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토아 학파 철학자 '세나카'는 말했다.
"우리가 가진 모든 것은 운명에게 빌려 온 것이므로 우리의 허락이나 아무런 통지 없이 운명이 언제든 회수해 갈 수 있다는 사실을 기억하라."
삶에 대해 빈손으로 왔다가 빈손으로 간다는 표현이 익숙하다. 고로 지금 나에게 주어진 기회와 삶, 사람, 상황 등 모든 것은 애초에 내것이 아니다. 세상은 언제든 빌린 것을 회수해 갈 권리가 있으며 그것이 회수될 때, 슬픔이 아니라 '감사함'을 가져야 한다.
물에 빠진 사람을 구해줬더니, 보따리 내놓는 겪으로 우리는 얼마나 세상을 원망하는가. 사랑하는 사람을 잃거나, 전재산을 날리거나, 끊임없이 벌어지는 시련도 모두 내것이 아니다. 그것은 세상이 나에게 빌리거나, 빌려준 것이며 빌렸으면 갚아질 것이고 빌려갔으면 돌려줘야 한다.
빌려준 이에게 감사한 마음을 가지고 있는가. 혹은 빌리는 마음과 갚는 마음이 다르고 있는가. 세상이 빌려준 그것을 감사하게 사용하고 돌려주는 것은 다음을 기약하게 한다. 빌려 줄 때 불평이 많고 돌려 줄 때, 원망을 받는다면 그것은 다음을 기약할 수 없도록 한다.
예전 개인적 아픔으로 고통스러운 시기를 겪고 있을 때, 친구가 말했다.
"네가 언제부터 그랬는데?"
냉정해 보이는 친구의 말은 폐부를 찌르고도 남았다. 한 번도 생각해 본 적 없었다. 주어진 것이야, 원래 있던 것이고, 있을 법한 일도 본래 있는 것처럼 살아가던 우매한 인간을 위한 일침이었다. 아마 신이 있다면 친구의 입을 통해 나의 어리석음을 깨우치게 하려 했을까.
친구의 의도는 내 깨우침과 정반대였지만 대화가 끝나고 생각에 잠겼다. 시간을 돌려 8살의 나로 돌아가면 내가 지금 잃은 것을 원망하는 것이 얼마나 어리석은가. 아무것도 갖고 있지 않던 아이에게 세상이 쥐어준 선물이 감사하다고 생각했던 적은 얼마나 있었던가.
20대 초반, 해외에서 젊은이들끼리 창업한 회사에서 초기에 함께 일했다. 사업은 나날이 번창했고 그에 비례하여 나 지위와 소득도 함께 올라갔다. 있어도 그만없어도 그만이던 '영주권'과 '연봉'따위에 연연하기 시작했다.
언젠가 사업에서 내 위치라 불안정해지자 조바심이 들었다. 수 년을 바친 이 곳에서 아무것도 얻지 못하고 나오게 되면 어찌해야 하는가.
그 불안감이 나를 옥죄고 상사의 말에 당차게 반대하던 자신감은 사라졌다. 나의 미래를 결정할 그들의 말에 예민해졌다.
그때 내가 상사에게 물었던 질문은 이랬다.
'만약, 방향성이 크게 바뀌어 함께 하지 못하게 되면 어찌될까'
함께 불안한 상황에 처했던 상사는 말했다.
'나는 이 일이 아니더라도 언제든 다시 시작할 수 있어'
그 차이었다. 모든 걸 잃어도 상관없다는 마인드는 생각을 넘어 행동에 차이를 주었고 말과 선택에도 차이가 생겼다. 쥐꼬리만한 성취를 잃을까봐 전전긍긍하던 나는 언제 그곳에서 일했는지 기억도 나지 않을 만큼 오래전에 퇴사를 결정했다. 어차피 퇴사할 것이라면 당당 했어도 좋지 않았을까.
일론 머스크가 사업을 시작하기 전에, 한 달 동안 30달러만 가지고 살았다. 극한으로 적게 먹고 적게 쓰던 그 일은 자신이 살아가는데 들어가는 최소한의 돈이 얼마인지를 확인하고자 했기 때문이다. 그는 자신의 바닥을 확인하고, 그 정도는 감내할 수 있겠다는 결심 후에 사업을 시작했다.
모든 걸 잃어도 좋다는 마음은 자신감을 만들어낸다. 모든 걸 잃어도 좋다는 마음은 모든 것이 본래 나의 것이 아니었다는 감사함으로 시작한다. 지금도 나와 함께 같은 공간과 시간을 스치는 수많은 것들이 있다. 그것이 영원할 것이라는 착각은 과거에도 그랬고 다른 곳에서도 그랬다. 그것들은 모두다 어디로 갔는가. 생각해보면 삶은 결국 모든 것을 빌려주겠노라 약속하고 빌려줬다면 반드시 그것을 앗아간다. 고로 빌린 모든 것에 감사함을 갖고, 돌려 줄 때 더욱 감사한 마음을 갖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