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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인환 Jul 06. 2024

[소설] 문어를 만나다. 그들을 잡아먹다._지구 생물체

 

 제목만 봐도 'SF소설'이다. 유추할 수 있다. 다만 자전적 소설이라는 것은 유추할 수 없었다. 소설은 문어와 대게, 해파리와 고래 등 다양한 해양 생물이 등장한다. 이 소설이 자전적 소설이라니, 궁금증이 인다. 여기에 언급되는 해산물들은 그저 등장하는 것이 아니라 말도하고 인간과 교류까지 한다. '자전적 소설'이라는 것이 더 흥미롭다. 소설의 소재는 독특하다고 할 수 있다. 흥미 뒤로 숨겨진 날카로운 문제 의식은 그러나 흥미로 그치지 않는다.

 소설은 전자책으로, 오디오북으로, 종이책으로 읽었다. 이것이 가능한 이유는 윌라2.0에서 이것이 제공되기 때문이다. 가령 설거지를 하거나 산책을 할 때는 이북으로 읽다가, 평소에는 전자책으로 읽고, 아이에게 책을 읽어준 뒤 어두운 밤에서는 이북으로 읽었다. 특히 집중이 잘 안되는 산만한 날에는 오디오북을 틀어놓고 책을 읽기도 했다. 어쨌건 '윌라'는 평소 사라져 버린다고 생각한 짜투리 시간마저 독서하는데 쓸 수 있도록 해준다.

  첫 장면은 인상적이다. 주인공이 문어와 만난다. 어떻게 이 장면을 읽고 다음을 읽지 않을 수 있는가. 떠다니는 문어를 삶아 먹어버린 남자와 그를 추궁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는 어딘가 어색하면서 웃음을 자아낸다.

 문어는 '지구 생물체는 항복하라'며 말한다. 이렇게 세계의 독특한 세계관이 시작과 동시에 펼쳐진다. 대게의 이야기는 더 흥미로워진다. 대게는 러시아어를 구사한다. 자신이 러시아 심해에 가스관을 짓고 있다고 말한다. 대게들은 러시아 정부에 의해 고용되어 가스관을 건설을 한다. 우크라이나 전쟁 중 한 번씩은 들어 볼 법한 가스관들이다. 인간은 대게에 수주를 주고 건설을 맡긴다. 다만 대게와 동료들, 그들이 하나둘씩 사라지기 시작하면서 이야기는 더 긴장감을 고조한다. 예측 불가능한 방식으로 소설은 전개된다.

 소설은 환경와 인간의 탐욕을 날카롭게 비판한다. 사회적 메시지를 담고 있다. 단순히 떠다니는 문어를 잡아먹은 독특한 소재의 소설이 아니라, 작가의 이야기를 담고 있고 사회에 대한 메시지도 담고 있다. 가벼운 마음으로 충분히 읽을 수 있고 즐길 수 있지만 생각해 볼 부분도 충분히 있다. 소설의 후반부에는 이런 내용이 나온다.

 "인간 때문에 위협받고 죽고 다치고 노예로 잡혔던 동물들이 모두 힘을 합쳐 인간에게 복수하기로 결의했다면 인간은 오래전에 멸종했을 것이다."

 실제로 동물들이 마음을 먹으면 인간은 충분히 위협받고도 남는다. 개미는 전 세계적으로 약 20경 마리에 이르는데 그 무게는 12메가톤이다. 이는 모든 야생 조류와 인간을 제외한 모든 포유류의 총질량을 합친 것보다 많다. 심지어 모든 인간을 성인이라고 가정해도 개미가 인간보다 2.5배는 더 무겁다. 싸워서 이길 수 있을지 알 수 없다.

 최근 읽고 있는 '호모 사피엔스'라는 책에 따르면 인간은 동물에 비해 월등한 지적 능력을 가졌다고 착각한다. 우리의 지능은 분명 여타 동물과 비견 할 수 없을 정도로 우수한 것은 맞다. 다만 그것이 문명을 만들어낸 유일한 이유는 아니다. 인간은 40만년 간, 다른 동물들과 마찬가지로 열매를 먹거나 죽은 동물의 사체에서 골수를 빼먹었다. 인간의 경쟁 상대는 '하이에나' 혹은 '까마귀'였다. 현대 인류가 동물과 월등히 차이나는 문명을 갖게 된 것은 '지능'보다는 '사회화' 때문이다.

 '사회화'가 얼마나 중요한가. 우리는 이성을 선택할 때조차 생존과 전혀 상관 없는는 '외모'를 살핀다. 눈코입의 위치와 피부톤의 밝기와 부드러운 정도가 이성을 선택하는데 요인이다.

 시장은 우위를 점하기 위해 경쟁한다. 또한 성선택에 의해 열등인자는 도태된다. 다만 시장 경쟁 중 기능적으로 평준화된다면, 선택자는 시각적으로 매력적인 디자인을 선택한다. 좋은 디자인은 감정적 반응을 유도하고 긍정적인 인상을 준다. 스마트폰을 보면 모든 스마트폰의 기능이 상향 평준화되다보니 결과적으로 '디자인'적인 요소가 승부 요인으로 작용한다.

 생존 필수 요소가 충족된 이후에 외적인 요인을 찾게 되는 것은 본능과 같다. 오랜만에 나간 동창화에 '루이비통 가방'과 '두루마리 휴지' 중 어떤 것을 챙겨가야 하는지를 선택하게 한다면 당연 전자다. 즉 인간과 동물의 차이는 어떤 면에서는 크게 줄어 들기도 한다.

 얼마전 일본 유튜브에 100일 후에 먹히는 돼지에 관한 영상이 올라갔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 채널의 주인을 비난했다. 다만 인간이 키운 돼지와 식탁 위의 그것과의 차이라면 '관계 형성'을 했다는 것 밖에 없다. 인간성이란 결국 '관계형성'에 있다. 우리는 이름 지은 소를 죽이지 못하고 애원으로 키운 돼지를 먹지 못한다. 정보라의 소설에는 맛있는 해산물들이 말을 하고 인간과 협업을 하기도 한다. 단지 말을 하고 관계를 형성할 조건이 생겼다는 이유로 우리는 그들을 동등하게 여긴다.

 어쩌면 이런 부분은 철학의 범위에 있다. 스스로 운전하는 자동차나 인공지능과 같은 것들을 인간처럼 대할 때 우리는 그들에게 '인격'을 부여할 것이다. 어쩌면 우리와 그들을 나누는 작은 막은 매우 얇고 연약할지도 모른다.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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