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같은 시대에 '종이 사전'이라니...'
지인이 말했다.
요즘 같은 디지털 시대에 아이에게 종이책을 사줬다는 것은 조금 고루한 일일지 모른다. 주변에서는 모두 스마트폰이나 태블릿을 공부에 활용하는데 왜 국이 종이책을 고집하냐고 묻는다. 다만 이렇게 대답할 수 있다.
'디지털이 모든 것을 해결해 주는 시대라서, 되려 종이책이 소중하다.'
디지털 도구는 빠르고 효율적이다. 한 번의 검색이면 원하는 정보를 즉각 얻을 수 있다. 다만 그 즉각성이 문제다. 너무 쉽게 얻은 정보는 쉽게 사라진다. 깊이 있는 사고나 기억으로 남지 않는다.
한발 한발 디디며 걸었던 산책길의 풍경은 오랫동안 기억을 하면서 스치고 지나갔던 비행기 아래 풍경은 잘 기억에 나지 않는 바와 같다. 기차나 자동차를 타면 지나온 길에 대한 기억이 생각만큼 빨리 떠오르지 않을 때가 있다. 되려 천천히 걷는 편이 더 많은 기억을 불러 일으킨다. 종이책은 아이가 직접 손으로 넘기고 눈으로 따라가며 시간을 들여 탐구한다. 이것은 '공간'을 충분히 익히는 일이다.
오스트랄로피테쿠스는 기원전 400만년 전 처음 출현했다. 이후 호모 사피엔스가 등장하고 40만년 동안이나 인간은 '구시대'를 살았다. 즉 떠돌아다니며 동물을 사냥하고 열매를 따먹는 생활을 했다. 이후 기원전 1만 년전에 겨우 정착을 했고, 문명을 이룬 건 고작해봐야 4000년 전이다. 산업화는 400년 전.
고로 우리 인간의 생물학적 진화는 아직도 '구석기' 시대에 머물고 있다. 인간은 '공간'을 기억하도록 진화해왔다.
줄로 된 책은 좌에서 우로 흘러간다. 즉 X축과 Y축이 있으며 좌측페이지와 우측 페이지로 나눠져 있고 두께라는 Y축이 한 번 더 들어간다. 다시말해서 우리가 사는 3차원보다 차원이 하나 더 높은 셈이다.
실제로 독서를 하다보면 책의 3분의 1지점, 왼쪽 페이지 중간 줄, 오른편에 어떤 정보가 있었다. 라는 장면이 떠오른다. 분명 디지털은 이런 효과는 없다.
종이를 넘기며 스치는 다른 글자와 정보의 조합은 아이의 사고력을 넓히고 공부를 넘어선 학습의 즐거움을 준다.
영어 사전도 마찬가지다. 영어나 국어나 모두 그 정렬 방법이 정해져 있다. ABCD나 ㄱㄴㄷㄹ 순서로 정렬된 사전을 찾다보면 철자도 힉히게 된다. 단순히 한번 클릭으로 필요한 정보만 찾는 것과 큰 차이가 있다.
사전은 그렇다면 왜 필요한가.
지금, 초등학교 1학년을 마무리 할 즈음.
사전을 접할 적기다. 뭐든지 적기라는 것이 있다. 인지 수준은 어휘 수준과 함께 발전한다. 다시말해서 어린이 시기에 '영어 동화책' 흥미로울 수 있지만, 성인이 되고 난 뒤에는 '인지 수준'이 높아진 까닭에 적은 어휘를 사용한 컨텐츠는 지루하게 느껴진다.
초등시기는 그래서 중요하다. 어휘력이 늘어나는 시기에 맞춰 인지능력이 늘어나기 때문이다. 이때 마중물 역할이 충분하다면 아이는 스트레스 없이 호기심을 해소하는 방항으로 어휘력과 관심사가 늘어난다.
아이들은 낮은 사고력 덕분에 같은 어휘를 반복하더라도 지루함을 느끼지 않는다. 아이들 동화를 보다보면 같은 말을 반복하는데 이는 아이가 문장 구조를 익히는데 도움을 준다. 단순 매칭을 반복하는 일은 성인이 될수록 어렵고 지루하게 느껴진다. 초등학교 고학년만 되더라도 아이들은 사고력과 인지능력이 높아져서 단순한 내용에는 흥미를 잃고 기초를 배우는 과정을 부담으로 여긴다. 고로 한자와 국어, 영어의 기초는 초등 저학년에 익혀야 하고 초기에 이런 시작은 이후 즐겁고 자연스러운 언어와 사고력 향상을 만들어주는 역할을 한다.
서점에 있는 사전을 꼼꼼하게 살폈다. 보기 편한지, 설명은 어떤지, 찾기 편한지, 그렇게 아주 오랫동안 고심하고 세권을 골랐는데 우연찮게 모두 동아 연세 사전이다. 초등 사전을 샀지만 아마 중고등을 넘어서까지 써도 충분할 것으로 보인다. 초반에는 아이와 함께 사전을 찾으며 이용방법을 알려줘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