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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인환 Aug 10. 2024

[소설] 이태백 술잔 속에 담긴 달_설국

 "국경의 긴 터널을 빠져나오자, 눈의 고장이었다."

 소설 '설국'의 첫 문장이다. 단순한 지리적 묘사처럼 보인다. 다만, 이 문장은 꽤 많은 것을 함축한다. 우선 글의 '주어'는 무엇인가. 문장에 주어가 없다. 이는 '한국'과 '일본' 등 동양에서만 가능한 표현이다.

 영미권에서는 첫문장을 대체할 완전한 번안을 찾지 못했다. 가와바타 야스나리의 '설국'은 여러 번역가들에 의해 영어로 번역되었다. 번역마다 차이는 있으나 '에드워드 G. 사이든스티커'와 '노먼 케이저'의 번역을 보면 둘 다 문장의 주어 자리에 Train을 집어 넣는다.

 "The train came out of the long tunnel into the snow country."

 "The train emerged from the long border-tunnel-right into the snow country."

 다시 한 번 말하지만 '설국의 첫문장'에는 주어가 없다.

일본과 같은 어순을 사용하는 우리의 입장에서 조금 덜 특별할 수도 있겠으나, 영미권 독자들이 그 감성을 그대로 전달받기는 쉽지 않다.

 이 문장은 일본 문학을 넘어, 동양 문학 전체에서도 손꼽히는 명문이다. '야스나리'는 이 소설로 '노벨문학상'을 받는다. 아마 그 비중에서 이 첫문장이 차지하는 비중은 적지 않을 것이다. 첫문장은 눈으로 덮인 고장을 묘사한다. 다만 특별히 주어가 없다. 동양 특유의 함축적이고 서정적인 표현 방식이 특징이다. 개인적으로 생각하건데 문장의 함축성과 모호성은 '도가 사상'을 닮았다. 포괄적으로 수용하는 도가적 사상이 현대에와서 '양자역학'의 발전과 더불어 가장 현대적인 사상이 됐으나, 얼마 전까지 동양의 '포괄적 수용'은 '단순 모호성'으로 치부되기도 했다.

 인간이 인위적으로 꾸미지 않은 상태에서 진정한 의미를 발견하려던 '도가사상'처럼 '설국'은 명확히 '줄거리'를 말하기 쉽지 않다. 그저 있어 본 적 없는 일들이 있을 법한 일들처럼 서사되는 이야기이며 그 연결성이 너무 자연스러워 특별할 것 조차 없어 보인다. 흔히 말하는 '무위자연(無爲自然)'의 글이지 않을 수 없다. 실제 작가는 소설의 '스토리라인'에 집중하지 않았다. 작가는 그저 짤막짤막한 서정적 묘사를 담았을 뿐이며 이것이 그저 군데군데 자연스레 편집되며 하나의 소설 형태를 이뤘을 뿐이다. 작가가 담고자 하는 바가 명확하지 않으니, 독자가 소설에서 이해하는 바도 무엇인지 명확하게 보여지지 않는다.

 '도가도 비상도', '도를 도라고 부르면 도는 더이상 도가 아니다. 즉, 소설은 그저 자연과 현상을 담고 명확히 의도를 보이지 않는다. 이러한 소설 전반의 정체성은 앞서 말한 첫 문장이 보여준다.

 자연이 주는 순수함, 고요함, 그 속에 숨겨진 심오함.

 넘어서는 지리적 경계, 또한 넘어가는 삶과 죽음의 경계, 현실과 꿈의 경계, 이 세계와 저 세계의 경계를 주어 없이 페이드아웃으로 넘어서며 독자는 긴터널을 뚫고 완전히 다른 세계에 젖어들게 된다.

 소설이 담은 난해함과 동양 문학의 정체성, 깊은 철학적 사유는 단순히 '이러하니, 저러하다'로 정의할 수 없는 포용성을 가진다. 서양식 사고 방식이 이미 대세를 이룬 현대의 우리에게도 이 모호성이 굉장히 이국적이여 보일 정도다. 인간의 이성이 진리를 담을 수 있다는 접근은 '데카르트, 스피노자, 라이프니츠'와 같은 철학자들에 의해 정의됐다. 이는 서양의 논리적이고 명확한 사고를 만들어 '합리주의'나 '이성주의'의 근간이 됐다.

 괜히 그렇다. 우리 또한 '데카르트'와 스피노자'의 이름을 '노자'보다 더 쉽게 들으며 동양의 철학적 전통인 '직관', '모호성', '전체적 사고'가 가진 '애매함'을 답답하게 여긴다.

 어쩌면 우리는 지리적 입지를 '동양'에 두고 그 철학을 서양으로 옮겼는지 모른다. '야스니라'의 설국열차가 점차 다른 세계로 이동했던 것 처럼 우리는 명확해야 했던 것들에서 벗어나, 과거 이 땅에서 우리 조상이 가졌던 동양적 사고관으로의 인식 변화를 겪어 낼지도 모른다.

 그렇지 않은가. 달이 가진 '구성성분, 반지름, 둘레'가 아니라 이태백의 술잔 속에 담겨진 달이 조금더 더 달을 잘 표현하다고 볼 수도 있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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