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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집] 시간을 치사량만큼 투여받으며..._자발적 시한

by 오인환

추운 겨울이 돼야 따뜻함을 느낄 수 있고 더운 여름이 돼야 시원함을 느낄 수 있단다. 어디에 보느냐에 따라, 겨울은 따뜻하거나 추워지고, 여름은 시원하거나 더워진단다.

어디서 보건데, 겨울은 '겨우' 살아서 겨울이고 여름은 '열'이 많아져서 여름이란다. Wind가 많아 Winter가 되고, Sun이 가까워 Summer가 되듯, 조금더 '감정'을 빼고 직관적으로 이름을 지었다면 더 좋지 않았을까 싶다.

'어떤 것'에 이름을 붙이고 나면 '어떤 것'은 '이름'이라는 그릇에 담겨지게 된다. 그런 의미에서 '무언가'를 명명한다는 것을 꽤 중요한 일인 것 같다. 대체로 '삶을 살아간다'라고 보면 우리의 삶은 '영속적인 오늘'을 부여 받는 착각을 받게 된다. 다만 너무나 많은 우리가 '영속적인 오늘'을 소모하며 결국 '한시적인 오늘'을 살아간다.

같은 강물에 두번 발을 담글 수 없다고 하던가. 과연 우리는 흘러가 버리는 강물에 발을 담그고, 다시 그 자리에 발을 담그며 같은 강물에 몇번의 발을 적시고 있다고 착각한다.

'서달' 시인의 '자발적 시한부의 찬란한 인생 계절'에는 '우리는 무엇을 향해 가는 걸까요'라는 시가 있다.

*

우리는 무얼 향해 가는 걸까요

우리는 살아가는걸까요,

죽어가는 걸가요.

자발적 시한부의 삶은

죽어가는 것에 더 알맞을까요.

하도 닳고 닳아서

이제는 무뎌짐을 넘어서

이제는 초원해지네요.

질문에

자신 있게 살아가는 것이라고

대답하는 날이 오기를 기다립니다.

*

시를 보건데, 나의 삶은 확실히 소모적이고 죽어간다. 나는 어제에 비해 하루만큼 더 죽어가고 있으며 하늘이 정해준 '생'의 일부를 매순간 갉아 먹어간다.

모든 사람은 '시간'을 '치사량'만큼 투여 받고 죽음으로 나아간다. 그 '약'이 때로는 고통을 잊게하고 때로는 고통스럽게 하지만 부여된 투여량을 다 맞고 나면 모두가 사라지고 만다.

약효는 피부를 늘어지게 하고 망각을 자유롭게 하며, 내장지방을 쌓고 자산을 늘린다. 사랑하던 사람을 떠나보내고, 관절을 갉아 먹으며, 조금은 지혜롭게 하고 조금은 나약하게 만든다.

그 투약의 과정을 마흔 정도 받다보니, 약효가 꽤 적절하다. 가끔 나는 스스로 닳아가고 있는지, 무뎌짐을 느낀다.

20대에는 머리 손질 없이 외출을 하지 않던 것이, 지금은 늘어진 트레이닝복과 목늘어나고 구멍난 티셔츠를 입고 아이 학교길을 마중한다. 씻지 않은 얼굴에 새집을 지은 머리는 더이상 부끄러움이 없다.

투여된 시간이 얼굴을 두껍게 하여 스스로를 둔감하게 만들었으나, 가끔은 그런 스스로를 보고 거울 앞에서 세월의 무상함도 느낀다.

'자발적 시한부'라는 말은 '시인'이 직접 만들어 사용한 명사다. '스스로 삶'에 끝을 정하고 삶을 살아간단다. 모두가 망각했을 뿐 누가 그렇지 않겠는가.

한번은 취미 생활을 위해 '자전거'를 알아보다가, 누군가의 후기 영상을 보았다. 그는 실제로 시한부 선고를 받은 암환자 였는데, 그 시간이라는 것이 기껏해봐야 한달이라고 했다.

그의 채널을 보건데, 꽤 많은 영상이 찍혀 있었다. 자신이 좋아하는 취미 생활을 하고, 소중한 사람들과 이야기도 나누었다. 그의 얼굴과 목소리에는 공포나 아쉬움은 없었다.

한달도 채 살지 못할 그는 새로운 취미가 생겼다고 기뻐했고, 그러게 자전거를 구매했다. 영상이 촬영된 날짜를 봤더니 이미 2년이나 지나있다.

채널은 2년 전 언제부터 올라오지 않았다. 꽤 건강한 남성의 안부가 궁금해졌다. 그는 한달이라는 시한부를 선고 받았으나, 스스로의 취미를 위해 새자전거를 구매했다. 다른 사람들을 위해 리뷰를 남기고 남은 삶을 즐기기 위해 여러가지 도전을 했다.

한달 간 그는 어떤 즐거운 삶을 살았을까. 그는 방학을 마치는 아이처럼 덤덤했다. 치료를 통해 삶을 연장시킬지, 그렇지 않을지를 결정하는 일은 그냥저냥 여행하는 나라에서 비자 연장하는 모습처럼 보였다.

그러다 생각이 깊어졌다. 어떤 사람들은 자신의 삶에 준비도 없이 삶을 마감하곤 하는데, 짧은 시간이지만 자신의 삶의 마감일을 알고 있다는 것은 그나마의 즐거움을 가지고 가는 일일지도 모른다.

'시한부의 인생'을 산다는 것은 어찌보면 꼭 나쁜 것처럼 보이지만, 그렇지도 않은 듯하다. 죽음을 부러워하는 것은 아니지만 삶을 대하는 태도가 '죽음'을 떼어 놓고는 결고 현명해 질 수 없음을 다시 한번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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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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