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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신친일파

by 오인환

'선'과 '악'이란 무엇인가? '대한민국'은 '선'에 속하고, '일본'은 '악'에 속하는 것일까?

일본은 어째서 사과를 하지 않는 것일까?

일본은 어째서 독도를 그들의 땅이라고 주장할까?

'반일 종족주의'라는 책은 작년에 읽었던 것 같다. 이 책을 솔직하게 평가하자면, '잘 만들어졌다.' 그것은 사실이다. 내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반일 종족주의'라는 책에 있는 내용들이 객관적 사실이냐 아니냐를 따지고 드는 문제는 아니다.


이 '반일 종족주의'를 처음 읽을 때,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말뚝'에 관한 이야기로 이야기를 풀어낸다는 것이다. 어린 시절 학교에서, 선생님은 일본을 '쳐 죽일 X들'이라고 표현했다. 한반도의 정기를 끊어내기 위해, 한반도 이곳저곳에 말뚝을 쳐 박아왔다고 말했다.

정말 뿌리까지 악마 같은 놈들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다시 '일본이 박은 말뚝'이라는 소재를 보게 된 것은 '반일 종족주의'라는 책에서 이다. 나의 뇌리 깊은 곳에 일본인들의 철저한 악행이라고 생각됐던 '말뚝 박기'가 내 생각과 전혀 다른 방향으로 풀어져 나갔다.

이영훈 교수는 논리적으로 자신의 주장을 펼치고자 했던 것처럼 보였다. 그리고 그것은 실제로 들어 먹혔다. 사실 '하멜표류기'에서 '하멜'이 바라본 조선인들은 '거짓말쟁이'이기도 했고, '날조'와 '선동'은 대한민국의 뿌리 깊은 유신정권의 산물이기도 했다. 과연, 우리는 얼마나 진실을 말하고 있고, 얼마나 선동되어 있는가? 합리적인 의심이기도 하다.

일본은 언제나 '악'의 축일까? 어째서 사과를 하지 않는가?

100분 토론을 보면, 대립되는 정치인 패널이 나오고 열띤 토론을 벌인다. 항상 정책적인 이야기만 하면 좋지만, 결국 상대 정당에 대한 과오나 과실을 이야기하거나 상대 정치인의 실수나 과오에 대해 이야기하곤 한다. 나는 지적받은 정치인이 '그것은 제 잘못입니다.'라고 인정하는 경우를 본 적이 없다.

그것은 단순히 정치논리일 뿐이다. 불특정 다수를 향해 '국민 여러분 죄송합니다.'라고 사과를 할지언정 결코, 상대 진영의 정당에 '죄송하다'는 사과를 하지 않는다. 사과는커녕 인정 조차 하지 않는다.

우리는 일본에게 사과를 받고자 한다. 하지만 우리가 사과를 받기 위해서는 아주 뿌리 깊은 곳부터 뒤집어봐야 할 것이다. 일단, 자신의 과오를 인정하고 사과를 하는 독일과 일본은 항상 비교 대상이다. 그렇다면 2차 세계대전 일본과 독일을 이겼던 승전국은 어떤 나라가 있을까? 미국, 영국, 폴란드, 소련, 호주, 뉴질랜드, 캐나다, 네덜란드 등...

대한민국은 '승전국'의 지위를 얻지 못했다. 이런 기본 전제부터가 독일이 미국과 폴란드에 사과를 했던 것과는 다른 배경을 가지고 있다. 이 또한 '정치 논리'이다. 우리나라는 오래전부터, 우파 정권이 정권을 잡으면 '북한'이 '적'이 되었고, 좌파 정권이 정권을 잡으면 '일본'이 적이 되었다.

'적'은 내부 단결을 시켜주고, 표와 지지율을 자극하여 다음 선거에 이길 수 있는 도움이 되게 해 준다. 때문에, 민주주의는 항상 외부의 적을 필요로 한다. 미국이 소련 붕괴와 함께 잃어버린 '적'을 찾아 헤매며, '북한'과 '이라크'를 들쑤셔 보았지만, 비슷한 덩치의 '중국'을 찾기 전까지는 이렇다 할 외부의 적을 찾지 못하였다. 이렇든 외부의 적은 '표심'을 자극하는 매우 중요한 매게 가 되기도 한다.

다시, '선'과 '악'은 무엇인가?

만약, 같은 노동력을 제공하지만 '한국인에게는 매월 380만 원을 지급하고, 베트남 생산직에게는 29만 원을 지급하는 삼성전자는 '선'에 속하는가? '악'에 속하는가?

자본주의와 민주주의라는 정치를 행하는 제도에서는 부득이하게 자국의 이익 보호를 위해, 종교나 철학에서 말하는 '선'과 '악'으로 정확하게 분리하지 못하는 행위들이 일어난다. 분명하게 자신의 영토가 아님을 알고 있으면서(독도), 내부 단결이나 선거용 미끼를 갖고 있어야 하는 것과도 같다.

'신친일파'라는 책은 '반일 종족주의'의 이영훈 교수를 정확하게 타깃으로 두고 글을 썼다. 이영훈 교수가 썼던 반일 종족주의에서의 모든 글이 '거짓'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분명 일리가 있는 부분이 있다. 하지만, 정말 위험한 것은 단일 '반일 종족주의' 책 만 읽었을 때, 엄청나가 위험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당연하게 수용적인 태도로 책을 읽어 내려가던 나는, 이번의 '신친일파'라는 책을 만나지 않았다면, 결단코 사실이라고 생각할 수밖에 없는 내용들을 만나게 되었다. 신친일파는 한쪽으로 기울어진 사고의 무게를 다른 한쪽으로 기울임으로써 균형을 맞춰준다.

