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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인환 Feb 08. 2024

[육아] 빠지다_다율이 이빠진 날

 사람이 귀가 빠지고 영아가 유아가 되면 이가 빠지기 시작한다. 아이가 이가 빠지는 걸 보면 '환골탈태'가 떠오른다. 도마뱀이 꼬리를 자르고 재생하는 것처럼 빠진 자리에는 새로운 이가 자라난다. 신기한 경험이다. 인간만 그런가 봤더니, 고양이, 말처럼 다른 포유동물도 비슷한 경험을 한단다. 이가 빠지고 자라면 두 번째로 자라는 치아는 영구치가 된다.

 병원에서 아이의 치아 X-Ray 사진을 찍은 적 있다. 귀엽기만한 얼굴에 수 십개의 치아가 있다. 말 그대로 수 십개의 치아다. 사용하고 있는 젖니 아래로 많은 영구치가 대기하고 있다. 그 모습은 사뭇 요상했는데, 한 번도 생각해 본 적 없는 것을 봤기 때문일 것이다. 어린 시절, 나의 치아 X-Ray를 본 적은 없다. 이를 치과에서 뺀다는 사실조차 낯설었다. 

 '치아를 병원에서 뺀다는 건, 서울에서 자란 귀한 아이들이나 하는 일 아냐.'

7, 8살이 되면 부모님을 따라, 밭에서 흙을 만지고 놀던 시기, 사고의 흐름은 당연했다. 실제로 나의 이는 아버지의 집게손에 의해 모두 빠졌다.

 아버지는 흔들리는 이를 빼기 위해, 입 안으로 집게 손을 넣으셨다. 그리고 '뽁'하고 모두 빼셨다. 이가 빠지면 휴지를 돌돌말고 입에 물고 있다가 어느 정도 뒤에 뱉었다. 빨갛게 물든 휴지를 뱉은 뒤에 혀끝으로 이가 나간 자리를 스믈스믈 만져본다. 입속의 압력으로 입술이 나간 치아 자리로 들어온다. 그 모호한 기분, 말할 때마다 바람이 술술 나가는 그 묘한 기분이 지나고 나면 까끌까끌 구멍난 자리에 무언가가 나오기 시작한다. 돌이켜 보건데, 그 시기가 아이의 이 시기와 같은 시기다. 그 당시 '나'보다, 그 당시 '아버지'에 대한 이상한 호기심이 들었다.

 아이의 치아를 내가 빼지 못하는 이유는 여럿있다. 그 가장 첫째는 단 한번도 해 본 적 없는 경험이다. 내가 아이의 이를 뺄 수 있을까? TV나 드라마에서는 방문에 실을 달고 뽑던데, 혹은 실을 달고 이마를 쳐서 빼던데... 가만보면 당시 아버지의 나이가 지금 내 나이보다 한참은 어렸다. 분명 아버지에게 그 경험은 처음이셨을 텐데, 어찌 나의 처음과는 사뭇 다르다.

 아버지는 남들보다 일찍 결혼을 하셨다. 만 스물 서넛 정도에 결혼을 하셨다. 결혼이 일렀던 당시에도 꽤 이른 편이었다. 나는 아버지 나이 스물 여섯에 태어났다. 고로 내가 여덟살이 됐을 때, 아버지는 겨우 만 서른 둘을 넘으셨다. 그때, 아버지는 모르는 것이 없으셨고 꽤 커다란 산처럼 보였는데, 왜 난 아직도 아이와 함께 실수투성이의 첫경험들을 치루는 것일까. 생각해본다.

 어제는 한참 잠을 자는데, 꽤 악몽에 가까운 꿈을 꾸었다. 악몽은 아니다. 아마 어제 읽다 잠든 책의 영향이다. '민음사'의 '지하에서의 수기'라는 책을 읽고 있었는데, '인간'에 대한 고찰이 담겨져 있었다. 소설의 주인공의 생각을 이어 받아, 심오하고 철학적인 고민을 꿈에서 이어갔다. 그 고민을 한다고 해서, 해답을 찾았다고 해서 크게 달라지는 건 없다. 그러나 꿈에서는 그것이 모든 것인 마냥 심각했다. 꿈을 마치고 아이와 치과를 갔을 때, 충분히 자지 못한 피로가 몰려왔다. 아이가 물었다.

"아빠, 이걸 베개 밑에 놓고자면 이빨 요정이가 새 이빨로 가져와?"

아니라고 답했다. 이빨 요정은 미국에 살아서, 미국 아이들 이빨만 책임진다고 했다. 그럼 자기 이빨은 어떡하느냐고 묻는다. 대답했다.

 "우리나라는 지붕에 던져야 돼. 그러면 까치가 물어갔다가, 새 이빨로 가져다줘."

아이는 고개를 끄덕였다. 의사 선생님은 아이에게 30분 뒤 부터 밥을 먹을 수 있다고 했다. 빨대는 사용할 수 없단다. 점심을 건너띄고 2시 반이 넘었다. 너무 늦은 점심이다. 이를 빼고 먹으려다보니, 병원 점심 시간을 기다리느라, 점심식사를 못했다. 무엇이 먹고 싶냐 물었다.

 '스테이크...'

  오랫만에 외식이라 스테이크를 먹자고 했다. 한참을 가는데 '맥도날드'가 보인다. 아이들은 '스테이크'에서 '맥도날드'로 급히 매뉴를 바꾼다. 심장이 덜컹했다가, 다시 올라와 제자리를 찾았다. 굳이 비싸지 않아도 만족할 수 있다면 그것이 최고다. 아이들과 맥도날드로 들어간다.

 "빨대는 안돼."

하율이가 말했다. 다율이는 딸기쉐이크에 빨대를 꽂지 않았다. 그러자 하율이가 말했다. 

"그럼 나도 그냥 먹을께."

빨대 세 개를 받고 나 또한 빨대 없이 먹기로 했다. 아이는 한참을 만족하며 먹는다. 아이를 키우다보면 혼이 쏙하고 빠진다.

 귀가 빠지고, 이가 빠지고, 혼이 빠지고, 마지막으로는 머리가 빠지려나, 그게 아니라면 머리가 나빠지려나...

 하율이가 옆테이블을 보며 말했다.

"아빠, 왜 다른 언니랑 오빠들은 핸드폰 보는데, 우리는 보면 안돼?"

"음... 하율아."

"응?"

"아빠가 끝말잇기라는 놀이 알려줄까?"

"뭔데?"

한참을 끝말잇기를 하다보니 스마트폰에 대한 불만은 잊어 버린 듯하다. 물론 끝말잇기는 엉망진창이다. 끝말을 잇자니, 말을 따라하거나 첫말을 계속하고 순서도 엉망이다. 그러나 어쨌건 웃으며 식사를 한다.

 말놀이를 한참을 하니, 내가 가르치지 않은 어휘도 꽤 많이 안다. 가만보면 부모의 영향은 꽤 제한적이다. 아이가 스스로 잘 배우고 자라나는 느낌이다.

끝말잇기...

앞서 말한 '빠진다'라는 끝말을 이어본다.

'음.. 호기심에 빠지고, 다음에는 사랑에 빠지고, 책임감에 빠지고, 추억에 빠지고..'

별것 아니지만 생각해보면 스마트폰 없이도 어른이고 아이고 충분히 놀 수 있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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