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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인환 Mar 07. 2024

[문화] CUL8R는 무슨 뜻인가_생강 산문과 운문

'CUl8r'

이 괴상망측하게 생긴 단어는 사실 문장이다. 무슨 말인고 하니, 이것은 2010년 대 쯤, 스마트폰이 개발되기 전, 해외에서 사용하던 말이다.

 나 또한 주로 사용하곤 했다. 이 단어의 의미는 이렇다.

'다음에 봐'

이 단어가 그런 의미가 생긴 이유는 발음에 있다.

이 단어는 'see you later'이라고 하는 문장을 줄인 표현이다. see는 C, you는 U, later는 숫자 eight를 이용해서 L 8 R라고 쓴다.

 이것은 흔히 우리가 요즘 말하는 줄임말과 다르다. 이런 표현은 통신사에서 고객에게 보내는 문자 메시지에도 간혹 나오기도 한다. 이런 표현이 탄생한 이유는 왜 그럴까.

 바로 그 문화와 시대적 배경 때문에 그렇다. 당시만 하더라도 문자메시지를 보낼 때, 문자 갯수제한이 있었다. 총 40개의 문자만 허용됐다. 그러니, 하나의 메시지에 많은 의미를 담기 위해서는 단어의 갯수를 줄여야 했다.

 이것이 전부일까. 그렇지 않다. 스마트폰이 생기기 이전 영문 키패드를 보면 숫자마다 3개씩 영어 알파벳이 적혀 있었다. 다시말해서 숫자패드 1에는 abc가 2에는 def가, 3에는 ghi가 적혀 있었다.

 이러한 키패드를 사용해보면 문제점이 발생된다. 바로 'cab'이라는 단어를 쓴다고 해보자. C라는 단어를 쓰기 위해 숫자패드 1을 세번을 눌러야 한다. 다시 a를 쓰려면 1을 한 번 눌러야 하고, b를 쓰기 위해서는 1을 두 번을 눌러야 한다. 그러나 핸드폰으로는 버튼 1을 여섯 번 누르는 것이다. 이렇게 1을 여섯 번 누르면 글자는 다시 한 바퀴를 돌고 'c'가 된다.

 글자 하나씩 입력하기 위해서 결국 글자마다 스페이스 버튼을 눌러야 하는데, 여간 귀찮은 것이 아니다. 'See'라는 단어도 마찬가지다. See를 쓰기 위해서는 e와 e사이에 스페이스 버튼을 눌러줘야 한다. 그러나 해당 버튼을 오랫동안 꾹, 하고 누르고 있으면 문자는 숫자로 바뀐다. 고로 당시 영어 메세지에는 문자와 숫자가 번갈아가며 이상한 기호가 된다. 이런 문화는 통일되지 못하고 때로 상대방에게 자신의 센스를 보여주는 기회로 사용되기도 하다.

 CN U CM BK 2 ME.

(Can you come back to me.)

이는 고정된 문자가 아니라, 그저 서로가 서로에게 자신의 방식으로 문자를 보내면서 서로를 학습시키고 가르키고, 전파되는 방식으로 퍼졌다.

 이처럼 '문자'는 시대적 배경에 따라 다르게 쓰여졌다. 그렇다면 아예 문자가 없던 시대에 우리는 어떻게 정보를 남기고 전달했을까. 그리고 그 과정과 방법은 어떻게 달라졌을까.

시대별로 정리하자면 이렇다. 

고대시가, 향가, 고려가요, 시조(평시조, 연시조), 사설시조, 가사

 이 땅에서 우리말로 시를 짓던 이들이 우리 문자없이 정보를 저장하고 전달하는 도구로 사용한 것은 '한문'이었다. 앞서 예를 들었던 '영어의 숫자패드'처럼 한자는 정확하게 우리말과 호환되지는 않았다. 고로 우리는 꽤 다양한 방식으로 이 도구를 사용했다.

 첫째, 고대시가

고대시가는 '종이'가 없던 시기에 말로써 '구전'되던 '노래'를 후대 문헌으로 남긴 경우가 많다. 고로 '문자'가 아닌 '소리'로 전달하는 특성에 맞게 '율격'과 '리듬'이 매우 중요했다.

