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 용암은 빨간색이야?"
딸이 물었다.
"아니, 검은색이야."
답했다.
아무리 환하게 타고 있어도 불꽃의 내부는 검은색이다. 겉은 찬란하게 타오르고 있지만 속은 가장 어둡다. 주변을 밝히고 있지만 중심은 까맣다. 불꽃의 내부로 들어가면 어둠이 자리 잡는다.
불꽃 내부는 산소가 부족하기 때문에 완전 연소가 이루어지지 않는다. 연소가 활발하지 않으면 빛은 방출하지 못한다. 고로 환한 불의 내부가 가장 어두운 법이다. 불의 내부에는 탄소 입자 같은 미세 물질이 있을 수 있다. 이는 빛을 흡수하거나 산란시킨다. 고로 특별히 더 어두워진다.
아이가 '지구과학 백과사전'을 보다 물었다. 산 밑에 용암이 고여 있는 그림이다.
"아빠, 용암은 빨간색이야?"
딸이 물었다.
아니,라고 답했다.
용암은 땅 위에서는 붉은 열기를 내뿜지만 땅소겡 갇혀 있을 때는 빛을 잃고 검은 덩어리로 남아 있다.
지구과학에서 표시되는 지구의 내부에 '외핵'과 '내핵'도 그렇다. 내핵은 '철'과 '니켈'로 이루어진 고체다. 온도는 5000도에서 6000도에 달한다. 얼핏 붉은 빛을 뿜어 낼 것만 같다. 그러나 내핵은 빛을 방출하지 않는다. 내핵은 높은 압력의 열에너지를 갖고 있는 고체 상태일 뿐이며 검거나 어두운 상태로 추정된다. 외핵도 다르지 않다. 외핵도 내핵과 마찬가지로 검거나 어둡다.
우리가 그것을 밝다고 여기는 이유는 우리 눈에 보인 순간부터 붉게 빛나기 때문이다.
보이는 것에 집중하면 우리는 표면의 찰나 밖에 알지 못한다. 본질은 더 깊숙하게 있으며 더 오랫동안 지속해왔던 무언가다.
기상청 예보를 보면 굉장히 재미있는 걸 볼 수 있다. '태풍'의 모양이다. 일기예보에서 제공하는 '태풍'은 시간이 지나면서 점차 커진다. 점점 커지는 태풍은 꼬깔 모양으로 그 세력을 확장해 가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그렇지 않다. 기상은 특히나 '확률'과 관련있다. 태풍의 경로는 시간이 지나면서 예측할 수 있는 '확률'이 점차 떨어진다. 고로 태풍은 조금더 서쪽에 있거나 동쪽에 있을 수 있다. 북쪽이나 남쪽에 있을 수도 있다. 이처럼 태풍이 예상 경로에 대한 '예측 오차범위'를 점차 확대하면 태풍이 시간이 지나면서 꼬깔모양으로 커지는 것처럼 보인다.
다시말해서 단순히 눈으로 얻게 된 정보가 세상 모든 것이라 믿는 것은 큰 위험이다. 앞서 '태풍'의 예시를 들었을 때, 어쩌면 다수는 '태풍의 눈'을 말할 것이라 예상했을 수도 있다. 그러다 '태풍 경로'에 대한 이야기를 보고 조금 당황 했을지 모른다. 일부러 경로를 앞에 배치한 이유 또한 '아는 것'에 대한 함정을 설명하고 싶어서다. 그럼 태풍의 눈이 가장 고요하다는 두 번째 설명도 굳이 할 필요가 없을 듯 하다.
이런 자연 현상들은 중요한 통찰을 던진다. 종종 우리는 겉으로 보이는 모습에 집착한다. 호수 위에 떠 있는 백조가 얼마나 우아한지, 그 물밑에서 허둥대는 발모양에는 관심이 없다. 화려한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배우나 가수의 무대 뒤가 얼마나 치열한지에 대해서는 전혀 생각해 보지 않기도 한다.
불꽃처럼 뜨겁게, 용암처럼 강렬하게, 태풍처럼 강력하게 살아야 한다고 느낀다면 그 내부가 얼마나 어둡고 정적이고 고요한지 알아야 한다. 용암은 붉은색인 세월보다 검은색인 세월이 훨씬더 길다. 무엇이 본질인가.
밖으로 빛을 내고 싶다면 '빛'에 집중할 것이 아니라, 본질에 집중해야 한다.
흔히 '명상'의 '명'을 '밝을 명'으로 알고 있는 경우가 종종 있다. 그러나 '명상'의 명은 어두울 명을 사용한다. 둘다 '음'은 같으나 '훈'은 다르다. 완전히 반대다. 즉 어떤 현상과 본질은 같은 소리를 내지만 다른 의미를 가진다.
끊임없이 움직이고 성과를 내야 하는 현대 사회에서 진정한 자기계발은 아이러니하게 같은 자리에서 같은 행동을 반복하는데서 온다. 빛은 스스로 내는 것이 아니라 외부의 산소와 만났을 때만 발생한다. 고로 빛이 난다는 것은 '자신의 능력'이 아니라 '주변이 주는 환경과 조건'의 문제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말은 '진인사대천명'이다. 어머니께서 선물로 주신 글씨이기도 했다.
'사람은 해야 할 일을 다하고 나서, 하늘의 명을 기다린다.'
'하는 일'과 '되는 일'은 완전히 다른 영역이다.
열심히 한다고 반드시 1등을 하는 것은 아니다. 부지런한다고 해서 반드시 부자가 되는 것도 아니다. 착한 일을 한다고 해서 반드시 복을 받는 것도 아니다. 단지 그렇게 될 확률이 높아질 뿐이다.
인간은 결과에 약간의 확률을 미칠 수는 있지만 확정적 결론을 내릴 수 없다. 우리 인간이 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그저 '원인'과 '행동'일 뿐이다. 고로 우리는 '원인과 행동'에 최선을 다하고 '결과'는 하늘에 맡기는 수 밖에 없다.
이렇게 말하면 참 염세적이고 수동적이라고 말할 수도 있겠으나 삶이나 성공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는 '노력'이 아니라 '운'이다.
그러나 이렇게 말할 수 있다. 결국 그것이 나에게 스치지 않을 수는 있어도 그저 할 뿐이다. 우리는 '신의 영역'에 개입할 수 없다. 인간은 인간의 영역에 최선을 다할 뿐이다. 그저 매순간 할 몫을 꾸준하게 하고 있으면 언젠가 불꽃이 '산소'를 만나듯 환경과 기회를 만나 빛을 바라게 될 것이다.
그러나 그 기회가 오지 않아도 어쩔 수 없다. 우리는 세상에 그 무엇도 맡겨 놓은 바가 없다. 주지 않았으니 받지 않아도 좋다. 다만 만약 받게 된다면 그 받은 부분에 대해서는 무한한 감사함을 느껴야 할 것이다.
아이가 크리스마스의 깨진 장식품을 사진 찍는 걸 보며 사실 어떤 경우든 목적을 달리하면 모든 것은 작품이 된다는 것을 배운다. 기회란 오면 잡아야 하고, 오지 않으면 그또한 기회로 여겨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