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성계와 그의 둘째 부인인 강비가 만나는 로맨스가 있다. 어린 시절 어딘가에서 들어봤던 내용이다. 우물가를 갔던 이성계가 물을 찾으니, 어린 처자가 물 한 사발을 떠다 주면서 나뭇잎을 띄우고 '체할 수 있으니 '후~후~' 불어 드세요.'라고 말 한 부분까지가 이 책이 '로맨스' 책이라고 생각한다.
결과적으로 이 책은 '로맨스'와는 상관없다. '조선 왕실'에서 왕과 그들의 여자들에 대한 '역사서'이다. 애초에 제목에 낚이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여의치 않는다. 제목에 낚였지만, 결과적으로 재밌게 봤다. 읽는 내내, 대한민국에서 방영하는 거의 모든 사극 드라마와 영화에 푹 빠져 있는 느낌이 들 정도이다.
내용은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태정태세문단세~' 방향으로 진행된다. 각 임금을 소제목으로 두고, 그와 관련된 연애사 혹은 여자 문제에 대해 집중적으로 기술한다. 왕들의 연애사는 그저, 사랑 이야기로 끝나지 않는다. 거기에는 권력과 정치의 이야기가 함께 섞여 있다. 우리가 주변에서 쉽게 볼 수 있는 평범한 '사랑'이 어쩌면 그렇게 쉽지 많은 않다는 감정이 올라온다. 나의 아이들과 와이프, 부모님의 소중함을 다시 깨우친다.
읽어 내려가면 참 오묘한 감정이 든다. 어린아이 시선에서 장수를 더듭하면, 그 어린아이는 성인이 되고, 아버지가 된다. 그리고 그 아버지는 할아버지가 되고, 독자의 시선은 어느덧, 그 아들과 손자로 자연스럽게 넘어간다. 독자가 이입하던 주인공은 '상황'이 변하면서, 사랑의 제3의 인물이 된다. 어린아이가 다시 성인이 되고 아이를 낳고, 그 아이가 다시 성인이 되고 아이를 낳는다. 다시 우리의 시선은 그 아이로 넘어간다
분명 세종과 소헌 황후의 따뜻한 로맨스를 보다가, 어느덧 정신을 차려보면, 세종은 아버지가 되어있고 할아버지가 되어 있다. 소헌 황후 또한 풋풋한 소녀에서 시어머니가 되어 있다.
그렇게 이성계부터 시작한 조선왕실의 연애담은 밑으로 내려가며, 고종으로 마무리 짓는다. 참 그도 그럴 것이. 1392년 조선 건국부터, 근 500년 넘는 시간이 흘러가지만, 사람이 사는 모습은 어디까지나 변하지 않는다는 사실 또한 알게 된다.
읽다 보면, 우리가 생각하는 '망한 나라'의 이미지, '조선'이라는 나라에 자부심이 느껴지는 순간이 간혹 있다. 물론, 이 책에서는 그런 부분이 언급되진 않으나, 조선 시대 행정 체계가 얼마나 잘 정립되어 있는지, 또한 '왕정' 국가에서 볼 수 있는 '조선'만의 공화정 정치 체제에 '문명국'의 위엄도 엿볼 수 있다.
깔끔한 공무원 체제와 디테일한 기록 그리고, 국왕이 절대 제왕적 힘을 갖고 있지 않고, 신하와의 적당한 권력 분립 또한 매우 공화정적인 국가의 모습에서 때로는 자부심이 느껴지기도 한다.
또한, 우리가 위대한 왕이라고 일컫는 '세종'을 보자면, 부부지간의 관계가 매우 좋다. 이렇게, 남녀를 불문하고 가정에서 심리적 안정을 얻은 이가 자신의 능력을 마음 것 발산하는 것은 세종뿐만 아니라, 다른 왕들에게서도 보인다. 부부관계나 부자관계가 좋지 못한 아이들은, 흉폭하게 변하기도 하고, 때로는 그런 흉폭함이 신하와 백성으로 내리 전달되어 국가의 존립 또한 위협하기도 한다.
한 남자의 성향이 남편으로서, 아버지로서도 충분히 영향을 발휘하여, 아내와 아이, 그리고 일하는 직장과 사회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스스로의 존재가 대한민국 어떤 위치의 사람들 만큼이나 절대적이라는 책임감도 든다.
조선왕조실록이 담으려고 했던 기록은, 정치적인 기록을 넘어 인류에게 남긴 소중한 '가정'의 기록일지도 모른다.
세대와 세대를 거듭해 가는 과정에서 한 남자와 여자의 이야기, 그리고 그 자녀와 배우자의 이야기, 또한 그 자녀의 자녀와 배우자의 이야기로 내려가며, 우리의 뿌리를 거슬러 올라가면서 결국은 우리 삶 또한, 그 한 획의 점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누구나, 조강지처와 관계가 좋고, 부자 지간의 관계가 좋기를 바라고, 그렇게 형성된 관계가, 자녀에게 좋고, 사회에 좋고, 배우자에게 좋다는 사실을 머리로는 알고 있다.
하지만, 지금의 우리의 모습을 당시의 서기의 눈으로 기록한다면, 우리는 얼마나 우리가 생각하는 정도로 기록이 될까? 인생은 보기에 따라, 비극이 되기도 하고, 희극이 되기도 한다. 같은 상황을 맞이하는 사고의 방식만 바꾸더라도, 일차적으로 내가 편안하고, 이차적으로 나를 대하는 상대가 편안하다.
이 책을 읽는 내내, 그런 생각이 들었다. 자기 생각에 '쿵'하고 빠져 살던 '영조'의 비극은 그가 처한 상황이 만든 것이 아니라, 그가 갖고 있던 '생각의 사로잡힘'이 만든 것이 아닐까?
모든 상황은 긍정적으로 바라보고, 모든 사람을 긍정 적어도 대하자는 뼛속 깊은 교훈이 남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