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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인환 Jun 05. 2024

[경제] 행동은 최소 예순 여섯번 반복해야 깨닫는다

 어린시절 집에 '천리안'이 설치됐다. '천리안'은 PC통신 서비스다. 인터넷을 연결하면 집전화가 안되는 통에 한 시간은 고사하고 몇 분 겨우 할 수 있었다.

 '야후'에 접속하면 상단부터 천천히 페이지가 내려오기 시작했다. 모든 페이지가 전부 로드되면 검색창에 궁금한 내용을 넣어 알아 볼 수 있었다. 당시 내가 제일 처음 넣었던 단어는 무엇이었을까.

 'Korean GDP'

 당시 나이가 초중등 학생 때 였다. 시기가 지났고 ADSL이 등장했다. 지금은 볼 수 없는 당대 인기 가수가 광고했다.

 '따라올테면 따라와바'

기술적으로 모르겠지만 한참 진화된 버전이라고 했다. 속도는 엄청나게 빨라졌다. 윈도우 오른쪽 하단에 'ADSL'이라는 글자가 색깔로 바뀌면 연결되었다. 인터넷은 저렴했다. 당시 친구들은 엔씨소프트 사의 '리니지'라는 게임을 했다. 그때도 내가 검색했던 키워드가 있었다.

 '수요공급 법칙'

수요공급 법칙은 당시 나에게 충격적일 만큼 매력적이었다. 비가시적인 인간의 탐욕과 심리를 정확히 '숫자화'하여 그것을 '수학의 범주'로 가져오게 했다. 너무 명료하다. 팔고 싶은 사람이 꾸준히 가격을 내리고, 사고 싶은 사람은 꾸준히 가격을 올리다보면 어느 접점에서 딱 맞아 떨어지는데, 그게 가격 형성 지점이라는 것이다.

 이로써 '추상적인 개념'으로만 존재하던 '가치'가 '수치'로 정량화 됐다. 모든 것의 가치는 그렇게 정해질 법 했다. 누군가가 머리에 '꿀밤'을 쥐어 박으면 그것의 가치는 얼마인가. 모른다. 다만 공급에 맞는 수요을 하나씩 던져보면 가치는 나온다.  

백원이면 꿀밤을 맞겠는가.

천원이라면 맞겠는가.

만원이라면 맞겠는가.

 이렇게 무작위로 숫자를 올리다가 꽤 합리적인 심리적 마지노선을 넘어서면 그 댓가를 받고 꿀밤을 맞는다. 꿀밤의 가치가 정량화 됐다.

 이런 명료한 법칙은 '주식시장'을 만들고 '부동산 시장'을 만들었다. 아직 출항하지 않는 '무역선'의 미래가치에 투자하는 사람들이 생겼고 미래의 기대가치에 맞는 가격이 형성됐다. 아직 개발되지 않은 땅을 저렴하게 구매했다가 구매자가 구매하고 싶은 욕심이 생기는 적정한 시점에 판매하는 부동산 투자도 만들어졌다.

 애덤 스미스는 평생 자신을 '철학가'로 믿고 살았다. '돈'하면 떠오르는 그를 왜 '철학가'라고 부르는지 경제학을 깊게 공부한 사람들은 안다. 보이지 않는 손은 왜 보이지 않았는지 그 표현 또한 철학적이다.

 친구들은 실제로는 존재하지도 않는 '검'을 현금을 주고 샀다. 어른들은 '사이버상'으로만 존재하는 '자산'을 인정하지 않았지만 원리는 단순하다. 사고 싶은 사람과 팔고 싶은 사람의 욕망, 최적점에 가격이 형성되고 그것으로 가치는 정해진다.

 비트코인 하나의 가치가 벤츠 자동차 한 대와 버금가는 이유는 단순하다. 더 사고 싶은 사람이 있고 덜 팔고 싶은 사람이 만들어낸 '가치'다. 경제는 나에게 그런 의미였다. 누가 시키지 않아도 알아서 공부하게 되는 '탐구놀이 대상' 같은 것이다. 나중에와서는 대부분의 어른들이 여기에 목숨을 걸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순수 탐구 대상이 실재를 변화할 수단이었다. 가격이 형성되는 재미난 과정을 시켜보는 일은 흥미로웠다. 돈 한 푼 들어가 있지 않고 출렁이는 그래프를 보며 시간 가는 줄 몰랐다.

 꽤 세속적인 것에 관심이 있다고 여길 수 있겠지만 집단의 욕망이 출렁거리는 것을 눈으로 보는 것은 '부자가 되고 싶다'는 욕망과 별개의 문제였다.

 '탈레스'라는 철학가가 철학의 무능을 비꼬는 사람들을 위해, 막대한 돈을 벌었던 것처럼 '혹시' 놀이로 사용하던 걸, 무기로 사용해도 좋지 않을까. 그러한 생각이 들었다. 정말 개인적인 호기심으로 해외에서 '경영 경제'를 공부했다.

 그것은 역시 '돈'과 연관있지만, '돈'에 대한 내용은 아니다. 그것은 '현상'을 연구하는 '사회과학'이었다.

 학문으로 접근하기에 경제는 흥미로운 것 투성이다. 다만 세속적인 의미의 '돈'은 완전히 다른 문제였다. '돈'은 '라이프스타일'이고 '절제'나 '습관' 같은 것이다. 학문이 아니라 '생활'에서의 돈은 그렇다. 머리로 아는 만큼이 아니라 몸과 마음이 작동대로 나타났다.

 다이어트 이론에 대해서 빠삭한 것과 실제로 늘씬한 것과는 별개의 문제다. 그것은 이론이 아니라 '삶'의 방식의 문제다. 이론은 암기하거나 이해하거나 익혀 두거나 단박에 깨달아도 괜찮지만 '삶'의 방식은 지루하게 쌓여야하고 인내해야하고 성찰해야 한다.

 모든 것이 그렇듯 이것도 그렇다. 다이어트를 하면 얼마 이후 돌아오는 '요요현상'처럼 출렁이며 방향을 진행하는 사이클이 존재했다. 한 번 출렁일 때, 그 탄력에 저항이 없으면 다시 원상태로 돌아오기도 한다. 그것은 '살'이 아니라 인간의 '인내력'과 같은 '추상적인 것' 때문이다.

 공부, 다이어트, 돈.

 이들은 모두 하루 아침이 아니라 쌓이는 오늘의 연속에서 발생한다. 보통 습관의 개선이 가장 중요하며 그것은 머리로 아는 바와 다르게 몸으로 익혀야 한다. 몸은 속도가 느리다. 머리가 단번에 깨달아도 몸은 최소한 예순 여섯 번 정도 같은 행동을 반복해야 깨닫는다. 검소하게, 단순하게, 겸손하게.

 손웅정 작가의 책을 읽고 겸손과 검소, 단순함 등에 대해 배웠다. 너무 인상이 깊었던지 비슷한 책을 몇 권이나 샀고 읽고 있는 중이다. 신체, 정신, 생활에서 군살을 덜어내고 본질만 남기자. 그게 2024년 가장 크게 깨달은 것 중 하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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