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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인환 Sep 08. 2024

[희곡] 왜 모두가 나의 아들인가_모두가 나의 아들


 아서 밀러의 희곡 '모두가 나의 아들'은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미국의 평범한 가정을 말한다. 테마는 '비극'이다. 주인공 조 켈러는 전쟁 중 불량 비행기 부품을 납품해 군인의 목숨을 앗아간다. 또한 자신의 이익을 위해 그 책임을 동업자에게 전가한다. 이로 전쟁에서 아들을 잃은 많은 가족은 고통을 받는다. 다만, '조'는 자신의 선택이 '정당했다'고 믿는다. 가족을 위해서라면 어쩔 수 없다는 것이다. 시간이 흐르고 그의 아들인 '크리스'는 아버지의 진실을 알게 된다. 결국 가족은 이와 관련한 갈등을 겪는다.



 우리가 하는 선택은 '선'과 '악'으로 명확히 구분지을 수 없는 경우가 많다. 우리가 맞이하는 선택은 항상 이런 식이다. 희곡과 같이 어떤 선택은 가족을 위하거나 지극히 개인을 위한 '선'일수 있고, 어떤 선택은 '사회적 책임'을 동반한 결정일 수도 있다. 다만 모든 선택에는 그 이면에 감춰진 '책임'이라는 것이 따른다.


 가장 좋아하는 드라마 '허준'에는 비슷한 선택의 결과에 대한 장면이 나온다. 많은 이들에게 존경 받고 심지어는 역사적으로 위대한 업적을 이룬 '허준'은 드라마 후반부에 가서 '아들'의 '원망'을 듣는다.


 임진년, 왜군이 쳐 들어왔을 때, 불에 탈 위기에 처한 '서책'을 짊어지기 위해, '국왕'의 호위길을 이탈했고 경황없는 전쟁의 위기에서 '가족'을 새까맣게 잊어 버린다.



 이 드라마에는 굉장히 철학적인 서사가 있다. 바로 '허준 아버지', '허론'에 대한 이야기다. 드라마 상 허론은 굉장히 덕망있는 무반계 양반이다. 다만 '허론'은 '밀무역'이라는 중범죄를 지은 자식의 죄를 덮기 위해, 자신의 이름에 치명적인 선택을 한다. 반대로 '허준'의 경우에는 자신의 자식이 위독한 상황에서도 끝까지 순번을 지켜 아들을 치료하는 지독함을 보인다. 어떤 것이 옳다고 할 수 있는지의 문제가 아님은 분명하다. 어떤 가치관으로 상황을 보느냐에 따라, 분명 다른 평가가 나올 법하다. 허준의 융통성 없음은 분명 가족들에게 치명적인 불행이었겠지만, 역사적으로 더 많은 사람을 살린다. 그렇다면 그의 행동은 완전무결한 '선'으로 자리매김할 수 있는가. 알 수 없다.



 '모두가 나의 아들'이라는 제목은 작품의 주제와 상징성을 갖는다. 제목은 단순히 한 가족의 이야기가 아니다. 이는 인류 공동체와 사회적 책임에 대한 메시지를 담는다. '조 켈러'는 자신의 비도적적 선택으로 전쟁 중 수많은 군인의 목숨을 앗아간다. 그의 선택은 직접적이지는 않다. 이는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 사건처럼 굉장히 철학적 사고를 요하는 선택이다. 그가 만든 불량 부품으로 인해 죽은 군인들은 전쟁터에서 자신의 자식이 사망한 모든 부모들의 아들이다. 고로 '모두가 나의 아들'이라는 제목은 조가 자신의 아들만 보호하려 했던 이기적인 태도와 전쟁에서 죽어간 많은 군인에 대한 책임을 상기시키는 역할을 한다.



 희곡이 쓰이진 배경의 영향으로 희곡이 말하고자 하는 바는 모호하지 않다. 다만 이를 읽는 독자의 입장에서 생각해볼 여지는 분명하게 있다. 희곡에서 크리스는 아버지의 비밀을 알게되고 상황과 아버지에 대한 배신감을 느낀다. 그는 자신의 정체성과 자신이 세운 도덕적 가치관이 무너지는 경험을 한다. 우리 대부분은 성장과정에서 부모의 가치관을 기준으로 삼고 그것에 의지하여 자신의 세상을 구성한다. 다만 그러한 부모가 자신이 믿고 있던 도덕적 기준을 배신 할 때, 그 충격은 분노나 슬픔을 넘어, 나는 누구인가 하는 근본적 질문으로 이어진다.



 이를 보면, 얼마 전 읽었던 소설인 '다자이 오사무'의 '인간실격'이 떠오른다. 다자이 오사무 역시 꽤 부유한 배경을 가지고 있었으나 그 부의 출처가 '대부업'이라는 사실은 그를 괴롭게 한다. 그의 사상적 배경에는 '마르크스 사상'이 자리잡았기 때문에 그의 출신 배경과 생각해 볼 때, 자아에 대한 모순과 혼란이 필연적이었다. 실제 다자이 오사무는 이러한 배경과 자신의 철학에 대한 인지부조화로 삶을 괴로워하다가 결국 자살로 생을 마감한다. 이는 한국계 미국인 소설가 이민진 작가의 소설은 '파친코'와 비슷하다.



 결국 여기서 벌어지는 모든 비극은 '단순히 한 가정의 비극'아니다. 이는 우리 사회 속에서 서로에게 책임을 지고 있다는 사실을 상기한다. 우리가 내리는 선택들이 단순히 개인적 이익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더 큰 사회적 맥락 속에서 어떤 의미를 가지는 지에 대한 자각이 필요하다. 아들러가 말한 바와 같이, 인간은 관계속에서 성장한다. 진정한 도덕적 선택이란 타인의 존재를 인식하고 그들과의 관계속에서 책임을 다하는 것이다. 결국 '모두가 나의 아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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