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오인환 Jun 04. 2024

[계발] 단샤리(断捨離)에 대해서_버리는 즐거움

 재밌는 단어를 알게 됐다. 단샤리(断捨離), '끊을 단, 버릴 사, 떠날 이'

끊고 버리고 떠난다.

 일본어 발음 표기로 읽었지만, 단사리(断捨離)는 우리말로 표기해도 무방하다. 최근 손웅정 작가의 글을 보고 깊은 인사이트를 얻었다. 집에 붙어 있는 군살을 모두 덜어내기로 했다.

 예전 '유목민'에 대한 글을 쓴 적 있다. '유대인의 하루는 저녁 6시에 시작된다'에서도 언급했다. 어째서 변방 유목민들이 난데없이 세계무대의 주역이 되는지에 관한 내용이다.

 어찌 역사의 흐름을 하나의 키워드로만 설명할 수 있겠느냐만, 언급될 수 있는 것 것 중 하나는 '본질'을 꿰뚫는 능력이다.

 농경민족에 비해 유목민족은 본질을 꿰뚫는 능력이 있다. 이유는 간단하다. 그들은 언제나 떠나야 했고, 짐을 최소화 해야 했으며 무엇을 버릴지 보다 무엇을 남겨야 할지 고민하는 민족이었다.

 수양제가 고구려를 침공할 때 300만 대군을 이끌고 출병했다. 300만이 얼마나 황당한 숫자인가하면 현재 몽골에 모든 인구를 다 합쳐봐야 350만이다. 이 숫자가 모두 전쟁에 동원됐다. 수양제가 고구려 침공에 동원한 병력 중 전투병을 보급지원병은 200만이다.

 200만.

 강원도 전체 인구가 150만이다. 농업국가는 전쟁을 치루기 위해 '전투력'보다 '보급능력'이 뛰어나야 한다. 군살을 잔뜩 달고 달리는 꼴이다. 몽고가 세계를 제패하던 시기, 그들의 무기나 보급은 굉장히 단촐했다. 그들은 말과 말에 실을 수 있는 간단한 것만 챙기고 대륙을 누볐다.

 기동력은 그들의 최고 무기였다. '속도'와 '기동력'하면 1000년 전 만큼이나 지금도 중요하지 않은가. 엉덩이 무거운 군살덩어리가 재빠르게 포지션을 변경하며 유유리한 고지를 점령하는 것은 쉽지 않다.

 잘못됐다 싶으면 재빨리 번복하고, 맞다 싶으면 망설임 없이 달려 들어야 한다. 그것인 '초개인화시대'에 '개인'의 특장점이다.

 만화작가이자, 유튜버인 '침착맨' 이병건 님이 한 말 중 아주 핵심을 관통하는 말이 있다.

'대충 견적보다가 각 나오면 미처라'

 그게 다윗이 골리앗을 이기는 방법이다. 이런 기동력을 갖기 위해 가장 중요한 것은 가벼워야 한다. 끊고 버리고 떠나는 것은 무정하게 낭비하고 파괴하라는 말이 아니다. 가벼워지라는 의미다. 어떤 의미에서 '디톡스'를 닮았다.

 디톡스는 '해독'을 말한다. 쌓여 있는 독소를 내보내지 않고는 정화되지 않는다. '정신적으로, 육체적으로, 경제적으로'

본질만 남기고 모두 덜어내야 한다. 군살을 덜어내고, 발목을 잡고 있는 비생산적인 시간낭비를 덜어내고, 얽매여 있는 다양한 관계에서 떨어져 나와야 한다.

 집안을 완전히 들어 엎었다. 버릴 것 하나도 없다고 여겼다. 다만 버릴 것은 엄청나게 많았다. 개중 쓸만한 것도 있었다. 그럼에도 덜어냈다. 쓸만하다는 것은 '그것'의 가치를 말할 뿐이지, 나와의 관계에서 형성된 '의미'는 아니다.

 지금 당장 불필요하다면 그것은 '쓸데없는 것'이다. 쓰레기의 어원은 '쓰임이 없다'에서 시작했다. 비록 그것이 황금이라도 쓰임이 없다면 그것은 쓰레기다. 영어에서 waste 또한 비슷하다. 이는 본래 '쓸모 없다'라는 어원을 갖고 있다. 동서양은 모두 쓸모 없는 것에 '쓰레기'라는 명사를 만들어썼다.

 '언젠가 쓰이겠지'

우리가 버리지 못하는 이유다. 다만 언젠가 쓰인다는 말은 현재 자체는 쓰임이 없다는 말과 같다. 쓰임이 없는 것은 쓰레기다. 실제로 꽤 멀쩡해 보이는 대부분의 것도 중고로 팔거나 쓰레기로 버렸다. 버리고 분명해진 것이 있다. 무엇이 남았는지 훤해 졌다.

 나는 20대 초반부터 30대까지 '재고관리'를 업으로 삼았다. '창고'에 재고가 쌓이면 그 회사는 반드시 망한다. 그것은 철칙이다. 직원이 일하지 않는 시간이 재고로 쌓이고 창고에서 팔리지 않는 악성재고가 쌓이고 관리자가 불필요한 에너지와 시간을 재고로 쌓으면 반드시 그 회사는 망한다.

'재고를 쌓지 말자'

 

 그것은 20대 초반 한참 창업 후 성장가도를 달리던 회사의 철칙이었다. 그 회사의 모토에 완전히 스며들었다. 물건은 들어오자마자 무지막지하게 분출했으며, 그것이 창고에 쌓이게 될 것 같으면 손해를 무릅쓰고 털어내야 했다.

 흔히 마트에서 하는 '원 플러스 원', '특가 행사'는 '고객 사은이벤트'가 아니라, 재고 순환, 재고털이다. 그것은 마케팅보다 재고관리에 가깝다.

 내가 관리하던 물건은 만 가지가 넘었다. 그러나 들어오는 즉시 분출하고 싹 정리해 버리는 일을 반복하다 보면 창고는 계속해서 텅텅빈다.

 가장 중요한 것은 '매장'에 무엇을 진열하느냐,가 아니라 창고에서 무엇을 덜어내느냐가 소매 사업의 성패였다.

 가만 돌이켜보니, 나의 삶 또한 한참을 그랬다. 그러다 악성재고가 하나 둘 쌓였다. 점차 관리되지 않는 재고는 저도 모르게 쌓인다. 의식하지 못하게 쌓이다 보면 어느새 그것에 짓눌린다.

 모두 분출해 버려야 한다. 들어오면 써버려야 한다. 현금이 들어오면 현금으로 두는 것이 아니라 자산으로 사용하던 기부를 하던 고이지 않도록 해야 한다. 고이면 썩는다. 이것은 진리다. 결과적으로 20대 초반 내가 하던 업무는 꾸준하게 덜어내는 일이었다. 덜어내다보면 이상하게 그 규모는 점차 커진다.

 몸은 그것을 기억했다. 몽땅 덜어내고 분출하기를 반복하다보면 어느새 내가 돌리는 파이가 점차 커진다. 고이지 않고 돌고돌고 나를 스치고 돈다. 쌓는 것이 아니라 크게 돌려야 한다. 그게 '무소유'하면서 '크게 소유'하는 일이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