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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하멜표류기

by 오인환

그냥 정보만 받아들이기 위해선, 굳이 이 책을 읽지 않아도 된다. 관련 다큐멘터리나 영상도 많다. 하지만 책을 읽는 이유는 그 사색의 시간이 90%라고 생각한다. 사색은 잘 담근 김치가 익는 시간을 기다리는 것과도 같다. 쏜살처럼 한쪽 방향을 일방적인 진행으로 달려 나가는 영상과는 다른 게 독서의 깊이이다.

이 책은 몹시나 얇다. 하멜이 십수 년 간, 조선에 살면서 했던 기록치 고는 아쉽다. 그나마 남겨진 기록에 의하면, 조선은 지금의 우리와는 몹시나 다른 나라인 것만은 확실하다.

이 기록은 가까운 근대가 아닌 1600년 대의 배경이다. 당연히 오래된 흉년과 전쟁의 후유증으로 궁핍한 조선인들의 삶을 엿볼 수 있다. 이 책의 마지막 부분에는 전쟁 전의 조선에 대해 풍요로운 나라라고 기술해 놨지만, 그가 바라본 현실의 조선은 풍요와는 거리가 먼 나라임이 틀림없다.

나는 해외에서 외국 생활을 거의 10년 가까이했었다. 해외생활이 10년이 가까우면, 사람은 언어 습득을 굳이 노력하지 않더라도 어느 정도 성취가 가능하다. 특히나 말이 통하는 동포의 부재는 그 속도를 가속시킨다. 아마 그는 어느 정도 조선의 말을 배우고 문화를 습득하지 않았을까 싶다. 내가 해외에 거주하면서 느꼈던, 이방인으로써의 불안감 또한 그는 항상 지니고 살았을 것이다.

지금의 오늘이 언제까지 지속될지, 내 주변에 완전한 내 편이라는 것은 언제쯤 생길지 모르는 불안감은 사실 가장 견디기 힘든 요소 중 하나이다. 그는 그가 겪는 현실 속에서 죽어가는 동포들을 보며 과연 무슨 생각을 하고 살았을까?

요즘은 '세대차이'라는 말이 너무나도 쉽게 쓰인다. 사실 당시 조선에는 국가 간의 문화 차이가 훨씬 컸을 것이다. 한 국가 안에서 농업국가인 조선은 세대차이가 없었을 듯하다. 아버지가 하던 일을 내가 하게 되고, 내가 하는 일이 아들에게 전달되는 간단한 시대 배경은 모든 세대가 한 문화에 동속되고, 아랫사람이 윗사람으로부터 배울 것이 많던 시절이기도 하다.

우리가 근대를 지나, 현대를 살아오면서 우리는 세대 간의 격차와 갈등 들을 심화시켜 왔다. 가령 예를 들면, 아버지가 하던 일을 아들이 하기에 너무나 구식인 경우가 많고 시대에 뒤떨어진 경우가 많았다.

농사를 짓던 아버지는 아들을 서울로 교육시키고, 서울에서 교육받은 아들은 외국에서 유학시켰다. 우리는 같은 국가 안에서 서로 다른 문화를 갖고 살아간다. 할어버지는 농사를 지셨고, 아버지는 공장을 다녔으며, 아들은 사무실을 출근한다.

할아버지의 농업 철학이 아버지에게 효과적일 턱이 없으며, 아버지의 공장 노하우는 아들에게 효율적이지 않았다. 성실하게 몸을 움직여야 성공한다는 어른들의 철학은 최대한 빠르고 간편하게 스마트폰이나 PC를 이용하여 효율적으로 처리해야 하는 아들들이게 답답하고 보수적인 악습에 지나지 않았다.

우리는 우리의 앞 전 세대보다 같은 동시대의 외국 친구에게 더욱 동질감을 느낀다. 아이폰을 사용하는 캐나다 친구와 일본 친구와 더 말이 잘 통하고 BTS를 좋아한다는 영국 소녀와 프랑스 청년과 말이 잘 통한다.

내가 이 책을 읽으며 느낀 생각은 앞서 말한 부분이다. 우리는 너무나도 빠르게 멀리 우리의 모습을 잊어 갔다. '우리나라'라고 하는 조선을 바라보는 시선은 어쩌면 '하멜'이라는 외국인의 시선과 같을 것이다. 어쩌면 당시 조선인과, 하멜 중에 우리와 소통이 가능한 사람은 하멜일지도 모른다.

가끔은 같은 언어를 사용하면서도 소통이 안 되는 사람이 있고, 다른 언어를 사용하지만 소통이 잘되는 사람이 있다. 우리가 조금 더 서양 문명국의 영향권으로 스며들면서, 우리는 우리 자신보다 하멜과 더 가까워졌다. 여기서 바라보는 조선은 너무나도 새로운 곳이고, 읽는 나조차 신비로운 타국일 뿐이었다.

이 책에서 일본은 네덜란드인들에게 동질감이 느껴지는 문명국이었다. 쓰시마를 제외하고는 타 국가와 무역조 차 하지 않던 소중화 사상에 빠진 조선의 무지가 얼마나 한심한지 보여주는 대목이었다. 어쩌면 네덜란드인이 같은 문명국으로 대우하던 일본이 부러워 보일 지경이었다.

이는 비단 국가의 문제만이 아니다. 다른 사람이 나를 보는 시선에 눈을 닫고, 나 혼자 잘났다는 식의 소중화 사상은 언제나 우리 개인에게도 찾아오는 심각한 문제이다. 내가 맞고 너는 틀리다. 혹은 남의 시선에 마음을 열지 않는 자세는 언제나 우리를 고립된 사람으로 만든다. 그 결과는 역사가 대변하며, 조선의 말년이 보여준다.

어쩌면 하멜이 보았던 객관적인 역사가 400년 뒤, 조선이 망할 수밖에 없던 근초적인 원인이자 그 예언서가 아니었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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