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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인환 Jun 01. 2024

[수필] 도서인플루언서가 되는 과정_실패의 순간, 치트

 대략 5~6년전, 한 블로그를 방문한 적 있다. 어떤 이유였는지는 모른다. 한 여성의 블로그였다. 생각 없이 스크롤을 내리다가 제목을 발견했다.

 구백 몇번 째 독후감 이었던가...

게시글을 봤더니, 수년 전 글이다. 최근 글을 살폈다. 이미 일 천 번째 글을 작성해 둔 뒤였다. 대단해 보였다. 그 기록. 그 시간.

 천 권이라는 가시적인 성과는 주인장의 지적 능력을 증명해 보였다. 부러웠다. 물론 도서 갯수를 늘렸다고 지적능력이 향상되는 것은 아니다. 다만 당시에는 그렇게 보였다.

 원래 책을 좋아했지만 기록이 없었다. 얼마나 읽는지도 몰라고, 어떤 책을 좋아하고, 스스로어떤 생각을 하는 사람인지도 몰랐다.

 '갖고 싶다.'

저 기록과 시간이 쌓은 '결과물' 말이다. 네이버가 임의로 생성한 나의 블로그를 보았다.

메뉴를 어떻게 만들어야 하는지. 

블로그 제목은 어떻게 해야 하는지.

글은 어떻게 써야 하는지.

아무것도 몰랐다.

 그날 블로그 초기 메뉴에 있던 '낙서장'이었던가, 거기에 글 하나를 남겼다. 초라한 한 자리 숫자가 자리수를 그대로 하고 단계를 올렸다.

 아득한 1000이라는 숫자를 갖고 싶다. 꿈꾸고 잊었다. 시간이 지났다. 하루 하나, 어쩌면 둘... 그렇게 쌓은 기록은 어느덧 일천 구 백개를 넘었다. 독후감도 천 편이 넘었다.

 그냥 그렇게 했다. 스쳐진 동경은 잊혔고 기록은 상대가 아니라 나를 향해 있었다. 이제는 안하는 것보다 하는 것이 더 쉬운 일상이 된 글쓰기는 숫자가 아니라 의미를 향해 나아가고 있었다.

 '도서인플루언서'

 특별하게 뭐가 있는 것은 아니다. 어떤 누군가가 내 블로그를 본다면 내가 느꼈던 감정을 느끼진 않을까.

 그런 생각을 해봤다.

1000이라는 숫자는 불타는 열정으로 쌓여지는 결과는 아니다. 블로그를 하며 깨달은 바는 그렇다. 때로는 불타는 열정보다 식지 않는 꾸준함이 더 큰 성과를 쌓는다.

 의식 없이 쌓은 기록은 '로그' 형식으로 남겨졌다. 시간의 순서로 항해했다. 기록은 과거의 방향을 말했고 지금은 연장선에 있었다. 책은 '책'이 아니라, '나'를 설명했다. 그것은 '빅데이터'가 되어 나를 설명했다.

 벌써 6년 전, '인공지능'은 소설에서 나오던 개념이었다. 현재 ChatGPT 서비스가 출시됐다. 2000권이 넘게 쌓여 있는 나의 빅데이터, 그것을 ChatGPT에게 넣었다.

 인공지능은 나의 MBTI를 추론하고 대체로 어떤 생각을 하는 사람인지 알려 줬다. 스스로를 갈아 넣은 글이 '빅데이터'가 되어 대체적인 '자아'를 보여줬다. 거울에 나의 모습을 비춰 보듯.

 인공지능이 평가한 나를 찬찬히 들여다 봤다.

읽고 잊힌 기억들. 쓰고 잊힌 기억이 정보로 짜집어지고 다시 나를 표현해 냈다. 같은 샘물을 마셔도 독사는 독을 만들고 젖소는 우유를 만든다. 내가 씹고 뱉은 정보는 나를 나타내게 했다.

 '해우소'라는 이름답게 누군가의 배설을 씹고 삼켰다. 다시 소화했고 다시 배설했다. 그러니 그 배설은 누군가가 아니라 나를 닮았다. 내가 읽은 책은 다른 누군가가 읽은 책과 그 활자 배열이 정확히 일치했으나 다른 걸 만들어 냈다.

 '코딩 해줘'

 '소설 하나 만들어줘'

 '그림 그려줘'

 '노래 만들어줘'

 간단한 명령으로 인간보다 더 그럴싸한 결과물을 만들어내는 인공지능의 시대다. 명령을 이해하고 빠르게 해결책을 내놓는 시대가 지났다. 대체 불가능한 사람이 되기 위해서는 '일등'이 아니라 '첫번째'가 되어야 한다.

 인공지능은 명확한 해답을 내놓을 지 언정, 스스로 주체적인 질문을 만들어 내진 못한다. 명령에 복종하는 철학 없는 똑똑이들의 최고의 적이 될 것이며 해답을 찾는 질문자들에게 더할나위 없는 수족이 될 것이다.

 '도서인플루언서' 이름을 지어 두었지만 그냥 '책 좋아하는 쌍둥이 아빠'일 뿐이다. 독서는 '나'와 '쌍둥이'에게 향해 있을 뿐이다. 다만 쓰여지는 글의 배설이 누군가의 양분이 되고 다시 그것이 돌고 돌아 나의 양분이 된다. 그 순환의 매커니즘에서 '사회'를 느끼고 살아있음이 느껴진다.

 이 순환 속에서 나는 스스로를 이해하고 타인을 이해하며, 나아가 사회와 연결된다. 이 연결이야말로 진정한 의미의 독서와 글쓰기의 힘이며, 인공지능이 결코 대체할 수 없는 인간만의 고유한 능력이다. 그리하여 나는 오늘도 책을 읽고, 글을 쓴다. 이 모든 것이 나와, 나를 둘러싼 세상을 더 깊게 이해하기 위한 여정이다.

 이 책은 '도서인플루언서'로 활동 중인 '우아한밍블' 님의 출간도서다. 평범한 공무원에서 책과 글을 만나며 글의 일상과 생각이 바뀌는 과정이 가감 없이 들어가 있다. 스스로 질문하는 사람의 성장은 역시 기대가 된다.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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