이번 신친일파의 주된 내용은 '반일 종족주의'에 나와있는 근거 중 취약한 부분을 매우 정확한 근거를 들며 반박해 나가는 데 있다. 하지만, 사실상 비약적인 논리가 보이기도 하고, 또한 일부는 반박하지 않은 부분도 있다. 또한 호사카 유지 교수님이 너무 감정적으로 글을 쓰고 있지 않은가 의심이 되는 부분도 있다.

두 분 다. 참으로 대단한 석학들이다. 때문에 누구의 말이 더 맞고 누구의 책이 더 좋은지 아직은 판단할 수 없다. 하지만 재밌는 것은, 한국인이 대변하는 일본(반일 종족주의)과 일본인이 대변하는 한국(신친일파)의 대립구조가 매우 재밌다는 사실이다.

예전 고려시대에 정몽주와 이방원은 '하여가'와 '단심가'라는 시조 대결을 통해 스스로의 입장을 주고받았고, 그들 또한 그들이 갖고 있는 뛰어난 예술적, 지적 감각의 대립이 아름다운 문학작품이 되었다.

사실, 어떤 부분이 진짜이고 가짜인지 확인은 하지 못했지만, 그들의 이야기를 따르면 어느 한쪽에서는 분명 틀림없는 거짓을 이야기하고 있다. 그것이 고의적인 '날조'에 속해져 있다면, 그것은 분명, '지식인'으로써 지탄받아 마땅한 일이지만, 만약 견해의 차이 정도라면, 이러한 지식인들의 대립이 건전하게 독자의 선택을 넓혀주는 문학이 된다면, 그것은 또한 대한민국의 독자로서 매우 환영할만한 일이기도 하다.

신친일파는 크게 3개 가지로 반일 종족주의를 비판하는데 그중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위안부에 대한 진실과 독도에 관한 진실이다.

반일 종족주의를 보자면 위안부 할머니들을 몹시 폄하한다. 그것이 실제일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 우리는 정확한 정보를 갖고 있지 않기 때문에, 그저 지식인들의 해석을 받아들일 뿐이다. 그렇게 일방적인 시선으로 받아들였을 때는 다르게 보이던 위안부 할머니들의 이야기가, 다시 신친일파라는 책에서 접하면서, 다시 가슴 아픈 역사가 되었다.

그 부분은 다시 보더라도 호사카 유지 교수 님의 글이 더 설득력 있어 보인다. 또한 그것의 진실 공방을 떠나, 위안부 할머니들이 겪었을 고통에 숙연해지기도 하고, '청년이 힘든 시대'라는 핑계로 힘들다 불평하던 우리 젊은 이들이 얼마나 배부른 세상에 살고 있는지 느끼게 해주는 부끄러운 부분이기도 했다.

누군가는 태어나고 보니, 나라가 없는 식민지 국가에서, 온갖 멸시와 차별을 받을 수밖에 없었고, 또 누구는 그 목숨마저 가벼이 여겨지는 시대에 태어나기도 했다. 그저 전쟁의 무차별한 희생량으로써 자신의 인생을 펴보지 못한 젊은 이들도 많았던 시기, 다만 아버지 시대보다 취업이 조금 힘들다거나, 자산 축적이 어렵다는 것이 '힘든 시대'라고 불평하는 우리의 모습이 애처로울 만큼 한심해 보이기도 했다.

이 책에서 마지막 부분에는 '독도'에 하여 설명했다. 나도 예전에는 왜 독도가 우리 땅인지에 대해 이해를 못하면서, 일본이 나쁘다고만 생각했다. 하지만, 세종실록 지리지나 우산국의 해석 등을 모두 차치하고, 그저 '실효적 지배'를 하고 있다는 사실 하나 만으로, 독도는 대한민국 영토가 분명하다.

거기에 역사적 사건을 더하는 것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 우리가 만주 벌판을 터전으로 잡고 있던 고구려의 옛땅을 되찾고자 중국에 영토 주장을 하며 고서를 들이미는 것이 과연 얼마나 효과적인 방법인가 싶다.

'독도'는 '독 섬'이라는 뜻으로 '섬'의 일본어인 '시마'와 함 쳐져 '독 시마' 즉, '다케시마'로 불려졌다. 다케시마는 일본이 내부 정치적 결속과 이웃 국가와의 외교적 카드로 사용하기 위한 일종의 미끼에 불과하다. 어찌 됐건 실효지배를 하고 있는 독도를 일본이 탐한다고 해서, 일본으로 넘어가는 일은 일어나지 않는다. 그저 조용하게 일본의 주장에 대응하지 않는 현명한 방법이 제일이다.

아무튼 신친일파라는 책. 사실 많이 두껍지는 않지만, 분량이 많고, 사료가 조금 많은 편이기는 하다. 주말 이틀간, 쌍둥이 녀석들 케어를 하며 읽었는데, 주말이 아니라면 꽤나 오래 걸렸을 수도 있을 만한 책인 것 같다.

참고로 이 책은 반일 종족 주의자를 읽지 않는다면, 조금 이해하기 힘들 수도 있다. 대놓고, 반일 종족 주의자를 겨냥했기 때문에, '이영훈'이라는 명사가 꽤나 많이 등장하고, 그 책의 내용 하나하나를 지적하기 때문이다.

어찌 됐건, 독서가는 항상 '균형적인 사고'가 중요한 것 같다. 반일 종족 주의자를 읽었다면 반드시 이 책을 읽을 것을 권하고, 이 책을 읽었다면 반드시 반일 종족 주의자를 읽기를 권한다. 그리하여, 독서가 스스로 판단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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