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NA는 모든 것을 설명하는가.
흔히 우리는 DNA를 본질이라 생각한다. DNA는 우리의 하나부터 열까지를 결정 짓고 정체성의 모든 것이라 여기기도 한다. 다만, DNA는 우리를 구성하는 여러 정보 중 하나일 뿐 그것이 전부는 아니다. 생명은 정보를 활용하고 변화하는데 단순히 DNA가 아니라 더 복합적인 정보를 필요로 한다. 그것의 정보의 흐름과 맥락 속에 우리의 정체성은 만들어진다.
이는 건축가가 건물을 설계하는 것과 같다. 도면 하나로 건축물의 모든 것을 설명할 수는 없다. 도면은 건축물의 기본적인 구조를 설명할 수 있지만, 실제로 그 선물이 완성되기까지, 재료, 환경, 작업자의 숙련도 등 무수히 많은 요소들이 개입한다. 우리의 DNA도 다르지 않다. DNA는 설계도일 수는 있다. 다만 그것이 어떻게 실현되는가는 완전히 다른 문제가 된다.
실제 우리를 만들어내는 것은 DNA만큼이나 환경이 크다. 세포 간의 상호작용과 외부 환경의 영향이 얼마나 중요한가. 세포는 서로 대화하고 신호를 주고 받으며 끊임없이 변하는 환경에 적응한다. 이런 상호 작용은 단순히 유전자에 의해 지시된 기계적 행동이 아니라, 생명이 가진 능동적인 역동성의 결과라고 볼수 있다.
어항 속의 금붕어를 예로 들수 있다 같은 종의 금붕어를 어항 속에서 키우면 5cm밖에 성장하지 않지만 이것을 연못에서 키우면 30cm 이상 자란다. 우리는 정해진 운명에 따라 살아가는 기계적 존재가 아니라, 주변 환경과 상호 작용하며 스스로 창조해 나가는 존재인 것이다.
우리를 유전자의 집합체로만 보는 것은 우리 스스로를 지나치게 유물론적으로 보는 관점을 닮았다. 생물학이라는 과학의 영역에 '철학'을 대입하는 것이 자칫 우습지만 우리는 스스로 생각하고 변화하며 바꿔 낼 수 있다.
뇌의 '신경가소성'이라는 개념이 있다. 신경가소성은 우리의 뇌가 학습, 경험, 혹은 새로운 환경에 따라 재구성되고 변화할 수 있음을 말한다. 예전에는 뇌가 성장과 성숙이 완료되면 더이상 변하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다면 현대 신경과학은 말한다. 뇌는 끊임없이 재구성된다는 사실을 말이다. 이 변화는 우리가 어떤 환경에 놓이고 어떤 경험을 하느냐에 따라 다르게 나타난다. 이와 관련한 예시로 '런던의 택시 기사'에 대한 실험이 대표적이다.
런던의 택시 기사가 되기 위해서는 엄청나게 난이도가 높은 시험을 통과해야 한다. 복잡하기로 유명한 런던의 거리 구조를 모두 외워야 하고, 목적지까지 가장 빠르고 효율적인 경로를 찾는 능력을 요구 받는다. 이 시험을 준비하면서 수년 간 기사들은 런던의 모든 길을 철저히 암기 한다. 이 과정에서 뇌의 해마라는 부위가 크게 발달하는데, 해마는 공간 기억을 담당하는 부분이다. 뇌는 새로운 정보를 배우고 환경에 적응함으로써 물리적 변화를 만들어낸다.
이는 우리의 뇌가 경험을 통해, 혹은 환경을 통해 재창조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단지 유전자에 의해 고정된 틀 안에서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환경과 경험을 통해 뇌가 새롭게 구성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런던 택시 기사들이 그들의 환경적 요구에 맞춰 뇌를 변화시키는 것 처럼, 우리는 끊임없이 외부자극에 반응하고 스스로를 변화시킬 수 있다.
유전자가 아무것도 아니라는 것을 말하는 것은 아니다. 유전자는 분명 우리의 삶의 방향을 제시하는데 아주 중요한 요소다. 그러나 그것이 우리의 모든 것을 결정한다고 할 수는 없다. 인간은 단순히 DNA에 프로그래밍 된 형태로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환경에 따라 언제든 재구성되고 새로운 경험을 통해 완전히 새롭게 변화하기도 한다.
8살 일란성 쌍둥이를 키우면서 알게 된 것이 있다. 과학적으로 일란성 쌍둥이의 유전자는 완전히 동일하다. 그러나 이 둘은 성격도, 취향도 다르고 완전히 다른 인격으로 성장한다. 물론 우리 아이를 보건데, 키, 몸무게, 눈의 색깔처럼 유전자가 결정하는 기본적인 정보도 분명 있다. 그러나 아이를 구성하는 본질은 완전히 다르다. 어쩌면 비슷조차 하지 않다고 느낄 때가 있다.
다시 말해서 생명이란 단순 결정된 것이 아니라, 끊임없이 변화하는 재구성의 과정 속에 존재한다. 고로 우리는 '자유선택'에 의해 존재하고 변화할 수 있는 존재다.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