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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아] 왜 책인가_매주 수요일 아이와 함께하는 독서데

by 오인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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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옛날 거리에 단위가 통일이 되지 않았을 때, 사람들은 '얼마나 가야 하나요?'에 대한 대답을 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그때나 지금이나 꽤 직관적으로 상대에게 추상적인 개념을 설명하는 방식이 있는데, 그게 아이에게도 적용된다.




'아빠, 몇 밤자야 생일이 돼?'


'아빠, 이거는 얼마나 비싼거야?'


'아빠, 이거는 맛있어?'


'아빠, 얼마나 오래걸려?'




아이를 키우니, 시간을 모르는 아이에게 '한시간 정도 걸린다'라는 표현을 하기 꽤 어렵다. 그렇게 설명한 것이 '겨울왕국 하나 정도' 혹은 '열밤 정도?' 아니면 '누텔라만큼?'이라는 단위를 설정하게 된다.




로마 군인은 천걸음을 걸을 때마다 막대기 하나씩을 꽂으며 총 몇개의 막대기가 꽂혀 있는지를 기준으로 거리를 나타냈다.




숫자를 세는 단위에 쉼표가 1,000에 찍혀 있는 것은 로마군인이 1,000걸음을 걸었을 때마다 막대기를 표시했기 때문이다. 1,000이 1,000개 있어야 한다는 백만에는 1,000,000와 같이 쉼표가 두 개 찍힌다.




어린시절 나는 10만과 100만처럼 '만' 단위에 쉼표를 찍으면 더 쉽게 셀 수 있을 것 같은데, 이도저도 아닌 '천'단위에 쉼표를 찍는 것이 아이러니했다.




그때 어머니께 물었더니, 어머니가 말씀하시길, '그냥 그렇다' 하셨다.




세상에 '그냥 그렇다'는 꽤 납득하기 어렵다.




'용기 있는 자만이 미인을 얻을 수 있다.'


이 말을 '여성'이 사용하는 걸 본적 있다. 이때도 비슷한 생각을 했다. 문장 주체가 아예 '남성'으로 규정되어 있는데, 그냥 그런 것이기 때문에 그렇다는 것이 납득이 쉽지 않았다.




TV에서 연예인들이 당연하듯, '서울의 지리'를 말할 때도 거기에 살지 않으면서 당연하게 생각하는 것에 의구심이 있었다.




그것을 조금 극단적으로 표현해보자면 '세뇌'로 표현할 수 있는데, '세뇌'는 이마에 새겨지는 도장의 '인'처럼 살속 깊이 새겨져 버린다. 한번 그게 새겨지고 나면 웬만해서는 그것이 이상하게 보여지지 않는다.




그러한 것이 '탁!'하고 깨어지는 순간이 있는데,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나의 경우에는 '책'과 함께 할 때가 많았다.


'나'라고 하는 '인격체'가 단순히 '유전자'의 운반체라는 리처드 도킨스의 시선이라던지, 빚, 국가, 사회, 자산 따위가 모두 '상상의 매개물'이라는 '유발하라리'의 '사피엔스'라던지, 기존의 인식이 '탁!'하고 트어지면 다음 세상으로 문이 열리는데, 그때 느끼는 희열과 그 다음에 보게되는 세상과 이전 세상과의 차이는 놀라울만큼 다르다.




누군가는 '흥부와 놀부'를 모르고 살고, 누군가는 '성경'을 모르고 살고, 누군가는 '도교'를 모르고 살고, 누군가는 그냥 정형화 된 세상을 제외하고는 아무것도 모르고 산다. 그것도 마찬가지로 삶이겠지만 가만 생각해보면 때로는 세상의 문을 하나씩 열때마다 당연한 것은 없다는 깊은 깨달음이 가장 큰 깨달음인 것 같다.




당연한 것이 없다는 것은 꽤 감사함과 연결되어 있고 꽤 유동적인 사고 방식을 만드는데, 그것이 살아가는 지혜와 연결된다. 지식말고..




매주 수요일마다 아이와 '도서관'을 가는데 수요일은 '두배데이'라고 해서 대여 할 수 있는 도서가 2배씩 늘어난다. 그렇게 나와 아이는 커다란 캐리어를 끌고 들어가서 도서 30권을 빌리고 돌아온다.




이 양식은 아이에게 흡수되어 어떤 화학작용으로 아이를 만들어낼지, 두근두근 기대하는 마음으로 꽤 당연한 것이 없다는 사실을 나이 들고 깨달으면서, 아이에게도 '학력'이나 '돈'말고 그런 깨달음을 알 수 있는 행복을 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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