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명의 각 접미사는 도서의 용도와 목적을 설명하는 경우가 많은데, 조선시대 '왕'의 이름에 '-조'라던지, '-종'이라던지 문화적으로 말할 수 없는 격이 생겨 점차 분류의 명확성이 상실된 경우가 있다.
고전 도서에는 쉽게 '-전(-傳), -학(-學), -어(-語), -서(-書), -론(-論), -경(-經)'으로 끝나는 책들이 많은데, 이름만 보고도 대략 추론할 수 있다.
'전(-傳)'은 해석과 '전달'이 목적인 책이다. 대체로 어떤 인물이나 사건에 대한 이야기를 전달하는 목적을 가지고 있으며 사실보다는 지어진 이야기를 다루는 경우가 많다.
'홍길동전', '별주부전'과 같이 '전'으로 끝나는 글이 '허구'일 가능성이 많다는 것을 근거로 일부에서는 '유관순 열사'의 이야기를 담은 책을 '유관순 전'이라고 부르는지에 대해 의구심을 갖기도 한다. 가치판단을 내리지 않고 그들의 이야기를 옮기자면 안중근, 김구, 이순신 등 다양한 인물의 전기에는 사용하지 않는 '전(-傳)'이라는 접미사가 구태어 왜 유관순에만 붙었냐고 묻는다. 그들의 주장에 따르면 인물에 대한 이야기가 '당시 선전 목적으로 배포된 허구의 이야기'라는 주장이라는 근거라고 했다. 다시 말하지만 해당 이야기에 가치판단을 내리지 않기로 했다. 어쨌건 전(-傳)이라는 접마시가 가진 의미가 오랜 기간, 이야기의 정체성을 담는다는 사회적 합의가 있었기에 꾸준히 사용되지 않을까 싶다.
둘째는 '-학(-學)'이다. '-학(-學)'은 가르침이 목적인 책이다. 소학, 대학 등이 있다. 당연히 교육도서이며 대상과 목적이 분명한 책이다.
셋째, -어(-語)로 끝나는 책은 어떤가. '논어'와 같이 ' -어(-語)'로 끝나는 책은 이야기를 담은 책이고 '기록'이 목적이다. 실제 우리가 보고 있는 '논어'는 가르침을 담고 있으나 그 본질은 '기록'에 있다.
넷째, '-서(-書)'로 끝나는 책의 특징은 역사적 기록이나 문서를 의미하는 경우가 많다. 한서, 구당서, 신당서 등이 있다.
넷째, '-론(-論)끝나는 책은 '설명'이 목적이다. 이론에 대한 설명을 다루고 있으며, 자본론, 국부론, 사회계약론, 정의론, 이기론 등이 있으며 대체로 철학과 같은 순수학문에 대한 이해를 설명하는 글이 많다. 당연히 '외서'가 많다.
다섯. '-경(-經)'은 '원문 그대로'를 말한다. 성경, 불경, 도덕경, 서경, 시경, 금강경. 이런 책들은 원문 그대로를 담는다. 훼손을 최소화하여 전달하는 경우가 많다. 고로 해석의 여지 또한 많다.
나의 경우는 여기 '-경'에 관심이 많은 편이다. 이유는 각종 해석이 주는 오류를 최소화하고 원문이 담는 본질을 알고 싶어해서 그렇다. 원래 그렇진 않았고 본질을 탐구하고자 하는 노력은 최초로 '도덕경' 즉, '노자'를 보고 난 뒤에 그렇다.
'도가도 비상도', 노자가 말한 도덕경의 첫 텍스트가 주는 포용성에 매료된 뒤로 사실 진리라는 것은 '언어로 표현할 수 없음'을 알게 됐다. 언어로 비슷하게 표현하고자하면 반드시 오류와 왜곡이 만들어지고 이것을 최소화하기 위해 하나씩 풀어가다보면 온 우주를 모두 설명해야만 된다. 즉, 하나를 여럿으로 나누고, 다시 그것을 여럿으로 나누는 '분류학'의 관점으로 볼 때, 왜 '떼어내다'의 어원인 'sci-'가 '앎'과 같은 어원을 영문화권에서 사용했는지, 고로 왜 Scissors(가위)와 Science(과학)은 같은 어원을 공유하는지 알 수 있게 된다.
실제로 물리학을 제외한 거의 대부분의 과학은 '분류학'이며 하나의 덩어리를 여러 분야로 쪼개고 나누어 정리한 것이다. 고로 언어로 설명할 수 없는 '진리'라는 것은 굳이 언어로 따져봐아 '하나'라는 의미다. '진리'를 설명하는 '크리스천'은 왜 유일신을 '하나(하나님)'라고 불렀는지, 여기서 알 수 있으며 우리를 왜 '한민족'이라고 불렀는지 알 수 있다. 하나는 가장 작지만 아이러니하게 가장 크며, 여럿으로 나눌 수 있지만 결국 하나이며 존재와 비존재를 구분하는 시작점이고 유일하지만 모든 것이지 시작이지 않은가.
각설하고 얼마전, 관련 책을 구매하러 갔다. 서점 사장님께서 비매품으로 보이는 책 하나를 그냥 주셨다. '숫타니타파(Sutta Nipata)'다. 숫타니타파(Sutta Nipata)는 로 굳이 위에 언급한 방식으로 '명명'해 보자면 '경집(經集)이다. 숫타(Sutta)가 경전을 의미하며, 한자로는 "경(經)"이라고 번역하고 니파타(Nipata)가 모음 혹은 집합을 의미하여 "집(集)"이라고 번역한다. 살짝 열어보니 필사를 할 수 있게 되어 있는데, 기쁜 마음으로 받아 왔다.
머리가 복잡할 때는 사실 타이핑이 아니라 손글씨 필사가 최고이긴 하다. 오늘도 흐름따라 글을 쓰다보니 맥락 없이 길어졌지만 차치하고 말하고자 하는 바는 모든 것이 그 자리로 가게 된 것에는 이유가 있고, 이또한 나에게 온데에도 이유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