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 완주하지 못했지만 '모던패밀리'라는 미국 드라마의 컨셉을 좋아한다. '모던패밀리'를 알게 된 것은 유학 시절이다.
시트콤 '프랜즈'를 완주하고 비슷한 프로그램을 찾던 중이었다. 함께 유학 중인 친구가 '모던패밀리'를 추천했다. 얼마보다 멈췄다. '배경 웃음 소리'가 없어서다. 시트콤을 보면 웃음 포인트마다 사람들의 웃음소리가 삽입되는 경우가 있다. '모던패밀리'의 경우에는 이 소리가 없다. 고로 어디에서 웃어야 할지 포인트 찾기 어려웠다. 당시 배경에 깔리는 '웃음 소리'에 대해 여러 이야기가 나오던 참이다. 강제 웃음을 유도 한다는 이야기부터 '웃음'이라는 주관적인 포인트를 공급자가 결정한다는 꽤 철학적인 이유도 있었다. 다만 웃기 위해 보는 프로그램에 '철학'은 좀 빼고 보고 싶었다. 개인적으로 공급자가 '웃음 포인트'를 결정해주는 드라마를 선호하긴 했다.
그 뒤로도' 모던패밀리'는 한참 내 관심 밖이었다. 단순히 배경으로 깔리는 웃음이 없어서가 아니다. 당시 드라마의 소재가 상식 밖이라고 여겼다. 드라마에는 일반적인 가족이 나오지 않는다.
젊은 이민자 여성과 나이든 미국 남편. 동성커플. 입양. 이혼 등 다양한 가족의 형태이 소개된다. 당시 드라마가 짜놓은 독특한 가족의 형태가 참 '미국스럽다'고 생각했다. '일반적인 가정'의 형태가 아니라고 생각했기 때문일 것이다.
'일반적인 가정'이란 어떤 형태일까.
아마 중형 세단 자동차를 소유한 4인 가족.
아버지의 직업은 화이트컬러에, 어머니는 전업주부.
수도권 30평 대 아파트.
거실에 커다란 쇼파 그리고 TV.
저녁이 되면 가족이 모여 저녁식사를 하고 후식으로 과일을 깎아 먹으며 웃음꽃이 피는, 주말에는 온 가족이 근처 공원으로 나들이가는 그런 가정일까.
학창시절 만화, 드라마, 책에서 보던 가정은 다 그런 식이었다. 그러나 우리집은 아니었다. 해가 지면 아버지, 어머니는 땀과 흙이 잔뜩 묻은 작업복을 입고 돌아오셨다. 해가 뉘엿뉘엿 지면, 좌식 식탁에 앉아 어제 먹던 찌개를 데워 먹었고 후식으로 '요플레'를 따먹었다. 아버지는 다먹은 밥사발에 보리차를 담아서 드셨고 요플레 뚜껑을 핥아 먹으며 된장찌개가 대충 묻은 수저를 핥아 먹고 '요플레'를 마저 먹었다.
우리집은 할아버지께서 소유하셨던 '감귤보관 창고'를 개조한 집이었다. 꽤 벌레가 자주 출몰하고 가끔 물이 새기도 했다. 변기에 앉을 때는 귀뚜리마, 바퀴벌레, 민달팽이가 변기에 붙어 있지는 않은지 항상 살펴야 했고 할머니댁에 있는 푸세식 화장실이 아니라는 사실에 만족했다.
우리집이 일반적이지 않다고 여겼다. 아버지께서 양복을 입고 출근 준비를 하시면 어머니께서 넥타이를 고쳐주는 집은 아니었다. 그렇다고 불행하다는 생각은 해 본 적은 없다. 집은 꽤 화목한 편이었고 나름 모자람 없이 자랐다.
아마 '공자'가 말한 주어진 위치와 역할이 있다는 철학에 공감했기 때문일 것이다.
'서울사람'과 '지방사람'은 원래 다르다는 인식.
고로 나와 서울 사람은 철저히 다른 삶을 사는 것이 당연하다는 인식.
왕은 왕답게, 신하는 신하답게, 아버지는 아버지답게,
일반적인 가정은 일반적인 가정답게
우리가족은 그냥 우리가족답게.
고등학교를 올라갔다. 우리집이 일반적이지 않다는 인식을 한 채 다른 아이들을 바라 보았다. 나처럼 특수한 사람은 적고 모두 일반적인 가정에서 자랐을 것이라고 여겼다. 모두가 가족에 대한 이야기라면 입을 닫고 있었고 겉으로 보기에 모두가 평온해 보였다.
그것이 사실이 아니라는 사실은 한살 한살 나이를 먹으며 알게 됐다. 생각보다 편부모가 많았고, 생각보다 동성애가 희귀한 일이 아니었다. 폭력적인 아버지, 폭력적인 어머니도 판타지 속 이야기가 이었다.
아이를 버리고 도망간 어머니, 재혼한 아버지의 자녀, 재혼한 어머니의 자녀와 형제 자매가 되는 일, 서로가 꽤 불편한 관계가 되는 일도 적지 않았다.
유학 시절에 알고 지내던 형이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아버지는 그냥 작게 회사를 운영하시는 평범한 집'이라고 했다
그 '작게'라는 모호한 '부사'가 직원 300명이었다는 사실을 보고 적잖게 놀랐다.
'직원 300명이 작아?'
형은 나의 놀람에 놀랐다. 왜 그런 포인트에 놀라는지를 모르는 눈치였다.
'일반적인'이라는 말은 우리가 말하는 평균을 닮았다. 우스께 소리로, 동네 마을 버스에 빌게이츠가 타면 그 버스는 평균적으로 억만장자들이 탄 버스가 된다는 말이 있다.
그저 환상뿐인 '일반적인'이라는 이야기.
'에쿠니 가오리'의 '반짝반짝 빛나는'이라는 소설은 '알콜중독 아내', '동성애자 남편'과 그의 애인의 이야기가 나온다. 소재로 보면 자극적인 듯 보이는 것이, '모던 패밀리'를 닮았다. 그러나 과연 그럴까.
어떤 누군가에게는 현재의 나의 삶이 굉장히 특수한 삶일 것이다. 우리는 모두 그런 특수한 삶을 살아가며 그 평균을 내어 '환상'을 만들어낸다. 누군가는 역시 '동성애'를 느끼고, 누군가는 편부모를 가졌으며, 누군가는 이혼이나 사별을 겪고, 누군가는 아이를 잃는다.
최대한 가장 그럴싸한 겉모습만 보여주며 민낯은 이렇듯 혼자만 가지고 있다. 가끔은 그런 생각이 스스로를 위로한다.
'저 사람은 과연 어떤 민낯을 숨기고 살아가고 있을까'
마치 아무리 잘나고 멋진 사람이라도 그런 동정심이 생기면, 질투나 부러움, 미움 등의 감정이 사라진다.
잘났으면 얼마나 잘났나. 나나 너나. 다 거기서 거기다.
그러고 나면 생각한다.
다 고만고만한 인간등리 만드는 세상이다, 연민이 들고나면 누군가를 미워 할 수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