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오인환 Dec 18. 2024

[인문] 예의를 말하면 '꼰대'라는 얘기를 듣는 사회_

 언제부턴가 '예의'를 말하면 '꼰대'라는 말을 듣는다.

 연세대학교 사학과 교수로 재직 중인 저자 '설혜심' 교수는 책 들어가는 서두에 '매너'에 대한 주제로 책을 쓰는 행위가 '꼰대'임을 천명하는 일처럼 느껴진다고 했다.

 실제 사회 분위기가 그렇다. 스스로 '젊은 사람'들과 소통이 자유로운 '열린사람'이라는 인식을 갖고자 하는 '어른'들이 늘면서, 혹은 스스로 '젊은 마인드'를 갖고자 하는 '어른'들이 늘어나면서 '꼰대'는 젊은 층끼리 '어른'을 비하할 때 쓰는 은어에서 지금은 어른들 조차 그 언어에 갇히게 되는 듯하다.

 책은 동양에서 말하는 '예의'가 아니라 서양사를 기준으로 '매너'와 '에티켓'를 서술한다. 아리스토텔레스부터 지금까지 품격있는 인간이 갖춰야 할 다양한 지침들을 소개한다.

 이 소개들을 읽다보면 아무리 '고대'나 '중세'라고 해도 지금의 예의와 크게 다르지 않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어떤 지침의 경우에는 '저런 걸 굳이 적어서 교육해야 하나' 싶은 것들도 있다. 그만큼 당연한 매너와 예의들이 과거부터 조금씩 쌓아 올려져 지금이 됐음을 알 수 있다.

 '매너'와 '에티켓'에 대해 깊은 생각을 해 본 적은 없지만 이제와서 생각해보니 꽤 중요하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이 에티켓과 매너라는 것은 모를 때는 모를 수 있지만, 한 번 알고 나면 계속해서 신경쓰게 된다. 고로 기본적인 생활 태도를 통해 상대의 삶과 사고방식을 알 수 있는 꽤 유용한 비언어적 수단이다.

 대한민국 남자들은 본인이 의식하던, 의식하지 않던 오른쪽으로 걷는 경향이 있다. 가령 둘이 걸어가게 되면 항상 오른편에 서는 경향이 있는데 이는 '군대'에서 배워진 습관이다. 군대에서는 언제나 '상급자'가 오른편에 선다. 이는 통솔의 개념과 닿는다. 군대에서는 2인 이상이 함께 걸어 갈 때, 가장 상급자 혼자 거수경례를 한다. 오른손을 올리는 과정에서 오른쪽 손이 자유로워야 하기 때문이다. 이 습관은 군전역 이후에도 계속 이어지는데 '상급자' 개념이 아니라 '보호자' 개념으로 바뀐다. 가만히 걸어가다보면 대체로 아이는 차도에서 멀도록 손을 잡아주고 여성과 걸어갈 때도 밖으로 서서 걸어가는 경향이 많다.

 꽤 적잖은 예의는 사실 '군'에서 배운다. 가령 압존법도 그렇다.

 '할아버지! 아빠께서 밥 먹으라고 하셨어요.'

 이 말의 큰 오류는 할아버지와 아빠의 관계설정이 잘못됐기 때문이다. 할아버지가 아빠보다 더 높기 때문에 할아버지 앞에서 아빠를 낮춰야 한다. 이런 '꼰대스러움'은 20대 초반 군입대한 남성들 사이에서 꽤 유의미하다. 거의 대부분의 군대에서 벌어지는 '갈굼(?)'은 이처럼 예의에 관한 부분이 많다. 군선임이 식사를 하기 전에 숟가락을 들지 않는다거나 선임이 무거운 짐을 들고 있을 때, 재빨리 그것을 건내 받는 것, 전화를 받을 때, '여보세요?'하고 받지 않는 것도 마찬가지다. 참고로 '사회생활'을 할 때, '여보세요'하고 전화를 받는 것은 옳지 못하다.

 '네, ㅇㅇㅇ 입니다'하고 신원을 바로 밝히는 것이 원활한 소통을 위해 필요하다. 이는 사업이나 직장생활에서도 중요한 일이다.

 군대가 아니라 '가정'에서도 이런 '매너', '에티켓'에 관한 기억이 있다. 어머니는 설거지를 하실 때, 항상 나를 옆에 세워 두셨다.

 '엄마가 설거지할 때는 항상 옆에서서 말동무를 해주는 거야'

그때 말씀하셨던 기억은 30년 가까이 됐지만 지금도 누군가 설거지를 하면 슬그머니 나와서 옆에 서게 된다.

 그 밖에 누군가가 짐을 들고 있을 때, 후딱 손을 비워 준다거나 자동차를 탈 때, 뒷좌석에 앉지 않는 예의도 있다. 약속시간에 항상 10분 일찍 도착해야 한다거나, 먼저 인사를 건내야하는 간단한 예의도 있다. 전화를 끊을 때 항상 상대가 끊을 때까지 기다린다던지, 헤어질 때는 상대가 시야에서 사라질 때까지 지켜보는 것도 그렇다.

 이런 예의는 사실, '학교'에서 배우는 바가 없다. 책을 따로 사서 보는 일도 없다. 그저 말과 말로 전달될 뿐이다. 설혜심 작가의 '매너의 역사'는 앞서 말한 바와 같이 유럽 중심의 '매너'를 말한다. 당연히 현대 대한민국의 '매너'와 차이가 있을 것 같지만, 유교적 예의라는 기본틀을 가진 우리에게도 꽤 익숙한 매너들이 많다.

 아마 'MANNER'라는 말자체가 '방법'이라는 의미를 공유하고 있는 것과 같이 사람과 사람 사이에 서로를 대하는 기본적 방법이기 때문인듯 하다. 동양과 서양할 것없이 공통적인 무언가를 공유한다는 점에서 '매너'는 '지켜도 그만, 안지켜도 그만'인 무언가가 아니다.

 

 이러한 자연발생적 문화는 분명 그만한 이유가 있다. 인류가 왜 매너를 발명해 냈고 그것을 유지해내고 있다는 점을 볼 때, 매너를 배우고 가르치는 것은 '꼰대'라고 폄하하고 폄하 받을 일이 아니라 사회생활의 기본 교양이다. 학교에서는 지식을 쌓고 가정에서는 교양을 쌓아야 한다. 이처럼 지식교양은 개인의 성장과 사회의 조화에 필수적이다. 한쪽만 지나치게 강조하거나 소흘히 할 수 없다. 교양을 '꼰대스러움'으로 치부하는 오늘의 풍조에서, '매너와 교양'의 가치를 재조명하고 이를 실천하려는 노력이 개인과 가정, 사회 모두에게 중요한 듯 하다.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