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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인환 Feb 09. 2024

[소설] 지하부터 올라오는 찌질한 고백_지하로부터의 수

 일상 생활에서 사용하는 어휘의 갯수는 3천에서 5천 단어 사이다. 대부분의 사람은 반복되는 일상에서 사용하는 언어 몇 가지를 돌려가며 쓴다. 그러다보면 당연스레 '어휘력'은 줄어든다. 소설이나 전문교양서를 읽게 되면, 사람이 만나게 되는 어휘는 1만에서 2만 범위를 만나게 되는데 일상 어휘에서 사용하지 않는 어휘를 만난다. 일상 언어만 사용하게 되면 모든 감정과 상황에 대해 모호한 표현만 사용하게 된다. 즉, 표현력이 준다. '표현력'은 소통력과 직결된다. 사회에서 '소통'의 결함이 생기면 그야말로 치명적이다.

 김영하 작가는 한예종에서 강의하던 시절, 학생들에게 금지한 말이 있다. '짜증난다'는 표현이다. 가령, '서운하다', '억울하다', '속상하다' 등의 표현이 모두 '짜증난다'로 통일된다. 주로 사용하지 않는 어휘는 망강된다. 이런 '언어 퇴화'는 소통 능력의 부재로도 작용되지만, 자신의 감정에 대한 객관적인 직관도 어렵게 한다. '마음공부'에는 '감정에 이름 붙이기'라는 것이 있다. 감정에 이름을 붙임으로써, 자신의 감정을 더 잘 이해하고 조절할 수 있게 하는 것이다. 이렇게 '감정명명'을 하면, '스트레스, 불안, 우울'에 대해 면역이 생긴다. 자신의 감정에 대해 명확히 하는 이들은 자신의 필요와 욕구에 대해 더 잘 인지한다. 이들은 자신감과 자기결정력, 자기객관성이 높다. 또한 타인과 의사소통이 뛰어나고 타인의 감정을 더 잘 이해한다. 고로 사회적 상호작용, 갈등해결능력, 리더십 능력 등 여러 영역에서 꽤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게 된다.

 비슷한 예로 '대박'이라는 표현이 있다. '대박'이라는 표현은 오래 전 부터 사용해왔을 것 같지만, 의외로 '신조어'에 해당한다. 이 신조어는 너무 무분별하게 사용된다. 놀랐거나, 슬프거나, 기쁘거나, 화나거나, 당황할 때, 모든 상황에서 '대박'은 통용된다. 이처럼 하나의 단어가 가지는 포옹성이 넓어지면, 단어의 의미는 점차 모호해진다. 또한 구체적 뉘앙스나 감정 전달에도 한계를 갖는다. 의미가 확장되고 희석되면 사건과 감정 전달에 있어서 정확성이 떨어진다. 소통의 명확성을 인지하기 위해서 다양한 어휘 표현은 중요하다.

 '도스토예프스키'의 '지하로부터의 수필'이라는 작품을 보면 명확히 정의되지 않은 주인공의 성격이 다양한 방식으로 표현된다. 주인공이 세상과 사회를 바라보는 시선은 '우월감'에 기인한다. 세계를 바라보는 시선에서 자신의 지적능력과 사회적 비판에 대한 깊은 이해를 갖는다. 다만 아이러니하게도 그의 심리 어떤 곳에서는 '사회적 상호작용'에 끊임없이 실패하는 자신에 대한 열등감과 무능, 무가치를 느낀다. 이런 내면의 자기모순과 갈등 속에서 그는 내적 고뇌를 겪는다. 사람을 정의하기에 수학이나 도표처럼 떨어지지 않는다. 2 곱하기 2는 4라는 자연의 법칙과 다르게, 인간의 본성에 있어 때로 계산하거나 예측하거나 측정할 수 없는 부분이 반드시 존재한다. 그런 의미에서 인간에게 2 곱하기 2는 5이거나 8일 수 있다.

 인간은 이성적인 존재임이 틀림없으나 멀리 보기에 이익에 반하는 행동을 서슴없이 행한다. 아주 도덕적일 것 같은 누군가도 결국 타락한 채로 말로를 좋지 못하게 마무리 짓는 경우도 많다.

 이처럼 적확하지 않는 모호한 '내면적 갈등과 표출'은 간혹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이 된다. 이런 갈등은 우리 모두에게 있다. 일상적 언어로 이런 모순적이고 허세 가득한 감정을 '찌질하다'고 표현한다.

 지난 인연에 대한 애착과 증오가 함께 공존하며 '미련'이라는 모호한 상태가 된다. 가슴 깊은 곳에서부터 올라오는 증오심과 다시, 아련하게 떠오르는 추억은 사랑과 증오라는 두 가지 감정을 동시에 느끼도록 한다. 때로는 폭력적이고 때로는 그렇지 않은 많은 연인들이 갖는 감정이 그렇다.

 아이에게 사랑을 듬뿍 주겠다는 마음은 다시, 더 나은 인간이 되도록 교육해야 한다는 욕심과 더불어 사랑과 그렇지 않음의 중간 지대에서 아이에게 혼란을 주기도 한다.

 때로 우리는 상대적 무능함을 감추기 위해, 더 나은 어떤 모습으로 스스로를 치장하고 그 우월감과 열등감 사이의 모순에 빠진다. 이런 정체성의 위기와 자아 분열은 때로 명확히 하나의 감정으로 표현할 수 없다.

 클레오파트라하면 자신의 열등감과 우월감이 복합적인 캐릭터다. 그는 호아금 핀으로 자기 여자 노예들의 젖가슴을 찌르는 걸 좋아했다. 여자 노예들이 고통으로 비명을 지르거나 몸을 비틀면 그로써 쾌감을 갖곤 했다. 아주 오래된 인간의 '우월감'은 사실 깊은 내면의 '열등감'에서 비롯한다. 히틀러나 스탈린의 과거를 살펴도 그들의 원동력이 됐던 우월감 아래, 열등감이 항상 아래로 있었다.

 소설 '지하로부터의 수기'는 1편과 2편으로 나눠져 있다. 난데없이 인간에 대한 고찰을 독백으로 읊어대는 1편의 심오함은 소설에 대한 접근성을 어렵게 할지도 모른다. 어쩌면 난해한 철학적 의미를 전달하고자 하는 긴 장문들은 따지고보면 2편에서 주인공이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에 대한 단서가 된다.

 2편이 되면 소설은 본격적으로 외부적인 사건들을 나열해 나간다. 주인공은 자신의 찌질함의 자기 모순 속에서, 보다 나은 이에게 열등감을 갖고, 그 열등감의 연료를 이용하여 우월감을 가지려한다. 다만 그 우월감의 본질은 열등감에서 비롯하기에, 결국 겉에서 보여지기에 그는 모순적이고 우스운 사람처럼 행동한다. 때로는 자기 앞가림도 제대로 하지 못하며 누군가를 가르치고, 자신의 처지도 객관적으로 보지 못하면서 누군가를 비웃거나 욕하기도 한다. 다만 열등감은 내면에 숨어져 있고, 우월감은 겉으로 표출되는 것이기에, 우리 모두는 허세 가득한 찌질함으로 사회를 쌓아가고 있다. 누가 누구를 가르칠 수 있으며, 누가 누구의 위가 되고 아래가 될 수 있는가. 열등감을 연료로 삼아 우월함을 느끼는 주제에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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