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장을 가동하는 원료가 '석유'라면 '석유'를 당연히 많이 갖고 있어야 하고 물질적 풍요를 가능하게 하는 원료가 '돈'이라면 '돈'을 갖고 있는 것이 당연하다.
그렇다면, AI가 가동되는데 사용되는 연료는 무엇인가. 당연 영어다. 영어는 온라인상에서 사용하는 전체 언어 중 1위로 60%의 비율을 갖고 있다. 다시말하면 2위 러시아어는 기껏해봐야 8%다. 영어가 과반수를 넘었다는 것은 2위부터 지구상 존재하는 모든 언어를 다 합쳐도 영어보다 컨텐츠가 적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렇다면 동영상 컨텐츠의 경우는 어떨까.동영상 컨텐츠도 크게 다르지 않다. 영상으로 제작되는 모든 언에어서 영어가 차지하는 비율은 55%다. 2위인 스페인어가 5.5%내외다.
AI가 동시통역을 해주는 시대가 되면 혹은 번역이 빠르고 깔끔하게 되는 시대가 오면 달라질까. 그렇지 않다. 한국 넷플릭스 이용자 대부분은 영화에 '더빙 버전'이 있음에도 '원어'를 선택하는 경향이 있다. 이유는 시청자들이 종종 원어의 느낌을 더 살리고자 자막을 선호하기 때문이다. 원작의 음성과 분위기를 그대로 유지하면서 더빙이나 통역을 한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실제로 '오징어게임'이 넷플릭스에서 유행하는 동안, 다수의 외국인들은 '더빙'이 아니라 '자막'을 선택했다. 자막을 잘 읽지 않는 '영어 사용자'들에게는 꽤 의미있는 변화다. 실제 해당 영상을 더빙본으로 시청했을 때, 원어가 주는 느낌이 완전하게 전달되지는 못했다.
실시간 AI번역기와 통역기가 개발되어도 영어가 중요한 이유는 더 있다. 바로 기초체력 향상이다. 시속 300km를 달리는 자동차가 개발됐다고 하더라도 헬스장에는 운동을 하는 사람들이 수두룩하다. 그들 중 일부는 고급 승용차를 타고 오는 경우 많다. 헬스와 피트니스 산업에 대한 통계를 제공하는 주요 기관중 하나인 IHRSA는 헬스장을 이용하는 사람 중 고소득층이 많은 편이며, 이들의 연간소득이 75,000불 이상인 사람들이 전체 헬스장 회원의 43%를 차지하고 있었다. 특히 연소득 150,000불 이상인 회원들이 가장 헬스장을 자주 방문하며 이들은 연간 100회 이상의 헬스장을 이용하는 경향이 있었다.
이들은 성능좋은 자동차를 소유하고 있으며 내근직 업무를 하는 일이 많음에도 불구하고 끊임 없이 운동을 통해 자기계발을 했다. 다시말하면 AI가 동시통역을 해주는 세상이 온다고 하더라도 가장 중요한 것은 '기초체력'이다.
앞으로 영어의 입지는 어떻게 될까. 단연코 장담할 수 있는 것은 압도적 지위를 견고히 할 것이다. 이유는 이렇다. 30년 전만 하더라도 우리는 어떤 미국인이 점심시간에 무엇을 먹었는지 실시간으로 확인할 수 없었다. 그러나 지금은 어떤가. 지금은 SNS를 통해 엄청나게 많은 소통이 일어나고 있다. 이 소통의 비중을 생각해보자. 잠시 우리가 필터버블에 둘러쌓여 있다고 하더라도 결국은 60%의 절대 다수를 차지하고 있는 언어가 범람하지 않을 수 없다.
현재 유튜버 구독자 1~2위를 하고 있는 퓨디파이의 모국어는 스웨덴어다. 그러나 그는 스웨덴어 대신 영어로 동영상을 제작한다. 취미로 영상을 제작하던 시기를 지나, '영상 제작'이 '사업성'을 갖고 있다는 인식이 확산되면서 꽤 다수의 기업과 개인이 '영상제작'에 열을 올리고 있다. 기업의 목적은 무엇인가. '이윤추구'다. 기업은 '이윤'이 되는 방향으로 움직인다. 통계가 말하는 60%는 절대적 시장이다. 이런 시장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0.8%의 한국어 타겟을 노리는 것은 기업의 입장에서 리스크와 다름없다. 영상과 컨텐츠 시장이 '영어'로 제작 될수록 정보의 불균형은 더 심화된다.
'제주'만 봐도 그렇다. 제주도민의 대부분은 '제주도사투리'를 알아 들을 수 있으나, 나이가 많으신 '할머니, 할아버지'의 사투리는 제주도 토박이도 알아듣기 곤란한 경우가 있다. TV매체가 활성화되면서 벌어진 일이다. TV를 통해 표준어를 듣고 자란 젊은 세대와 기성 세대 간의 언어 격차가 보이지 않게 생겨난 것이다. 이런 예는 해외에서도 발생한다. 실제 뉴질랜드는 지역에 따른 사투리의 차이가 거의 없는 편이다. 그러나 여기서도 문제가 발생한다. 뉴질랜드를 비롯해 많은 영어권 나라에서는 '자체 제작'한 영화와 드라마 보다 '헐리우드 영화'와 '드라마'가 방영되는 경우가 많다. 그런 이유로 일부 영어 단어는 지방색을 잃고 '영어식 발음'으로 사용하는 경우가 있다. 뉴질랜드 영어는 전통적으로 비음운성 방언이다. 단어 끝이나 자음 앞에 있는 R발음을 하지 않는다. 그러나 미국 미디어의 영향으로 젊은 뉴질랜드인들은 R소리를 명확하게 발음하는 경우가 있다. 발음 뿐만 아니라 어휘자체에서도 영향을 받는다. 가령 Biscuit 대신 Cookie라는 미국식 어휘를 사용하거나 Rubbish 대신에 Trash라는 어휘도 종종 사용된다.
같은 영어권에서도 이처럼 언어동화 현상이 일어난다. 가만 돌이켜보면 우리의 삶 또한 다르지 않다. '알고리즘', '컨텐츠', '소프트웨어', '하드웨어', '서버', '네트워크', '데이터', '앱',' 어플리케이션', '데이터베이스', '스팸메일', 'URL', '블로그' 등이 그렇다. 앞서 언급한 단어들은 AI 통역사가 한국어로 변역해도 아마 그대로 영어로 나올 법한 단어들이다.
기본적으로 문화 발상지에서 범람해오는 모든 명사를 국어의 형식으로 변환할 수 없다. 변환한다고 하더라도 그것은 언어의 경제성에 의해 사라질 것이 뻔하다. 영어의 중요성은 다시 말하면 AI의 발달과 함께 적어지는 것이 아니라, 확실해질 것이다. 고로 지금이라도 영어를 공부해야 한다. 뭐든 '초기선점'이 중요하다.
지금까지의 영어 중요성은 거의 장난에 가깝다. 지금은 영어 컨텐츠 선점의 중요한 시기다.
아이폰이 보급화된 지 14년, 페이스북이 대중화 된지 16년, 유튜브가 대중화 된지 17년, 이런 컨텐츠 회사들이 컨텐츠를 선별하고 노출시키는 알고리즘을 도입한지, 한국을 기준으로 대략 9년 밖에 흐르지 않았다. 영어의 중요성은 지금부터 시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