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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인환 Mar 18. 2024

[감사] 나에게 책은 어떤 존재인가_도서인플루언서11위

나에게 책은 어떤 존재인가.


 어린 시절, 우리집은 장작 보일러였다. 마른 장작을 집어 넣으면 방이 따뜻해지고 온수가 나왔다. 아버지는 추운 겨울밤, 가족이 잠든 사이에 마른 장작을 집어 넣으시곤 했다. 어머니나 나도 가끔은 보일러에 뗄감을 집어 넣곤 했는데, 불이 붙지 않는 처음에는 마른 신문지나 풀을 넣기도 했다.

 그때 아주 좋은 뗄감으로 사용된 것은 '책'이다. 분서갱유도 아닌 것이, 어머니는 내 책을 태우곤 하셨다. 다 읽은 책이 자리를 차지하는 꼴을 못보셨다. 하나, 둘. 겨울철 '열'이 되어 사라진 그 책들은 그 사라진 존재만큼 내 기억에서도 사라졌다.


 군대를 졸업한 어느 날, 집을 갔더니 내가 소장하던 모든 책이 사라진지 오래였다. 어린 시절 일기장과 상장, 책을 포함해 모든 것이 사라져 있었다. 

 어머니는 "내 집에 네 물건을 쌓아 두지 말라." 하셨다. 어머니의 이런 철학은 따지고보면 오래된 일이다. 어머니는 그 시절부터 '미니멀리즘'을 추구하셨다. 최소한의 소지품만 가지고 간결하게 살고 싶어 하셨다. 여차하면 몽땅 버리시는 '어머니'가 야속해지지 않은 것은 최근 부터다.


 '손웅정 감독'의 '책'을 보니, 그 또한 시원하게 버리고 정리하는 습관을 가지셨다. 상장을 받고 돌아온 아들에게 '훌륭하다. 집에 들어 올 때 상장은 잘 분리수거하고 오너라'라고 말했던 '손웅정 감독'을 보고 그때가 떠올랐다.


 그 뒤로 해외생활을 길게 했다. 근 10년의 해외생활을 하면서 그곳에서도 꽤 책을 사 모았다. 현지에서 어렵게 한국책을 사서 모으기도 했고, 쉬는 날이 되면 서점에 들려 '영어'로 된 원서를 사서 모으기도 했다. 물론 그 책을 다 읽은 것은 아니다. 그저 책을 고르고 쇼핑하는 행위 자체를 즐겼던 것 같다.


 개인적인 사정으로 한국과 외국을 몇차례 오가며 정신을 차려보니, 한국에서 사 모왔던 책과 외국에서 사 모왔던 책이 모두 사라져 있었다. 단 한번도 내가 일 년에 몇 권의 책을 읽고 사는지 알턱이 없던 시기가 지났다.

 2019년이면 비교적 근래의 일이다. 언젠가 연말 정산을 하려고 보니까, 1년에 책값으로 500만원 씩 지출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특별하게 책을 많이 산다고 생각해 본 적은 없었는데, 그렇게 보니 엄청났다. 

'이렇게 10년이면 대략 5천 정도 구나.'


 그제서야 비로소 어떻게 하면 이 비용을 줄일 수 있을지 생각했다. 우연히 알게 된 것은 '도서리뷰'였다. 출판사에서 제공하는 책을 읽고 '리뷰'를 작성하면 '책'을 제공해 준단다.

 그렇게 서평을 시작했다. 그때부터 모은 책은 대략 4~5천 권은 되는 모양이다. 이젠 버리지 않고 수집하게 됐다. 그렇게 꾸준히 서평을 했다. 다만 문제가 발생했다. 어떤 책은 너무 어렵고, 어떤 책은 유치하고, 어떤 책은 형편 없으며, 어떤 책은 지나치게 편향되어 있었다. 종교적이던, 정치적이든, 또한 같은 주제를 두고 다른 의견이 있는 책들도 있었다. 처음에는 '책에 대한 평가'를 적곤 했다. 별점도 주고 혹독한 평가도 했다. 그러나 깨달았다. 과연 내가 내린 평가는 '온전한가'


 '사피엔스'나 '총균쇠'와 같은 책은 역작이다. 그러나 그 책을 8살 난 우리 아이에게 준다면 어쩌면 그 책에 대한 평가가 혹독하지는 않을까.

 때로는 평가자의 수준이 너무 낮기 때문에 평가 대상을 평가절하 할 수도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평가하지 말자"


그 뒤로 독서스타일이 완전히 달라졌다. 책을 평가하지 않는다. 요약도 하지 않는다. 다만 그 책에 맞는 내 생각을 적을 뿐이다.

 '환경오염'에 관해서 어떤 책은 '환경을 보호하자'는 주장을 한다. 다시 어떤 책은 '지나친 우려일 뿐이다'라고 말한다. 물론 여기에 나의 가치관이 있을 수 있다. 그러나 두 권의 책을 모두 읽기 전에 세워진 가치관이라면 그 가치관은 과연 맞는 가치관이라고 할 수 있을까.


 그런 의미에서 나는 책에 대한 가치판단을 하지 않는다. '환경오염은 거짓'이라는 주장에는 그에 맞는 생각을 적고, '환경 오염은 진실'이라는 주장에는 그에 맞는 생각을 적는다. 그러다보니 내가 쓴 수많은 글은 때로는 모순되는 경우가 많다.

 나의 글은 때로 '일본'에 대해 옹호하는 글을 썼다가, 때로는 '비판'하는 글을 쓴다. 때로는 '학력'은 중요하다는 글을 썼다가, '학력'은 그닥 중요하지 않다'는 식의 글을 쓴다. 한 번은 '성경'에 관한 글을 썼다가, 한 번은 '불경'에 관한 글도 쓴다.

 한 번은 '진보'에 관한 글을 쓰고, 다시 한번은 '보수'에 관한 글도 쓴다.


 이렇게도 생각해보고, 저렇게도 생각해본다. 가치판단을 먼저 내린 후, 내 생각과 다른 생각에 비판하고자 비판하지 않는다. 일단 최대한 양쪽의 입장으로 글을 써본다. 그렇게 왔다갔다 하며 중심 없이 흔들리는 양팔저울이 되다보면 어느새 흔들림은 줄어들고 점차 중도에 서 있게 되지 않을까.


 언젠가 누군가가 말하는 영상을 본 적 있다.

중도라는 것은 '줏대' 없고, '가치관'이 없는 것이라고.

그 또한 맞는 말이다. 나는 그 의견 또한 맞다고 생각해 본다. 그 또한 맞는 말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면 그간 해 왔던 여러 사고 훈련이 부족한 탓일 것이다.


 어제 우연히 봤더니, 서평했던 책이 1,000권이다. 총 1800개 이상의 글을 작성했다. 자신있게 말할 수 있는 것은 이 모든 글들이 꽤 적잖은 사고 훈련이었다는 점이다. 다시 살펴보니 네이버 도서 인플루언서도 11위다. 숫자에 최선을 다한 바는 아니다. 그러나 그냥저냥 하다보니 하게 됐다.


책 좋아하는 고수들이 엄청나게 많다. 내가 책을 좋아한다고 해도 될까, 부끄러울 정도다. 그러나 어쨌건 제안을 주시는 출판사, 작가 님이 계시고, 책과는 별개로 내 글을 읽어주시는 분들도 계시니, 하는 습관에 관성이 붙어 계속하게 될 것 같다. 어처면 나쁘지 않은 출발점에 서 있는 느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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