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는 초콜릿을 좋아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싫어하는 사람도 있다. 동물을 좋아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싫어하는 사람도 있다. 누군가는 여름을 좋아하기도 하고 누군가는 여름을 싫어한다.
자, 그렇다면 초콜릿과 동물과 여름에는 어떤 문제가 있나.
아무런 문제가 없다.
고로 무언가를 넌지시 건내는 일에는 '죄'가 없다. 건내지는 '무언가'에도 문제가 없고, '건내는 행위'에도 문제가 없다.
다만 문제가 발생할 때가 있다.
건내받는 쪽이 싫어하는 경우가 있다. 변수가 워낙 많아서 상대가 어떻게 받아들일지 모두 예측할 수 없다.
누군가가 말했다.
'참 여성스러우시네요.'
칭찬일지 모른다. 다만 상대는 불쾌함을 들어냈다. 이런 경우는 적잖게 볼 수 있다. 나의 의도와는 다르게 상대가 받아드리는 경우 말이다. 이런 경우가 몇번 반복되면 그것은 학습된다.
이후로 우리는 상대에게 어떤 말을 하고 걱정을 할 때가 있다.
'싫어하면 어떡하지' 혹은 '잘못 받아들이면 어떡하지'
말 뿐만아니라 행동이나 상황도 그렇다. 같은 행동과 상황도 사람에 따라 다르게 인식한다.
가난한 집에서 태어난 것
초등학교를 중퇴하여 학력이 부족한 것
몸이 병약한것
이 셋은 어떤 누군가에게는 '성공하지 못할 이유'가 되지만 일본 경영의 신인 '마쓰시타 전기산업(현 파나소닉)의 창업자인 마쓰시타 고노스케에게는 성공의 비결이었다.
그는 남들이 '불행'이라고 받아드린 이 세가지를 자신이 성공할 수 있었던 인자로 인식했다. 삶을 바라보는 관점이 다르다. 어떤 누군가는 사람을 만나면 에너지를 얻고 누군가는 혼자 있을 때 에너지를 얻는다. 이 둘은 서로를 완전히 이해하지 못한다. 고로 함께 있을 때 에너지를 얻는 사람은 혼자 있는 사람의 에너지를 채워주기 위해 끊임없이 부르고, 혼자 있을 때 에너지를 얻는 사람은 함께 있는 사람이 에너지를 채울 수 있도록 혼자 있는 시간을 주도록 배려한다.
이 배려가 오해가 되고 서로 갈등이 생기는 경우는 적잖다.
여기서 가장 중요한 것은 '아들러'의 이론이다. 아들러의 이론은 물리학의 '상대성 이론'을 닮았다. 상대성 이론은 빛의 속도를 절대적 기준으로 둔다. 빛의 속도를 절대적 기준으로 두면 시간과 공간은 상대적으로 변한다.
아들러의 이론도 마찬가지다. 현상과 관계에 절대적 기준을 두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과제에 절대적 기준을 두는 것이다. 자신의 과제에 집중하게 되면 타인과의 관계는 상대적으로 변한다.
빛의 속도가 모든 관측자에게 일정하듯, 우리의 과제도 우리가 충실히 수행해야 하는 절대적 기준이 된다. 즉, 내가 어떤 말을 하거나 선물을 하는 것은 그것으로 나의 과제를 다한 것이다. 그것을 받고 기뻐하거나 그렇지 않은 것은 '상대의 과제'이다. 상대의 과제를 간섭하려는 시도는 갈등으로 이어진다.
예를들어 어떤 말을 하거나 행동을 할 때, 그 말과 행동이 상대에게 어떻게 받아들여질지에 대한 걱정은 사실 내 '과제'가 아니다. 상대가 그것을 어떻게 해석하고 받아드리는지는 그들의 '과제'다. 내가 할 일은 내가 할 수 있는 범위 내에서 최선을 다해 나의 과제를 완수하는 것 뿐이다. 마치 물리적 세계에서 시간이 각자 다르게 흐르는 것 처럼, 나의 과제와 상대의 과제는 분리되어 있으면서 서로 영향을 끼친다.
간혹 우리는 타인의 과제까지 내가 직접 통제할 수 있다고 믿는다. 상대가 어떻게 반응할지 걱정하며 내가 더 많은 책임을 떠안는다. 이는 불필요한 스트레스다. 빛의 속도를 기준으로 둘 때, 시간과 공간이 자연스럽게 상대적으로 변화하듯, 나의 과제에 집주아면 상대의 반응 역시 자연스럽게 따라오게 되어 있다. 중요한 것은 내가 나의 과제에 충실할 때, 관계는 그에 따라 더 유연하게 흘러간다는 것이다.
아들러의 '과제분리'는 '상대성 이론'처럼 우리의 삶에 적용할 수 있는 실질적인 방법론이다. 내가 할 수 있는 일과 할 수 없는 일을 명확히 구분할 때, 우리는 더 자유로워지며 타인과의 관계역시 더 건강하게 형성된다.
자칫 가장 이기적인 기준이 될 수 있는 '과제 분리'는 서로가 각자의 세계에서 완전하게 작동되는 '상대성 이론'인 셈이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