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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인환 May 23. 2024

[소설] 폭력이 반드시 나쁘다는 착각_안데르센, 잔혹동

 프로크루스테스는 지나가는 여행자를 자신의 침대에 눕힌다. 누운 여행자가 침대에 몸이 맞지 않으면 자르거나 늘려서 맞춰 버린다. 그리스 신화 중 하나다.

 잔혹 행위의 명분은 '정의 집행'이다. 결국 '폭력'이고, '잔혹함'이만 그것이 문명 사회에까지 남아 일부 유용하게 사용된다. 왜 그럴까.

 현대 사회는 '죄값'을 치루게 하지 않는다. '교화의 기회'를 준다. 결국 폭력이 해결책이 아니라는 결론에 도달했기 때문이다.

 '감옥'이라는 용어는 '교도소'로 바뀌고 다시, '교정시설'로 바뀌었다. 이처럼 사회는 '비폭력적인 방향'으로 흐른다. 비문명에서 문명으로의 과정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규칙'에 대한 '합의'다. 다수가 '규칙'에 합의한 국가가 '문명국'이다.

 '사피엔스'의 저자, 유발 하라리는 '집단의 상상력'이 하나의 커다란 규약이 된다고 했다. 그렇게 되면 그것은 '법'이 된다. 자연계에서 '살해'나 '폭력'은 '죄'가 아니다. 약육강식은 '생존'의 최우선 덕목이다. 이런 자연계에서 태어난 인류는 점차 다수가 합의에 이른 '규칙'을 갖게 됐다. 점차 사회가 '문명'으로 나아 갈수록 '폭력'보다는 '비폭력'으로 흐른다. 

 인간 사회는 '공리'를 추구한다. 폭력이 결과적으로 집단의 이익을 침해하는 일차원적인 해결책이라는 사실에 합의했다. 그럴싸하게 말하면, 법리와 법치는 '문명화'의 기준이다. 사회가 개인의 이익과 안전을 보장하지 못할 때, 집단은 '폭력'이라는 원시적인 수단을 사용한다.

 '폭력'은 즉각적인 해결책이다. 즉, 때로는 즉각적인 해결책이 필요한 경우도 있다. 불길로 쓰러지는 아이를 보게되면, 발로 걷어차서라도 일차적으로 불길 밖으로 꺼내야 한다. 그거에 대고 비폭력과 대화를 선호 할 수는 없다. 언어적으로 '폭력'이 '사회악'처럼 되는 시대지만 때로 '폭력'은 즉각적인 해결책으로 유용하다.

 반면 울고 있는 아이에게 '호랑이' 만큼이나 효과적인 것이 '곶감'이다. 때로는 '교화'도 반드시 필요하다. '교화'와 '폭력'은 적절한 비율로 사용돼야 한다.

 분명한 것은 언제나 '교화'가 옳다고 할 수 없다는 것이다. 동물을 훈련 시키기 위해 그들에게 귀를 기울이고 공감해주는 것은 의미가 없다. 훈련시키는 확실한 방법은 당연히 먹이를 통해, 혹은 적당한 신체적 행위를 동반해서다.

 언어가 덜 발달한 아이를 점차 문명인으로 기르기 위해, 일부는 비문명적인 방식이 필요하기도 하다. 단순히 신체적 폭력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바로 심리적인 위협이다. 잔혹한 이야기는 공포심을 자극한다. 어린 시절, 밤 열 두시면 도깨비가 나타난다는 이야기에 아이들은 무슨 일이 있어도 12시 전에 잠에 든다. 거짓말을 하면 코가 길어진다거나 누워서 먹으면 소가 된다는 이야기도 마찬가지다. '아이'를 설득할 충분한 시간과 에너지, 논리력을 가지고 길들이는 것 보다는 일단 행동을 통제하고 문화를 습득하는게 먼저인 경우도 있다.

 '안데르센의 동화집'은 프로크루스테스의 이야기처럼 '잔혹성' 매개로 '교훈'을 나른다. 그의 이야기에 '잔혹성'과 '공포'가 있어야 하는 이유는 인간의 생존 매커니즘이 본질적으로 '공포'에 작동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어두운 밤에 밖을 나다니지 않고 낮선 이를 경계하며 특정한 주파수의 소리에 긴장감을 갖는다. 그것은 '생존력'을 높였다.

 '공포가 없어야 하는 사회'가 지나치게 강조되면 생존 면역은 줄어든다. 개인적으로 '조던 피터슨'의 '훈육 방식'에 크게 공감했다. 훈육하는 것을 경계하는 사회가 오면서 '아이'의 무법적 행동을 절제할 방법이 잃어가고 있다.

 부모도, 선생도 사회도 아무것도 무서울 것 없는 공포에 내성 없는 '청소년'들이 자라면서 되려 우리 사회는 '생존력'의 위협을 받는다. 안데르센의 이야기는 적당한 공포를 통해 아이의 '경계심'을 불러 일으키고 생존력을 높인다.

 자연은 우리를 그렇게 키우지 않았다. 언제나 따사로운 햇살과 밝은 낮만 주지도 않았고 푸르른 봄과 풍요로운 가을만 선물하지도 않는다. 자연이 우리를 기른 방식은 어둡고 적막한 밤, 춥고 굶주리는 겨울, 때로는 폭풍우와 천둥, 번개와 같은 위협도 있다.

 필수 인자의 일부를 완전히 정제해 버린 순수하고 깔끔한 비폭력은 때로는 우리 사회를 약하게 만든다. 원래 온실속 화초는 세상과 단절된 온실 속에서만 꽃을 피운다.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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