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학(儒學)의 고전 중 '중용'에는 이런 말이 있다.
"어떤 사람은 태어나면서 그것을 알고, 어떤 사람은 배워서 그것을 알며, 어떤 사람은 곤궁해서 그것을 알게 되니, 그것을 아는 데에 이르러서는 매한가지다. 어떤 사람은 편안하하게 그것을 행하며, 어떤 사람은 이롭게 여겨서 그것을 행하며, 어떤 사람은 억지로 힘을 써서 그것을 행하니, 그 공을 이룸에 이르러서는 매한가지다."
'중용'은 공자의 손자인 '자사'가 지은 책이다. 이는 유교의 핵심 사상을 담고 있다. 앞에서 말한 구절은 중용 제20장에 있는 말로, 진리를 깨닫는 방법과 결과를 말한다.
똥인지 된장인지 꼭, 찍어먹어 봐야 하는 성미는 분명하게 진실을 파악할 수 있으나, 결국은 똥을 먹어야 하는 바를 겪는다. 세상에는 반드시 겪어보지 않아도 될 일이 있다. 가장 확실한 방법을 찾겠다는 오류는 결국 더 큰 오류를 갖게 된다. 사실 경험만큼 불확실한 정보도 없기 때문이다.
고대 그리스의 수학자 에라토스테네스는 기원전 3세기에 책상 머리에 앉아서 지구의 둘레를 구했다. 알렉산드리아와 시에네 두 곳에서 태양의 고도 차이를 확인하고 도시 간의 거리와 각도 차이를 이용하여 지구의 둘레를 구한 것이다.
직접 경험하지 않고도 비교적 정확한 지식을 얻을 수 있다는 것은 우리를 앞서 나가게 한다. 반드시 줄자를 가지고 측정해야 속이 후련한 이들에게는 눈앞에 막대기나 빵의 크기 정도를 측정할 수 있겠으나, 원리를 알고 본질을 꿰뚫고 있는 이들은 사과의 둘레를 구하는 것 만큼이나 태양의 둘레를 구하는 것이 쉽다.
어떤 사실을 아는데 있어 반드시 직접 경험해 볼 필요는 없다. 세상에는 꼭 직접 겪어 보지 않아도 되는 일들이 너무 많다. 역시나 고대 그리스에서는 바퀴의 둘레를 구하기 위해 애를 썼다. 그들이 갖고 있는 '자'는 직선만 측정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직선의 '자'를 이용하고도, 즉 자신이 가지고 있는 최소한의 도구만 가지고도 '원의 둘레'를 구하는 방법은 없을까. 그리스의 수학자 아르키메데세는 원의 둘레가 지름이 커질 때 같은 비율로 커진다는 사실을 발견했는데, 이 원리를 '원주율'이라고 불렀다. 즉, 모든 조건이 완전해져야 진리를 알 수 있는 누군가에게 열등한 상황은 '포기'를 만들어내는 이유가 되곤 한다.
다만 자신이 가지고 있는 것을 최대한 활용해서 진리를 아는 것은 얼마나 경이로운가. 종이와 펜으로 수십 번의 시뮬레이션을 굴려 뒤에 쏘아올린 아폴로 11호는 '실패'라는 경험을 '현실'에서 만나지 않은 것이 '천문학적인 금액과 시간'을 아낀 사례다. 우리는 너무나 쉽게 '종이'와 '활자' 위에서 실패를 경험할 수 있으며 이렇게 경험한 실패는 '성공'의 확률을 드라마틱하게 올리는 인자가 된다.
그렇지 않은가. 열번 중 한번의 확률이 성공의 확률이라고 할 때, 아홉 번을 종이 위에 실현하고 나머지 한번을 현실에 적용하는 것 말이다.
삶의 복잡성은 수학과 비견할 수 없다. 그 어떤 수학공식도 내일 내가 만날 사람의 기분을 정확하게 측정할 수 없으며, 내일 내가 만날 상황과 기분을 정확하게 예측할 수 없다. 너무나 커서 '무한대'에 가까운 '시행'이 흘러가 버리는 것이 '삶'이다.
우리의 대부분은 그것을 '머릿속'으로 시행하기도 한다. '~하면 어쩌지'하는 실체없는 망상을 여럿차례 되뇌면서 말이다.
이는 포도알의 갯수를 세기 위해 포도알을 집어 숫자를 되뇌며 다시 같은 통에 집어 넣는 일이다. 이미 센 포도를 다시 집어들고, 그 포도를 같은 통에 다시 집어 넣길 반복하며 어쩌면 아둔하게 포도알을 모두 파악 할 수 있다는 착각을 한다.
내가 센 포도를 다른 그릇에 담거나 셌다는 표시를 하는 것만으로 우리는 시도하지 않은 다른 시행을 할 수 있으며, 그 자체만으로 앞으로 나아가는 효과가 있다.
글은 왜 쓰는가.
글은 왜 읽는가. 글을 쓰는 이유는 내가 센 포도알을 다른 통에 담아두는 행위이며, 센 포도에 커다란 X자 표시를 해두는 행위이다.
글은 왜 읽는가. 글을 읽는 이유는 삶에서 주어진 '모든 행할 필요가 없는 행위'에 불필요한 시행횟수를 줄여 '에너지와 시간, 금전'을 낭비를 줄이는 것이다.
그렇지 않은가. 직접 경험해보고 아는 걸 원한다면 태양의 지름을 구하기 위해 얼마의 노력이 구해져야 하는지. 조금 현명하다면 원리를 먼저 알고 계산이라는 것을 '종이' 위에 해보지 않겠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