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정도 현실성있게 잔인해야지...'
라고 했다가,
'어? 이게 실화였어?'
라고 했다가,
'뭐? 오히려 수위를 낮춘 거라고?'
했다.
소설은 '기타큐슈 살인 사건'을 배경으로 한다. '기타큐슈 살인 사건'은 사건 자체가 자극적이다. 사건의 배경지식이 전혀 없이 소설을 읽기 시작한 '나'로써는 애당초 설정 자체가 잘못됐다고 생각했다.
'그래, 이렇게 쓰면 당연히 소설은 재미가 있지.'
재밌게 쓰기 위해, 자극적인 소재를 가져왔다고 생각한 터였다. 그것이 실화라는 사실을 알게 되면서 사실상 소설에 더 깊게 몰입했다.
'세뇌살인'은 '짐승의 성'이라는 이름으로 일본에서 출간됐던 소설이다. 잔인하다면 항상 언급되는 소설, '살육에 이르는 병'처럼 아주 잔인하다. 다만 '살육에 이르는 병'과는 결이 다르다.
이 소설은 단순한 '잔인함'을 넘어선다. 잔인하기 위해 잔인한 글이 아니라, 일어날 수 없을 거라고 여겼던 '비현실'을 '납득해 보고자'하는 탐구(?)도 함께 벌어진다.
물론 '이런 당연히 납득할 수 없는 일'이지만 이미 일어난 일이지 않은가. 과연 어떻게 이런 일은 일어날 수 있는가. 그것을 계속 생각해 보게 된다.
소설의 초반에는 일본 소설 특유의 쉽고 직관적인 문체로 독자의 이목을 집중시킨다. '살인'과 '식인'에 관한 이야기가 나오는 '살육에 이르는 병'과 비견된다는 이야기가 무색하다고 여겨진다.
그러다 독자에게 배경과 설정, 흐름에 대한 설득이 어느정도 끝난 이후에는 그 잔혹함이 몰아친다. '피와 살'이 난무하고 흔적과 과정에 대한 묘사가 역겨울 정도다.
이런 소설을 볼 때는 '시간'이 중요하다. 모두가 잠든 시간 조명을 최대한 어둡게 하고, 책을 읽기 전에 '심심함'이라는 감정을 한스푼 넣기 위해 정적인 시간을 5분정도 갖는다. 그리고 책장을 '딱' 넘긴다.
'후딱, 후딱, 후딱' 착장을 넘기며, 한참을 몰입하여 읽고 있는데 뒤에서 소리가 들린다.
'아빠, 무서운 거 봐?'
화들짝 놀라 페이지를 덥었다. 다시 아이를 재우고 몰래 거실로 나와 책장을 폈다. 한참 몰입하고 있는데, 갑자기 다시 소리가 난다.
'아빠, 세뇌가 뭔데?'
'어허! 어서자!'
아이가 도서관에서 '무서운 책'을 빌려 올 때면 '그거 많이 보면 밤에 무서운 꿈꾼다.'라고 일러주는데, 그날은 아이가 아빠에게 한 소리를 했다.
'아빠, 무서운거 보면 밤에 무서운 꿈꾼다!'
'그래 그래'
하고 다시 침실에 누워 자는 척하다가 다시 읽는다.
몰입감이 얼마나 강한지, 거실에서 책을 읽다가 '택배발송'으로 갑자기 켜지는 '인터폰 화면'에 깜짝 놀란다.
'스포'가 될까봐 말하지 못했던 대략의 이야기를 설명하자면 이렇다.
사건 가해자는 단순한 살인자가 아니다. 피해자 또한 단순한 피해자가 아니다. 소설의 핵심은 인간이 어떻게 서서히 세뇌되고 비인간적이게 되는가이다.
사체를 훼손하는 과정이 지나치게 사실적으로 묘사되어 있다. 어떻게 사람을 고문하고 과정에서 생긴 대소변을 먹이고 혹은 사체를 처리하는지, 간혹 뉴스에서 보게 되는 알고 싶지 않은 어떤 것들도 떠오르게 한다.
가해자는 피해자들의 정신을 점차 장악하고 조종한다. 피해자는 자신의 가족을 피해자로 만드는 가해자가 되고, 가족은 서로가 서로를 죽인다. 심리적 지배를 통해 '살인'까지, 심지어 부모, 부부까지 죽일 수 있도록 하는 그 비인간적인 사건이 실제 사건이라는 것을 보며 '살인'이란 과연 '행위'로만 이루어 질 수 있는가, 생각해 보게 된다.
꽤 많은 유명인들 또한 다양한 '댓글'에 고통을 받다가 생을 달리한다. 그런 의미에서 누군가의 '마음'을 지배하고자 하는 일은 '살인'과 어떻게 다른가를 생각해 보게 한다.
중요한 것은 우리 '현실'은 간혹 '지나치게 비현실적인 현실'이 있다는 것이다.
참 재밌네, 하고 보면 실화인 경우가 참 많은데... 이 경우에는 참 씁쓸하고 안타까운 케이스라고 보여진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