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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인환 Jul 18. 2024

[생각] 종교가 없어도 기도를 하는 이유_우리가 불완전

 한국에 있는 '내'가 미국으로 이민간 친구와 실시간으로 소통할 수 있는 이유는 '전자기력' 때문이다. 전자기력은 전하를 띤 입자들 사이의 힘이다. 전자기파의 형태로 정보를 전달한다. 전기적 신호와 빛 형태로 전달되며 이 힘을 통해서 지구 반대편에 있는 '아무개'와 실시간으로 소통할 수 있다.

 시각이 없는 생명에게 '시각세포'를 심으면, 생명은 처음으로 눈을 뜬다. 존재하지 않던 것들의 존재를 보게 되고 알 수 없던 것들을 알게 된다. 그것은 '눈을 뜬다'는 단순한 의미가 아니라 '존재'의 '존재'를 이해하는 일이다. 고로 새로운 '감각'하나를 얻는 것은 엄청난 차원을 얻는 것이다. 인간의 소통 방식이 고작 '음파'에 그치기에 우리는 가까운 곳에서 공기의 진동을 통해서만 의사를 전달한다. 우리가 새로운 감각을 깨치게 한 것은 '스마트폰'이며 스마트폰은 '전자기력'을 이용하여 우리의 소통 능력을 5G 속도로 높였다.

 고로 알게 된다. 인간은 얼마나 원시적인 방식으로 소통하는 생물체인가. 우리가 아둔한 탓에 보이는 것만 존재한다고 믿는다. 이런 믿음이 사실이라면 스마트폰으로 미국인과 통화하는 것은 '마법'으로 밖에 설명할 수 없다. '존재'란 우리가 느끼거나 말거나 그저 '존재'할 뿐이다.

 보이는 것만 '존재'하다고 믿는다면 '제임스 웹 망원경'은 거짓을 말하는 망원경이다. 허블망원경은 '가시광선'을 다룬다. '제임스 웹 망원경'은 '적외선'을 감지한다.허블 망원경 보다 더 선명하고 깨끗한 우주를 본다고 자랑한 '제임스 웹 망원경'은 실제 인간의 눈에 없는 세상을 보여준다. 그것이 훨씬 더 많다는 것을 우리는 안다. 세상은 보이는 것보다 보이지 않는 것이 훨씬 더 많다. 실제 우주의 대부분은 암흑물질로 이루어져 있고, 그것이 무엇인지, 그 존재 조차 우리는 알지 못한다. 인간이 시각으로 감지할 수 있다는 '가시광선'은 전자기 스펙트럼에서 고작 해봐야 0.00003% 밖에 차지 하지 않는다.

 듣는 것도 그렇다. 음파의 주파수 범위는 무한하지만 우리가 들을 수 있는 '가청 주파수'는 0.2%도 되지 않으며, 인간의 후각 수용체는 400개라, 개의 1000개, 쥐의 1200개 한참을 못 미친다. 그들은 알고 우리는 모르는 세상이 분명히 있는 것이다.  우리는 흩어진 냄새 분자 중 아주 극미한 부분만 감지해 낸다. 미각, 촉각도 다르지 않다.

 우리가 존재를 인정하는 '감각기관'은 기껏해봐야 다섯 개 뿐이며 그 또한 매우 열악하다. 그렇다면 이 열악하고 열등한 기관을 가지고 '존재의 유무'를 구분할 수 있을까. 단연코 없다. 고로 우리는 세상의 0.00001퍼센트도 인지하지 못하고 산다. 또한 그렇게 인지한 감각도 진짜인지 알 수 없다. 감각기관으로 들어온 자극은 기껏해봐야 전기 신호로 전환되어 '정보'만 전달하고 해석한다. 이 과정에서 오류가 발생하면 우리는 손에 발이 달려 있다고 믿기도 하고 눈이 없는 사람을 보기도 한다. 이는 실제 정신문제로 일어나는 일이다.

 우리의 감각이라 함은 대체로 '파동'과 '입자'가 플러스와 마이너스 미뤄내고 이끌리는 역학관계로 만들어진다. 얼마나 불완전하고 신뢰할 수 없는가.

 존재라고 믿는 시간 또한 존재하지 않는다. 과거와 미래 또한 '기억'과 '망상'이 만들어낸 '무존재'이다.

 어떤이는 강력하게 믿고 있는 사실이 거짓이라는 진단을 받고 약을 먹는다. 어떤 이는 노화된 뇌가 만들어낸 망각으로 과거와 현재를 잊어버린다. 어떤 이들은 보이지 않는 것을 보고, 어떤 이는 보이는 것을 보지 못하며, 어떤 이는 과거를 조작하고, 어떤이는 현재를 착각하며, 어떤 이는 미래를 생성해낸다.

 어두운 방에 켜진 촛불 하나처럼 모든 경계는 분명치 않다. '그라데이션'있는 있음과 없음의 경계에서 어떤 이만 유독 그 능력이 부족하거나 타고났다고 할 수 없다. 모두는 정도의 차이에 따라 아주 미세하게 있거나 없어져 간다.

 우리는 얼마나 완전한가.

 전체 100명이 있다고 치면, 일곱 쯤은 우울증을 앓고 있다. 양극성 장애는 한 명 내지 두 명이며, 조현병 환자 한 명, 불안장애 스무 명, 강박장애 한 명, 주의력 결핍 과잉 행동장애 다섯 명, 자폐 스펙트럼장애 한 명, 식이 장애 두 명, 경계성 지능장애 열 명, 사이코패스 한 명, 소시오패스 한 명, 지적장애 두 명이다.

 그 비율은 중복될 수 있으나 중복되지 않는다고 가정하면 최대 100명 중 70명은 정신적으로 완전하다고 볼 수 없으며, 현실적으로 중복을 고려해도 전체 인구의 3~40퍼센트는 어떤 형태로든 정신장애를 가지고 있다. 

 공자는 말했다.

하늘에 죄를 지으면 빌 곳이 없다.

 종교가 있던 없던, 신을 믿던 말던, 기도를 하는 이유는 이미 우리가 불완전한 존재임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원시인류에게 '전자기력'을 설명하며 지구 반대편에 있는 사람과 소통하는 방법을 알려 주는 것이 불가능하듯, 우리는 알고 있는 아주 극적으로 미세한 정보를 가지고 세상을 판단한다.

 스스로 세운 계획이 이뤄지리라 빌고, 열심히 하면 달성하리라 믿으며, 간절하면 만나게 된다고 생각한다.

 얼마나 웃긴 일인가.

하루살이가 최선을 다한다고 '달'까지 날아갈 수 있나,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어쩌면 불완전함을 인정하고 모르는 힘에 기대보는 것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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