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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인환 May 25. 2024

[일상] 지우개를 버리지 못하는 나에게_다시 미니멀리즘

 손웅정 작가의 글을 보는데 아뿔싸 싶다.

 저렇게 무소유 할수도 있구나. 한참을 읽다가 도저히 엉덩이가 들썩 거려서 참을 수 없다. 새벽 다섯 시부터 방과 눈에 불을 켜고 달려 들었다.

 다시 비워보자.

 나름 가지고 있는 것을 최소화 했다고 여겼다. 값비싼 물건을 하나둘 정리했고 새롭게 들인 물건도 없다. 

'이만하면 또래에 비해 많이 비웠다.'

여겼다.

 아무리 생각해도 버릴 것이 없다. 아이와 아침에 일어나 책 읽는 책상에 앉았다.

 그래. 이 정도면 충분하다.

그때 필기구가 보였다.

보이던 것은 '지우개'다.

알록달록 한 것부터 하얀색 잠자리 지우개.

가만히 생각해보니, '지우개'를 사준 적이 없다. 얼핏 눈 앞에 보이는 지우개는 산처럼 쌓여 있다. 얼핏 열 개도 넘었다. 어떤 지우개는 아이가 연필로 파놓은 구멍이 있었고 어떤 지우개는 볼품없이 부러져 있었다. 틀림없이 저 지우개로 지우면 지우개는 더 작은 조각으로 나눠질 것이 분명했다.

 지우개를 하나 꺼냈다. 칼로 지우개 부분을 잘랐다. 죄책감이 들었다. 작은 구멍과 살짝 부러진 부분을 잘라 내려니 이런 생각이 떠올랐다.

'자원낭비'

다시 생각했다. '자원낭비?' 가만보니 나는 지우개 하나를 잘라내는데 몇 번의 죄책감을 느끼면서 몇 일 전, 3000원이냐 5000원이냐, 하는 맥주값은 별생각 없이 결제 했다.

 그제서야 보였다. 밀때마다 파편으로 나눠지는 지우개가 아이의 공부를 방해할 테다.

 그렇지 않은가.

 대부분의 학생은 간단한 답을 지우려다가 부서진 지우개에 주의력을 빼앗기고 한참을 부스럭거릴 것이다. 짧게 부숴져 나오는 '샤프 연필'을 고치느라 30분을 사용할 것이며 지우개에 밖혀 있는 연필심을 꺼내느라 10분을 쓸 것이다.

 그 기억은 상상보다는 '기억'에 속했다. 내 어린 시절이지 않는가. 싹, 버렸다. 다시금 나오기 시작하는 '치약뚜껑', '아이스크림 가게에서 주는 일회용 숟가락', '학원 광고가 잔뜩 박혀 있는 싸구려 필기구들'

 저런게 언제 다시 저렇게 쌓여 있는가. 

 다시 버리기 시작했다. 도저히 버릴 것이 없다. 하나도.

다시 멈췄다. 이제는 진짜 버릴게 없나보다. 그러나 다시 보였다.

그 출처가 불분명한 '충전선'들, 어디서 받은지 모를 '물티슈', '티슈', '비닐장갑'.

언제 들어왔는지 모르는 잔뜩 마케팅 광고가 붙은 메모지, 마스크.

그것을 버리려니 생각이 들었다.

'자원낭비'

'멀쩡한 것을 버리는 구나.'

다시 생각이 들었다.

멀쩡한 것을 버리는 것은 '이것' 뿐인가.

몸에 쌓여 있는 지방과 나태하여 퇴화해가는 '근육'

거기에는 어떤 의미를 부여하고 있나.

자원을 아낀다면 '차'보다 '도보'를 이용하고 '과식'보다 '소식'을 하는 편이 낫지 않나.

 다시 버렸다. 꽤 멀쩡해 보이는 것도 가차없이 버렸다.

20대의 나에 대한 동경과 향수가 떠올랐다.

마치 유목민처럼 '어디로 떠날지 모르는 나'는 언제나 짐을 최소화 했다. 몇 달 정도 살면 짐을 챙겨 '아파트'를 바꾸던, '도시'를 바꾸던, '나라'를 바꾸던 나에게는 언제나 '캐리어 하나' 정도의 짐만 허용됐다.

 언제 어떻게 될지 모르는 상황에는 '할부' 따위는 없었다. 지금에 와서 보니, 나는 너무 많은 것에 얽매여 있다. 당장 훌훌 떠나고 싶어도 그럴 수 없다.

 '고양이'를 키웠던 적 있다. 예쁘고 사랑스러웠지만 고양이를 키우는 것은 나를 얽매게 했다. 하루 몇 번 밥을 챙겨줘야 하는 고민은 '아이 키우는 얽힘'과 같았다. 무언가에 얽힘이 시작되면 그 자리를 지켜 줘야 하는 '책임'이 생긴다.

 '책임'은 분명 중요하지만 내가 지어야 하는 책임이 '둘', '셋', '넷'으로 늘어나면 '책임'은 줄어든다. 나는 얽혀 있을수록 '무책임'해지기 시작했다. '얽히면 책임이 생기는데, 아이러니하게도 얽힐수록 무책임해졌다.

 싹다버리자.

버린다기 보다 비우자.

가만 보니 나의 주의력을 앗아가는 것은 '스마트폰'이 전부가 아니다. 

지우려다가 바스라지는 지우개에 주의력이 뺏기고

쓰려가다 부러지는 샤프 연필에 주의력이 뺏기고

메모하려다가 발견하는 '학원 광고'에 주의력이 뺏기고 나면

본래 뭘하려고 했던가를 잊고 한참을 방황을 할 것이다.

그리고 정신을 차리면 내가 하려던 짧은 목적이 저만큼이나 멀어진 것을 깨닫고 다른 유혹을 찾아 떠날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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