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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인환 Sep 18. 2024

[생각] 전자책 보다 종이책을 선호하는 이유

 종이책이 무조건 옳다고 할 수는 없다. 쌀밥이 '베이스'지만 '짜장면'을 먹는 날도 있는 것처럼 말이다. 그것은 때와 장소에 따라 다른 것이고 선호에 따라 비율이 다를 수 있는 것이다. 어느 하나만 고집할 필요는 없다.

 다만 기본적으로 하나만 선택하라면 '종이책'이다. 이유는 단순하다. 책을 많이 읽는 사람은 공감할 수 있는 내용인데, 서재를 훑다가 종이책 '책등'의 이름만 스쳐도 짧은 순간, 책과 했던 기억이 스쳐 지나간다. 어디서 읽었는지, 언제 읽었는지, 어느 방에서 읽었고 당시 시간은 어땠는지. 때에 따라서는 커피를 먹고 있었는지, 이런 사소한 정보가 모두 스쳐 지나간다.

 '모든 것은 기본에서 시작한다'라는 손웅정 작가의 책등을 보면 떠오르는 장면이 있다. 

 우연히 유튜브에서 그의 인터뷰 영상을 보게 됐다. 당시 시간은 10시가 넘어섰다. 그 책을 반드시 사겠노라, 다짐 후에 동네 책방으로 달려갔다. 곧 마감시간이었다. 곧바로 그 책을 구매하고 집으로 돌아왔다.

 그날은 비가 왔고 우산도 없이 뛰어 갔다온 탓에 온 몸은 젖어 있었다. 빗물을 대충 털고 책을 펴서 읽어 내려갔다. 단숨에 읽었다. 

 한참을 읽고 있었다. 왼손으로는 읽은 책장 부분을 짚고, 오른 손으로는 읽을 책장을 짚고 있었다. 그 두께가 서로 비슷했으니 아마 150쪽에서 160쪽 사이쯤 될 것이다. 분명하건데 오른쪽 하단을 읽고 있었다. 책 가운데를 0점으로 볼 때 좌표평면상 제4사분면에 해당하는 곳에 '손흥민' 선수가 상을 받아오는 이야기가 나온다. 이때 손웅정 감독은 '들어오면서 상장과 상패는 분리수거하고 들어와라'라고 말하는 부분이 나온다.

 '엇?'

 맥락없이 깊게 들어온 '훅'으로 아차 싶었다. 

'내가 읽은게 맞나?'

그때는 '손웅정 작가'의 '미니멀리즘'에 대한 철학을 모르고 있을 때 였다. 나와 같으면 '그 단호함'을 자랑이나 하듯 구구절절 설명했을 텐데, 손웅정 작가의 책은 단촐히 '분리수거하라'는 정도만 언급하고 쿨하게 다음으로 넘어갔다.

 밖에는 비가 오고 있었고 나는 주방과 거실 사이 바닥에 쪼그려 앉아서 급하게 방금 구매한 책을 읽고 있었다. 책장이 후딱 후딱 넘어가는 아쉬움의 감정, 아이들이 방에서 자고 있는 상황. 모든 것이 선명하게 기억에 남는다.

 그뿐만이랴,

'히가시노 게이고'의 '편지'를 읽을 때가 기억이 난다. '히가시노 게이고'의 편지는 군생활 중에 읽었다. 나는 두돈반 트럭을 타고 '군량미'를 싣고 부대를 돌고 있었다. 두돈반 운전석 좌측에는 사용하지 않는 사이드 브레이크가 있다. 사이드 브레이크가 있는 공간에는 딱 책 한 권 정도가 들어가는 공간이 있다. 그 곳에 책을 세워두고 운행을 했다. 목적지에 도달하면 운전병은 쌀이 내려가는 동안 차량 안에서 대기하게 된다. 그때 읽던 책이다. 편지를 읽을 때는 꽤 대기 기간이 길었다. 책을 읽는 내내 몰입을 했다. 강렬한 첫 부분과 이어지는 '살해범'에 대한 입체적인 시각은 신선했다.

 책을 읽다가 고개를 들었다. 그날은 날이 참 맑았는데 하늘은 하늘색이고 땅은 땅색이었다. 차량은 커다란 나무를 바라보고 있었다. 함께 탑승하는 선탑자가 늦어졌다. 조금 지나치게 늦고 있다는 걱정, 빠르게 흘러가는 플롯.

 그 긴장감이 가슴을 두근 거리게 했다. 부대에 도착해서는 주황색 하늘에 거뭇한 땅색에 책의 마지막 부분을 읽었다.

 그 기억. 책의 사사분면 어딘가에 눈을 두고 있을 때의 추억. 책의 두께, 향, 감촉, 그 읽는 공간과 온도 모든게 새록 새록 기억에 난다. 신기할 정도로 모든 책에 대한 추억이 돋는다.

 다만 전자책에는 그런 것이 적다. 전자책은 감촉도, 향도, 추억도 없다. '내용을 습득'한다는 매우 비인간적인 활동이라는 느낌이 강하다. 오디오북에서도 간혹 있는 '책'과 함께하는 추억이 이상하리만큼 전자책에는 없다.

 최근 나의 최애인 '하이센스A5'를 처분했다. 처분한 이유는 전자책에 대한 회의감은 아니다. 꽤 충동적인 이유였다. 어느날 문뜩 전자책을 충전하려고 하는데 5핀 충전기로 충전해야하는 번거러움이 충독적 판매를 독촉했다.

 다시 사야하나,

그러나 전자책으로 책을 읽으면 그런 추억이 전자처럼 휘발될 것만 같았다. 요즘 '팔마'라는 이북리더기가 '핫'하다고 하는데, 마음만 갈등하며 항상 '아이패드 미니6' 흑백반전으로 책을 읽는다.

 불을 끄러 가지 않아도 된다는 장점.

 시대나 유행을 타는 주제.

 소장하기에는 뭔가 아쉬은 책.

 주제가 민망한 경우.

 도서를 살지, 말지 애매한 경우.

그런 경우가 있기에 전자책은 아직 포기 할 수가 없다. 다만 분명한 것은 전자책은 빠르게 끓여 먹는 '컵라면 정도의 끼니'가 되기는 하지만 '주식'이 되기에는 뭔가 부족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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