 둘째, 향가

향가가 사용된 시대는 주로 삼국시대, 즉 4에서 7세기 쯤 된다. 종이는 중국에서 채륜이라는 환관이 기원전 2세기 경에 만들었다. 그러나 이것이 한반도에 들어온 것은 대략 삼국시대인 6세기 경이다. 다시말해서 삼국시대에 문자를 기록하기 위해서는 '종이'가 아니라 '목관'이라는 나무가 필요했다.

 중국에서는 '죽관'이라는 '대나무'에 기록하기도 했는데, 이곳에 문자를 기록하기 하려면 '글자수 제한'과 '장 혹은 단 구별'이라는 필연적인 정형화 된 구조가 필요했다. 이렇게 만들어진 것이 향가다. 향가는 '4구 4구 2구'라는 3단 구성이 필수적이다. 이는 초장 중장, 종장의 '시조의 형식'에도 영향이 있다. 향가는 대체로 승려나 화랑등 귀족과 지식인들이 사용했다. 이들은 한자의 음과 뜻을 번갈아가며 우리말을 표현했다. 앞서 말한 영어가 숫자의 음을 차용했던 것처럼 말이다.

 이후 '고려가요'로 넘어간다. 고려가요는 당연히 고려시대에 발생하고 유행했다. 이 시대는 이미 '종이'가 한반도에 전파된 뒤이다. 고로 '형식'에서 자유로워진다. 죽간이나 목간처럼 구와 장을 맞출 필요도 없이 마음껏 표현할 수 있었다. 고로 향가보다는 길고 쉬우며 귀족이 아니더라도 쓸 수 있었다. 고로 주제가 다양히진다.

 넷째는 '시조'다.

시조가 발생한 시기는 '조선초기'다. 여기서 주목해야 할 것은 '초기'다. '조선 초기'에는 '한글'보다 '한자'가 보편적으로 사용되던 시기다. 또한 조선 건국이 '중앙집권 체제 이념'을 중심으로 하고 있었기 때문에, 당연히 '유교사상'이 전파됐다. 고로 우리 글은 '사회적 질서, 정치적 질서'에 대해 이야기 했다. 지식인들은 '유교'의 영향에 맞게 '중국'에 대한 사대를 중시 했으며, 고로 웬만한 표현은 '중국의 방식'으로 사용했다. 고로 대부분 덜 서민적이고 정형화 된 형식을 강조한다.

 마지막으로 '사설시조'다.

사설시조가 보편화 된 시기는 조선 중, 후반이다. 이 시대에는 '한글'이 보급됐다. 한글은 여성과 평민의 글로 쓰였는데, 그런 의미에서 주제가 다양해지고 '형식'이 자유로워진다.

 우리 문학사는 단순히 시대마다 개별로 이유 없이 유행처럼 번지다가 사라진 것들 투성이가 아니다. 당연히 시대를 반영하고 있으며 시대에 맞게 그라데이션으로 옅어지며 다음 단계로 넘어갔다.

 현대 우리의 글은 'ㅇㅋ, ㅇㅇ, ㄴㄴ' 처럼 자음만 가지고 대화를 할 수 있게 되었다. 이를 초성체라고 한다. 초성체인 자음으로만 대화가 가능했던 이유 중 하나를 꼽아보자면 PC 보급과 게임 문화가 아닐까 한다. PC를 하기 위해서, 왼손은 키보드 위에 올라가고, 오른손은 마우스 위에 얹어진다. 대체로 바쁘게 왔다갔다 하는 쪽은 오른손인 경우가 많다. 마우스를 쥐었다가도 재빠르게 글을 쓰기 위해 키보드로 올라가는 과정이 많기에, 자연스럽게 왼손으로만 정보를 전달하는 문화가 생겼다.

 누군가는 스마트폰이 보급되면서 그렇다고 누군가는 말하지만, 스마트폰이 보급됐다고 초성체를 사용하는 나라는 어느나라에도 없다.

 아무튼 문학과 글은 그 시대를 반영한다. 그것이 좋고 나쁘다 할 수 없다. 그것은 문화이며, 시대이며, 그리고 문학이다.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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