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오인환 Jul 28. 2024

[육아] 학이시습지 불역열호(學而時習之 不亦說乎)_어머


 책 제목이 자극적이다. '어머님, 의대생은 초등 6년을 이렇게 보냅니다'. 책의 제목은 자극적이지만 내용은 훌륭하다.


 개인적으로 딸을 의대로 보내고 싶은 마음은 없다. 본인이 갈 수 있느냐, 없느냐의 문제를 떠나 부모로써 '직업'을 강요하고 싶은 생각은 없다. 직업은 부모가 죽고 난 뒤에 본격적으로 중요해는데, 무책임하게 내 사후의 일을 간섭하여 아이의 삶을 망치고 싶지 않다.


 아이에게 학업을 강제하고 싶지도 않다. 최근 아이에게 논어의 첫 구절을 가르쳐 줬는데, 이렇게 적혀 있었다.  '학이시습지 불역열호(學而時習之 不亦說乎)', 배우고 때때로 익히면 또한 기쁘지 아니한가.'


 배움은 '목적'이 아니라, '과정'에서 희열을 느껴야 한다. 언제나 결과은 찰라이고 과정은 영겁이지 않는가. 과정이랑 끝도 없고, 있어서도 안되며, 있다고 해도 다시 시작해야 하지 않는가.


 '의사'뿐만 아니라 모든 직업은 달성한 이후에도 끊임없이 공부가 필요하다. 결국 사람에게 필요한 것은 결과물에 의한 기쁨이 아니라 과정에 대한 기쁨을 알게 하는 것이다.



 개인적으로 아이가 의무교육을 마치면, 그 언제라도 자퇴를 해도 괜찮다. 단, 아이에게 요구하고 싶은 것이 딱, 4개가 있다.



 '자립', '독서', '한자', '영어'



 이 네가지를 성인이 되는 과정에서 익힌 후에야, 남에게 해를 끼치지 않고, 자신에게 해를 끼치지 않으면 그 무엇을 하고 살아도 상관없다.


 넷은 모두 중요하지만 굳이 순위를 따지고 보자면, 자립, 독서, 한자, 영어 순으로 중요하다고 본다.



 첫째, 자립


 스스로 일어설 수 있어야 한다. 부모는 넘어진 자식의 모든 순간에 함께 할 수 없다. 걸음마를 떼고 나면 아무리 세게 넘어져도 스스로 일어나야 한다. 초등이 지나면 학습은 스스로 해야하며, 성인이 되면 진로는 알아서 결정해야 한다. 부모는 스스로 심은 '씨앗'이 뿌리를 내릴 때까지만 돕는 것이지, 뿌리가 내린 뒤에는 지켜보는 일이 전부다. 고로 단단히 뿌리가 내릴 수 있도록 좋은 습관을 기르고 좋은 정서를 쌓아주고, 좋은 유년시절 기억을 만들어주는 것이 전부다. 토양을 만들어주면 좋은 씨앗은 알아서 성장한다.



 둘째, 독서


 초등 1학년이면 부모가 가르칠 수 있다. 아무리 못배운 부모도 걸음마는 가르칠수 있다. 아이가 배워가는 단계는 점차 수준을 높여가다가 어느 순간 부모가 감당할 수 없는 수준으로 뻗어나간다.


 혹시, '기체의 수와 온도가 일정할 때, 부피는 압력에 반비례한다.'라는 말을 듣거나 사용한지는 얼마나 됐나, 또한 이를 말하는 '법칙'의 이름은 알고 있나.


 이는 '보일의 법칙'이다. '보일의 법칙'은 중학교 2학년 과학 교과서에 나온다. 대부분의 성인 부모는 만13세 아이의 교육을 지도할 수 없다. 아프리카 속담에, '아이 하나를 키우려거든 마을 하나가 필요하다'는 말이 있다. 결국, 한 사람을 교육하기 위해서 각각 다른 전공을 한 '성인 어른'이 필요하다.


 중학교만 올라가도, '수학 선생님', '과학 선생님', '영어 선생님' 등 전공을 달리한 전문가 집단이 각각의 과목을 가르친다. 결국 아이는 '성인'의 수준을 넘는 교육을 받는다. 이처럼 아이의 학습량이 폭발적으로 늘어날 때, 가장 좋은 스승은 '부모'가 아니라 '책'이다.



 셋째, 한자


 현재 우리 아이가 하고 있는 유일한 공부는 '한자'다. 한자는 극단적으로 말해서 '영어'보다 중요하다. '수학'보다 중요하다. 이유는 이렇다. 모든 과목은 '언어'로 정리된다. 고로 '언어'가 중요하다. 우리 언어를 구성하는 70%는 한자어다.


 초등학교 고학년이 되면 '원주율'이라는 개념을 배운다. 대부분 대부분의 학생은 원주율이 무엇이냐 물으면, '파이'라고 답한다. '파이'가 무엇이냐고 물으면 3.14.라고 답한다. 3.14라고 말하면 '원주율'이라고 답한다. 원주율(圓周率)은 원의 지름이 길어질수록 둘레가 함께 길어지는데, 그 비율이 얼마나 되는지를 설명한 단어다. 다시말해서 한자를 알고 있다면, '원주율'이라는 단어 자체가 개념을 설명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러나 한자를 모른다면, 단어를 외우고도 그 개념이 따로 놀게 된다. 영어, 수학, 사회, 과학, 역사할 것 없이 거의 모든 정보는 '글'로 쓰여 있으며 그 글의 70%가 한자다.



 넷째, 영어


 최근 AI가 간단한 단편 영화를 제작했다는 뉴스를 접했다. 기가 찰 노릇이다. 혹자는 이런 이유로 영어가 더 불필요하게 됐다고 말한다. AI가 영어를 모두 번역해 주기 때문이라단다. 그러나 AI로 영화를 제작하는 과정을 보니, 제작자는 명령어를 '영어'로 기입했다.


 즉, AI기술이 얼마나 발전이 됐던지, 대충 그린 그림과 간단한 영어 한 줄 설명이면 완전히 고품질 애니메이션이 제작됐다. 즉 다시말하면 이제 가장 중요한 것은 '컨텐츠'가 있고 그것을 표현해 낼 '글쓰기 실력', '외국어 실력' 정도가 있다면, 그림을 전혀 못그리는 사람도 애니메이션 작가가 될 수 있고, 화가가 될 수 있으며, 노래를 전혀 모르는 이가 작곡가, 가수가 될 수도 있다.


 AI는 빅데이터를 가지고 학습한다. 그렇다면 AI가 학습하는 빅데이터는 어떤 언어로 이루어졌는가. 바로 영어다. 2023년 기준, 전체 인터넷 컨텐츠의 59%가 영어로 되어 있다는 조사가 있다. 이는 단연코 전체 언어 중 1위다. 더 놀라운 사실은 두번째로 많은 언어인 스페인어가 고작 5%라는 사실이다. 3위인 러시아어는 4.9%이고, 아이러니하게도 인구가 가장 많은 중국어는 1.4%에 불과하다.



 자, 공부는 못해도 상관없다. 그러나 스스로 자립할 수 있고, 책읽기를 생활화하며, 영어와 한자를 익히고 있다면 단연코 아무 선택이나 해도 좋다.


 나의 책임과 역할은 아이가 타고 있는 자전거를 잡고 있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놓아주는데 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