를 소설화한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하루키'가 말하고자 했던 '불확실한 벽'으로 둘러 싸인 도시는 분명, '몽환의 숲'의 모양을 하고 있었다.

 술 파는 곳 없어도 마음만 먹으면 취할 수 있고, 나뭇잎는 하늘색, 하늘은 연두색, 눈빛은 보라색, 모든 것이 정반대이고 오감을 초월해 버린 그곳. 하루키는 도시를 그렇게 설명하지 않았다. 다만 내가 읽기에 그렇게 그려진다. 그곳에서 나오면 회색빛 현실이 나오고 다시 몽환의 숲으로 들어가면 알록달록한 세계가 펼쳐진다. 소설이 그렇게 읽힌 이유는 음악 때문일 것이다.

 하루키 소설의 줄거리를 딱히 읊는 것은 의미가 없다. 하루키는 '줄거리'가 아니라 '감정묘사'와 '심리묘사'를 섬세하게 하는 작가다. 고로 소설의 줄거리가 어떤지는 하등 중요치 않다.

 줄거리가 의미를 상실하면 소설은 현실과 비현실을 오가는 매우 몽환적인 이야기를 담아도 어색하지 않다. 현실에서 마주하는 비현실의 묘사는 매우 현실같았고, 비현실에서 마주하는 현실은 매우 비현실 같았다. 이야기가 현실과 비현실을 오가며 심리와 감정을 묘사하는 동안 나는 여지 없이 주인공에 이입했다. 하루키의 묘사가 이입되어 반쯤 내게 이식됐다. 감정을 읽으며 주인공과 동화되는 것은 꽤 매력적인 경험이다. 그의 글을 다 읽고나면 이 기억은 나의 기억이 된다.

 하루키의 글은 '내면'의 중심으로 읽힌다. 고로 밖으로 어떤 행동이 일어나는지가 가려진다. 주인공은 생각해보면 꽤 비현실적인 행동을 한다. 다만 감정묘사가 탁월하다보니, 비현실적인 행동이 현실적으로 보인다. 누군가에게 유령의 이야기를 한다거나, 벽으로 둘러 쌓인 알 수 없는 도시에 대한 이야기를 한다거나, 모르는 여자에게 말을 걸어 단숨에 연인관계로 발전한다는 설정은 서술 방식에 따라 비현실적이고 허무맹랑할 수도 있다. 다만 그것이 비현실적이라 느껴지지 않는 이유는 설득하는 능력이 탁월하기 때문이다.

 어쨌건 책을 읽으며 느꼈다. 분명하건데 하루키의 소설 속 주인공의 MBTI는 INFJ일 것이다. 하루키의 MBTI도 INFJ일 것 같다. 최근 MBTI에 심취해 있어, 어쩐지 그럴 것 같다는 생각을 하며 읽게 된다. MBTI 검사를 하면 INFJ와 INTJ가 반반씩 오고 가는 1인으로써, 이번 글을 읽으면 나의 MBTI도 한동안 INFJ가 될 듯하다. 근래 읽는 책의 여운에 따라 내 성향이 바뀌는 것은 어쩔 수 없는 모양이다.

 연초부터 심한 독감에 시달렸다. 기운은 지금도 남아 있다. 마른 기침이 한 달도 넘게 멈추지 않는다. 아이 입학 준비에 이것저것 신경 쓸 것도 많다. 그밖에 다양한 일들이 쉴새없이 몰아쳐 정신없다. 와중, 700쪽이 넘는 벽돌 소설책을 읽느라, 시간이 꽤 걸렸다. 그러나 모든 일을 다 마치고 새벽 1시, 침실에서 이 책을 읽는 일은 새로운 감각으로 샤워를 하는 느낌이 든다. 2024년, 꽤 다난하게 시작한 한해지만, 이 책으로 꽤 위안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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