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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인환 Apr 06. 2024

[육아] 아이의 일기장을 구겨 버리다_아낌의 어원&흔적

 '아끼다'는 '앗다'라는 단어에서 왔다. '빼앗다', '앗아가다', '아깝다'가 어원을 공유한다. 여기는 공통이 되는 '앗'이다. '앗'은 무슨 의미일까. '앗'은 '가로채다'다. 'Take'과 같다. '앗긴다'는 그렇다면 무슨 말일까. '가로챔'의 피동사다. '가로챔 당하다'의 의미다. 누군가가 앗으려 할 때, 우리가 하는 행위가 '앗끼는 행위'다. 그러니 '아낀다'는 것은 '사용하지 않는 것'과는 완전히 다른 의미다. 빼앗기지 않기 위해, '자기화'하는 것. 남의 소유물이 되지 않도록 완전히 자신화하는 것.

 그것이 '아끼는 것'이다.

 다이소에서 아이들에게 '일기장'을 선물해 주었다. 말그대로 '인생 최초'의 일기장이다. 일기장 뒷편에 이름을 정성스럽게 적었다. 그러던 중 다율이가 숫자를 잘못 적었다. 다율이는 새일기장으로 바꿔 달라고 했다.그러나 바꿔주지 않았다.

 "틀린 것은 보물이고, 실수는 흔적이고, 흔적은 소중한 거야."

 아이에게 '성공'의 기쁨을 알려주고 싶지 않다. 그것은 알려주지 않아도 스스로 알 수 있는 일이다. 아이에게 알려주고 싶은 것은 '흔적'에 대한 '담담함'이다. 틀리거나, 실수, 오류, 실패에 담담하게 생각하고 그저 '흔적'이라고 생각하는 일을 가르치고 싶다.

 유도에서는 '낙법'을 가장 먼저 가르친다고 한다. 넘어지는 방법을 가장 먼저 알려주는 이유는 그것이 가장 중요하기 때문이다. 유도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승리'다. 다만 다시는 일어나지 못할만큼의 부상이 있은 뒤에는 '승리'가 무슨 소용일까. 결국 '승리'보다 중요한 것은 '안전하게 넘어지는 일'이다.

 시험에 실패하고, 취업에 실패하고, 연애에 실패하더라도 그 또한 '흔적'이라고 담담하게 생각하고 다음 단계를 준비하는 마음을 가르치고 싶다. 실패를 많이 경험해보니 그렇다. 이루는 것 보다 중요한 것이 아무렇지 않게 털고 일어나는 일이다.

그래도 아이의 표정은 짜증이 가득했다. 잘못 쓴 부분만 선으로 긋고 위에 다시 쓰라고 했다. 그래도 신경질 가득한 반응이 돌아왔다. 끝내 바꿔 주지 않자, 아이는 '박박' 하고 펜에 힘을 주어 번호를 지웠다.

 예쁘게 사용하고 싶은 일기일 것이다. 잠시후 나는 아이가 보는 앞에서 일기장을 구겨 버렸다. 괜히 옆에 있는 하율이의 일기장도 구겼다.

 

'자'

 구겨진 일기장을 '툭' 던졌다. 기분 좋게 예쁜 이름을 쓰던 하율이가 날벼락을 맞았다.

 아이에게 말했다.

 "깨끗한 일기장은 마트에 백 개도 있어, 흔적이 묻은 거는 하나 밖에 없어. 흔적이 중요한 거야"

 아이에게 말했다. 하율이는 알겠다고 끄덕였다. 그러나 눈에서는 눈물이 떨어졌다. 방법이 조금 과격했을지 모른다. 그러나 이런 사람이라, 이렇게 밖에 설명이 되지 않는다.

 나또한 '아끼는 물건이 있었다.' 책도 있었다. 신발도 있었다. 옷도 있었다. 아끼는 물건이라 자주 사용하지 않았다. 소중하게 보관했다. 그렇게 아끼던 것들은 지금 어디에 있는가. 알 수 없다. 그 행방이 모연함과 같이 함께 한 기억 또한 전혀 없다. 표면적으로 '아낀 것'과 '방치한 것'에는 차이가 없다. 과연 나는 그것을 아꼈던 걸까. 지금은 어원대로 '앗아져 버렸다' 기억에서도, 실체에서도 전혀. 그것을 나는 과연 아꼈는가. 그렇지 않았다.

 어머니는 어린 시절 '아끼면 '똥'된다.'는 말을 종종 하셨다. 아끼는 것은 자주쓰고 많이 써서, 누군가가 앗아가도 나의 흔적이 남아 있도록, 영원히 나를 묻히는 일이다.

 그것은 몸과 함께 하며 함께 닳는다. 옷이나 신발, 모자 처럼 'wear' 즉, 닳게 하는 일이다. 영어에서 닳게 하는 일과 입는 일은 같다. 결국 가장 중요한 것은 나의 흔적을 묻히는 일이다. 그것이 아끼는 것이다. 세종대왕이 '장영실'을 아껴, 그를 사용하지 않았더라면 과연 '장영실'은 어떤 사람으로 우리에게 기억이 될까.

 내가 그것을 사용하여 나의 흔적을 묻히는 일이다. 거기에 나의 기억이 담아져 있어야 하고 추억이 담아져 있어야 한다. 결국 그것을 보면 그때의 시간과 공간 기억이 떠오르는 일이다. 자아를 확장하여 그것에도 '나'라는 지위를 부여하는 일이다. 그것이 아낌이다. 편해야 한다. 편해야 사용한다. 아이는 생의 첫일기장에 '아빠가 일기를 구겼다'라고 첫 한줄을 써 넣었다. 구겨긴 일기장을 보면 아마 가차없이 새일기장을 구긴 모진 아버지의 기억이 떠오를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 모진 아버지의 기억이 일기장에 '메모리카드'처럼 묻어 있으니 '아낌'에 대한 아이들의 기억도 일기장과 함께 그 삶에 철학이 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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