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에 무얼 하나 봤더니, 반장 선거에 연설문을 쓰고 있다.
첫째, 둘째, 셋째로 공약을 짠다. 꼭 뽑아 달라고 쓰여 있다.
앞에서 발표 연습을 하는데 그 모습이 귀엽기도 하고 웃겼다.
아이가 '학급회장'이라는 말이 생소해서 그런지,
'대장님'이 될꺼라고 했다.
학습회장은 대장이 되는게 아니라 대표가 되는거라고 일러줬다.
'라떼는' 친구들에게 '닭꼬치' 하나씩 사주고 반장했건 기억이 난다.
그런 부정이 나에게도 첫 기억이다.
요즘은 초등학교 반장 선거에서도 그게 큰일나는 모양이다.
초등학교 5학년 때, 학교 임원이 된 적이 있었으며,
이후 아이들의 성화에 집에가는 길에 닭꼬치를 샀던 기억이 있다.
'반장'이라는 것이 꽤 귀찮은 일이라는 걸 이후 몸소 느꼈다.
그러나 아이도 나도 아이가'반장'이 되기를 바랐다.
귀찮은 일이 많아지더라도 책임감을 키우는 좋은 기회이며, 리더십을 기르고 선생님과 인간적 친분을 쌓을 수 있는 좋은 기회다.
비록 허드렛일에 가까운 일을 하겠지만, 직위에 취해 거들먹거리는 리더가 일반적이지 않다는 것을 어린 시절 배우는 것도 좋다.
나름 아이가 열심히 준비했다. A4용지에 꼬깃꼬깃 구겨진 글씨를 넣어 놓고 가슴에 품은채 등교했다.
'꼭! 반장이 되겠다고 큰소리다. 또, 자기가 될 것 같다고 확신한다.'
오후가 됐다.
아이가 돌아왔다.
울먹울먹하는 얼굴이 꽤 참은 얼굴이다.
내가 손을 벌리고 공감의 표정을 짓자, 다율이가 한참을 달려와 울었다.
대장님이 되고 싶었는데 친구들이 안뽑아줬단다.
몇표나 받았는지 물었더니,
하율이는 한표를 받고, 다율이는 0표를 받았다.
하율이를 뽑은 한표는 다율이었고,
하율이는 머뭇머뭇하다가 다율이에게 손을 들지 못했다.
한참을 울었다.
하율이는 아무렇지 않은 표정이다.
'넌 괜찮아?'
물었더니,
'아빠, 다음에 또 하면 돼.'
이런다.
내가 어렸을 때, 아버지의 말씀이 기억에 났다.
중학교 1학년 1학기 중간고사에서 사촌이 전교 1등을 했다.
그때, 아버지는 말씀하셨다.
'세상에는 일등보다 일등이 아닌 사람이 훨씬 많다.'
그게 꽤 위로가 됐는데, 뭐 항상 1등에 근접한 삶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세상은 1등이 아닌 사람들이 대부분 만들어나가지 않는가. 얼마나 다행인가.
아이는 삶의 첫 선거에서 참패를 했다.
수많은 나의 실패들이 머릿속을 빠르게 스쳐 지나간다.
나 또한 엄청나게 많은 실패를 겪었다.
누구나 공감할만한 실패에서 부터,
누구도 공감하지 못할 실패까지,
아버지는 또 말씀하셨다.
누구나 가슴에 그정도 이야기는 품고 살아간다.
내 상처가 세상 크다고 여겼을 때,
사람들을 보면, 그 이후부터 그렇게 보인다.
저들도 나만큼의 상처를 품고 있다.
아이에게 첫 상처가 남았겠지만,
원래 근육과 뇌와 삶은 찢어진 상처 사이로
양분이 채워지면서 성장하는게 아니던가.
우리 아이가 오늘 조금더 성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