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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인환 Jun 25. 2024

[심리] 가볍고 싶어서 가벼워지고 있는 중..._가볍게

 눈 앞에 있는 '그것'은 어떻게 '그것'이 됐을까. 보이지 않는 것을 사색하는 힘은 매우 중요하다. 역사 없는 '것'은 없다. 저것이 나에게 온 역사를 반추해 보건데, 그냥 생기는 것은 없다. 쌀 한톨이라도 입속으로 들어오면 그것은 인연이 된다. 그것은 어떻게 나의 입속에 있게 됐는가. 그 역사를 반추하는 것은 삶을 감사하게 하고 풍요롭게 한다.

 500원짜리 껌을 산다. 입에 넣는다. 껌을 감싸고 있던 포장지를 살핀다. 생각없이 쓰레기통으로 버린다. 그러나 보이지 않던 '너'에게 묻는다. '너'는 어디에서 왔는가.

 껌종이가 만들어지기 위해서는 적어도 한 명 이상의 디자이너가 필요하다. 종이의 재질과 두께, 인쇄 디자인은 저절로 정해지는 것이 아니다. 디자이너의 디자인은 이후 엔지니어에게 간다. 종이의 물리적 특성을 확인하고 안정성을 보장하는 재료를 연구한다. 구매 담당자는 펄프와 잉크, 코팅 재료를 확인하고 그 원재료를 각 구매처에서 구매한다. 펄프를 만들기 위해 누군가는 나무를 재배한다. 혹은 벌목한다. 이렇게 벌목된 나무는 제지 공장에 들어간다. 공장 직원은 주문내역을 확인한다. 내역을 기반으로 얇은 종이를 제지한다. 이번에는 기계관리자의 역할이 필요하다. 기계 관리자는 기계를 수리하거나 관리한다. 생산된 껌종이의 품질은 어떤가. 안전한가. 품질관리 전문가는 이를 검사하고 기준치에 맞는지 확인한다. 포장 작업자는 껌종이를 포장한다. 물류 담당자는 완성된 껌을 제조 업체에 납품한다. 소매업자는 이를 진열해 놓고 있다가 원하는 이에게 판매한다. 많은 사람들의 다양한 노고는 껌종이라는 '정체'를 만들어내고 그것은 역사가 됐다. 이제 구매자인 나의 손에 들어왔다. 우리는 이것을 어떻게 처분하는가. 아무 생각없이 그것을 구겨 쓰레기통에 넣지 않는가. 삶이 나에게 주는 축복이란 이처럼 보이지 않는 후면에 잔뜩 숨겨 있다. 우리가 펴보지 않을 뿐이다. 

 '그것'이 어떤 경로에 나에게 왔나. 얼마나 많은 사람의 노고가 숨어 있나. 그것을 안다면 그 감사덩어리를 함부로 할 수 없다. 만물이 그렇다. 그냥 생기는 것은 없다. '그것'이 '그것'이 되기 위해서는 전 우주가 작동해야 한다. 작게는 온도, 기온, 날씨, 위치, 시간, 사람, 돈이 필요하고 크게는 태양의 적정 궤도에 안착한 지구의 기가막힌 위치선정 혹은 빅뱅과 초신성 폭발에서 터져나온 원자 물질의 운동량과 인력, 척력, 중력, 각운동량의 조화까지 따져 들어갈 일이다. '그것'이 '그것'으로 탄생할 확률과 내가 나로 탄생할 확률은 각자 독립적으로 무한대에 가까운 우연이다. 이 우연들이 서로 무한에 제곱수로 중첩된다. 여기서 이 값들은 서로 인연이 다시 제곱이 된다. 고로 옷깃만 스쳐도 인연이라는 것은 무량대수급의 우주 산술적 대입의 결과다. 어찌 함부로 들이고, 함부로 버릴 수 있을까.

 마인드를 이렇게 갖다보면 하나 둘씩 덜어내는 것이이 일상화 된다. 물욕이 줄어든다. 물욕이 줄면 '집착'이 준다. 집착은 번뇌가 된다. 번뇌란 '번거롭고 괴롭다'라는 의미다. 때로 사람은 단순한 것을 돌고돌아 어렵게 만든다. 그렇지 않은가. 삶의 대부분이 그렇다. 사피엔스 종이 '쉬운 길'을 돌아간다는 것은 이미 '농업혁명'에서 증명 됐다. '유발 하라리'의 '사피엔스'에는 '농업혁명'을 인류에게 재앙이 표현했다. 사람들은 더 영양결핍에 시달렸고 나약해졌다. 엄청난 노동강도를 지녀야 했고 질병과 사회적 불평등, 전쟁과 같은 문제도 만들어냈다. 결국 돌고돌아 행복하게 잘 사는 것이 '목적'이라면 우리는 40만년을 지속해오던 본질을 1만년간 돌아 다시 제자리로 찾아가는 중일지 모른다.

 빈수레가 요란하다. 요란한 수레를 잠재우기 위해 가득 채우는 것은 정답이다. 그러나 어설프게 채운다면 수레 안은 더 요란스러워진다. 채우고 채우고 채우다가 결국 깨닫는다. 빈 수레가 그나마 가장 정숙한 상태였다는 사실을 말이다.

 비우고 가벼워지는 것에 최대 촛점을 맞추고 있다. 뭐든 덜어내고 비워내고 버린다. '할부'나 '렌트' 등에 얽매이지 않고 자유로워야 한다. 본래 '쌓는 일' 보다 '돌리는 일'이 훨씬 더 많은 하중을 견딜 수 있다.

 학창시절 '생각비우기 연습'이라는 책이 유행했었다. 일본의 한 젊은 스님의 책이다. 도서는 '생각'을 비우고 멈추라고 말했다. 그때는 많은 생각을 하는 사람을 동경했다. 머리를 많이 쓰다보면 머리가 좋아질 것이라고 여겼나보다.

 다만 '정신력'이나 '주의력' 같은 것은 일종에 '소모품'이라는 사실을 알게 됐다. 많이 쓰면 좋아지는 것이 아니라 닳고 사라지는 것이다. 인간의 육체에는 쓸수록 단련되는 것도 있지만 닳아 없어지는 것들이 있다. '근육'처럼 단련되는 것이 아니라면 '연골'처럼 닳아 없어진다.

 '정신'에 관해 대체로 그렇다. 군대에서는 일부 가혹행위를 '정신훈련'이라는 명분으로 시행한다. 그러나 정신을 훈련하는 방법은 비우고 집중하고 덜어내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수년 간 정신 차리지 못해 허둥대는 와중 나를 정리하는 하나의 키워드를 발견했다. 바로 '미니멀리스트' 꽤 오래 전부터 지향하고 있었다. 최근 손웅정 작가의 책을 보고 다시금 자극을 받았다. 그렇다. 실제로 비우다보니 꽤 많은 변화가 생긴다. 많은 것을 비우니 더 가벼워지고 더 빨라지고 더 깊이 있어진다. 물이 맑아야 더 깊이 볼 수 있는 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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