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르만 헤세'는 '헤르만 헤세의 책이라는 세계'에서 '뚜렷한 자기만의 생각 없이 많이 읽기만 하는 것은 환자가 약국을 다 뒤져서 온갖 약을 다 먹어보는 것만큼 어리석은 일'이라고 말한다.
단순히 양을 늘리는 '독서'가 무의미 하다는 것을 말한다. 몇권의 책을 읽었는지 산술적인 만족을 위해 '활자'를 '음성신호'로 바꿔내는 작업은 독서의 본질이 아니다. 독서의 본질은 '호기심'을 탐독하는 일이다.
과거 영화평론가 '이동진'은 '책을 고르는 일'부터가 '독서'라고 정의했다. '독서'는 사전적 의미로 '책을 읽는 행위'임에 틀림 없으나 실제로 그 활동의 영역을 정의하자면 '호기심'에서 출발할 것이다.
독서는 단순히 문자를 읽는 행위가 아니다. 독서는 '정보를 탐닉'하는 행위다. 즉 불러 일어난 호기심을 알아차리고 그 호기심을 충족할만한 정보를 찾는 것, 그리고 그 정보를 저자의 논리 구조에 맞에 이해해 나가는 것이다.
독서가 삶에서 무의미하다는 것은 '다른 어떤 행위'와 크게 다르지 않다. 삶이 다하는 날, '저 사람은 몇권의 책을 읽었는가'는 '몇 시간' TV 앞에 앉아 있었느냐 만큼 무의미하다. 독서는 결과가 아니라 과정을 즐기는 행위이며 그 과정 자체가 굉장히 '능동성을 요구' 한다.
실제로 책을 읽다보면 도입부를 펼칠 때와 마지막 커버를 덮는 순간의 짧아짐을 느낀다. 즉 어떤 누구에게는 '책 한권'이 꽤 먼 여행을 떠나는 것처럼 보인다고 하더라도 다독하다 보면 책의 마지막 장을 덮는 건 예삿일이 아니다.
책을 많이 읽는다는 것이 단순히 '책'에 대한 두려움을 없애준다는 것만으로도 아주 큰 소득이다.
새학기에 '교과서'를 새롭게 받은 학생 중 상당수는 '교과서 수준의 글밥'을 완독한 경험이 극히 적다. 이런 환경에서 학생들이 마주쳐야 하는 교육상황은 '국어, 수학, 영어' 등 꽤 많은 과목의 교과서를 1년 간 학습해야 한다.
쉽게 말하면 이렇다. 1년에 10권의 책을 읽었던 아이에게 10과목의 교과서를 1회독 하는 것은 적절한 수준이다. 다만 1년에 한 권의 책도 읽지 않은 이들이 겨우 교과서 정도를 읽는다는 것은 아주 어려운 일이다.
주말이나 평일 주말에 가만히 앉아서 교과서 이상의 글밥을 꾸준하게 읽은 아이에게 '교과서'는 다른 책들과 마찬가지로 여러 책 중 한 권일 뿐이다.
한달에 10권의 책을 읽은 아이에게는 책의 첫장에서 마지막장까지의 기억이 큰 거부감없이 일어날 수 있는 일이다. 어떤 경우에는 책을 받아온 첫날 교과서의 1페이지에서 마지막 페이지까지 완독해낼지 모른다.
이런 기억은 비단 '학생'에게만 적용되는 것은 아니다. 대부분의 전공 서적도 사실 정독으로 읽었을 때, 숫자적으로는 오래 걸리지 않는다. 덤벼보기도 전에 책이 주는 묵직함과 두려움. 그것을 없애는 일이 가장 중요한 일이다.
도서의 종류나 그날 컨디션에 따라 다르겠지만 일반적으로 300페이지의 책을 읽을 때, 8시간 정도 걸린다고 해보자. 산술적으로 계산한다면 1000페이지를 읽는데 24시간 밖에 걸리지 않는다.
개인적으로 출판사로부터 '도서협찬'을 받다보면 흔히 말하는 벽돌책을 받을 때가 종종있다. 누군가는 펴보기도 전에 기겁할만한 분량이지만 나의 경우네는 아침에 눈뜨고 딱 100페이지씩만 읽는다. 그렇게 열흘을 읽으면 웬만한 벽돌책도 부담없이 2주내로 끝이 난다.
어떤 책은 생각보다 안넘어가는 책이 있는데, 대표적으로 '전문적인 지식'을 담고 있는 책이다. 일반인을 대상으로 한 과학책의 경우에는 표면적으로 담고 있는 내용이 비슷하여 빠르게 읽히지만 전공자를 위한 책의 경우에는 사용하는 명사 자체가 너무 여럽고 관념도 복잡하다. '노자'나 '칸트'의 철학에 대해 분석한 책을 읽을 때는 도대체가 사용하는 말을 이해할 수 없어 사전을 찾으며 읽고 한다.
이런 경우 내가 가장 많이 사용하는 방법은 '그냥 읽는다.'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핵심 명사 정도는 사전으로 급하게 찾아보지만 문맥상 이해할 수 있는 부분은 그냥 넘어간다. 꾸역구역 넘어가다보면 책의 중반부를 읽을 때는 '대략의 요' 정도가 파악이 가능하다. 이후 더 정확한 이해를 원하면 '재독'하면 그 속도나 흥미가 훨씬 빨라진다.
아마 이는 '학습'에서도 중요한 포인트일 것이다. 어떤 일이든, '할만하다'하고 접근하는 것과 '언제 다하지'하고 접근하는 일은 천차만별이다. 또한 대부분의 학습은 평가를 위해 '범위'를 쪼갠다. 다만 이렇게 쪼개진 범위에서 주어진 '명사'만 암기하는 것은 전체 맥락을 파악하기 힘들게 만들고 '무엇을 공부하고 있는지'를 잃게 만든다. 이는 '본질'을 잃는 것이다. 본질을 잃어버린 학습은 '호기심'을 줄게 만든다.
'수헬리베 붕탄질산플네나마'
무엇을 하고 있는지 모르고 앞글자만 따서 외우는 행위는 실제로 원소주기율 표에서 1주기와 2주기 원소의 배열 순서를 나타내고 이는 '양성자의 수'에 따라 원소가 정렬됐다는 것을 말한다. 다시 말해서 이 순서가 뒤로 갈수록 원자의 질량도 대체로 증가한다.
즉 다시말해서 '수헬리베..'라고 정보를 암기하는 것보다 중요한 것은 그 앞에서 설명한 '미시 세계의 대략적인 구조', 이후 미시세계가 만들어지는 원리를 모두 파악할 때, 더 쉽게 암기 가능하고 이해할 수 있다. 즉 독서는 단순히 '문해력'을 높이기 위해서가 아니라 전체를 조망하게 하고 심리적 두려움을 없앤다는 점에서도 아주 커다란 역할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