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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슬픈 조선 1

슬픈 우리 근대사(한국사)

by 오인환

요즘 왜 그런지, 타율이 높다. 책을 고르면 아무리 마음에 들 것 같지만, 실제로 읽어보면 허당이거나 별로인 책을 만나는 경우가 많은데, 근래 들어 좋은 책을 많이 만나게 되는 것 같다.

예전에 재밌다고 하는 영화를 따라가서 본 기억이 있다. 보면서 잘 만들었다고 감탄했던 적이 있다. 하지만, '잘 만든 것'과 '명작'은 정말 하늘과 끝 차이라는 걸, '포레스트 검프', '타이타닉', '라이언 일병 구하기'는 알려주었다. 이 세 영화는 내가 외국에서 밥을 굶을 정도로 가난한 와중에 돈을 모와 CD를 샀던 유일한 영화들이다. 이 영화는 '잘 만든' 영화가 아니라 '명작'이다.

'이 책을 읽고 든 생각이다. '잘 만든' 책이 아니라, 명작이다.' 나는 학생들에게 역사를 가르쳤던 적이 있다. 처음부터 역사를 가르치려는 의도를 갖고 있던 건 아니고, 영어 강의를 하다 보니 역사 강의도 하게 된 것이다. 그중 내가 좋아하던 분야는 '근현대사'이다. 근현대사는 '역사의 꽃'이나 다름없다. 원래 문명은 구석기, 신석기, 청동기, 철기 순으로 이어간다. 인간은 이처럼 커다란 격변의 시기를 몇 번을 맞게 되는데, 철기 이후에 커다란 격변이 있어 보이진 않는다.

하지만 영국에서 시작된 '산업혁명'으로 인류는 앞서 말한 시대 구분의 가장 마지막 부분을 시작하게 됐다. 사실 사업 혁명은 아주 단순한 것이다. 인간이 한 땀, 한 땀 옷을 짜입다가, 발견된 '방적기' 때문이다. 방적기는 면을 짜는 기계다. 이 기계와 '증기기관'의 발견으로 영국은 '생산 속도 향상'을 얻게 된다.

'생산 속도 향상'은 자본의 축적을 만들어주고, 생산성 향상과 원가절감을 만들어준다. 자본 축적은 자본주의의 기틀인 주식회사 설립의 근간이 된다. 여러 사람이 돈을 투자하여 주식으로 배당받을 수 있는 주식회사가 설립되면, 그 주식회사는 자신들의 생산성 향상으로 얻게 된 수익을 배분하는 사회로 발전시켰다.

기계가 인간이 해야 할 일들을 대신해주니, 인간들은 노동시간이 단축하게 되었다. 또한 자본가와 주식회사는 이렇게 단축된 인간의 노동시간을 '용병 착출'로 대체했다. 영국 내에서 생산된 질 좋고 저렴한 면화가 전국으로 빠르게 확산되었다. 자신들이 갖고 있는 시장을 독점하게 된 이후에도 그들은 꾸준하게 생산량을 늘렸다. 그 이유는 투자금이 몰려들어왔고 그 투자자들에게 수익 배분을 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런 이유로 주식회사는 자국에 판매하고 남은 잉여 생산물을 배에 싣고 아프리카로 떠난다.

아프리카는 면화를 팔기 매우 좋은 나라였고, 유럽과 가깝기도 했다. 영국에서 시작한 산업혁명은 이어 프랑스로도 전파되었다. 프랑스 또한 생산량 폭발을 겪었다. 프랑스의 주식회사도 주주들의 이익을 위해 아프리카로 진출했다. 더 많은 사람들에게 물건을 팔기 위해 더 많은 국가를 개방해야 했다. 영국은 '인도'라는 엄청난 시장을 열고 그곳에서 면직물을 팔기 시작했고, 그 뒤로 대영제국은 전성기를 맞는다.

더 저렴하고 질 좋은 면직물을 거절할 소비자가 있던가? 간디가 물레를 돌리고 있는 사진이 유명한 이유는 영국의 면화를 사용하지 말고 스스로 생산활동을 하자는 의미가 있다. 프랑스와 영국이 아프리카를 넘어서고 아메리카로 진출하고 당시 최고의 문명 대륙이던 동양으로 진출하던 시기 독일은 뒤늦게 산업혁명이 일어났다.

이렇게 너도 나도 '공급량'이 '소비량'을 무자비하게 넘어가던 시기, 세상은 '생산량 폭발 국'과 그렇지 못한 그저 소비국으로 나눠졌다. 일본은 아시아에서 유일하게 산업혁명이 먼저 일어나 생산량 폭발 국이 된 나라다. 당연히 일본도 물건을 팔기 위해 배에 물건을 싣고 이곳저곳의 대문을 두드릴 것이다. 비교적 산업혁명이 늦게 일어난 일본이나 독일은 자신의 국가에서 생산된 잉여 생산물을 싣고 밖으로 나가기에는 이미 프랑스와 영국이 세계를 양분하고 있었기에 그들의 식민지를 빼앗기 위해 타국을 공격하는 행위를 할 수밖에 없었다. 사실 세계 대전도 그만큼 경제학적인 이유가 있다.

책에서는 이양선 출몰로 이야기를 시작한다. 이양선이 출몰한다. 학교 다닐 때, 이양선은 우리나라를 침탈하러 온 외적으로 묘사되지만, 그렇지 않다. 이양선은 물건을 가득 실고 온 주식회사 소유의 배인 경우가 많다. 일본보다 개항을 늦게 했기 때문에 우리가 문명화가 뒤늦었다는 이야기도 있으나, 그렇지 않다. 생산량이 낮은 나라가 무턱대고 개항부터 시작한다면, 그 국가에는 싸고 질 좋은 수입품이 물 밀듯 들어온다. 당연히 그렇게 되면 해당 국가의 주식인 '쌀'의 반출이 시작된다. 그러면 쌀값이 폭등되고 백성들의 삶이 궁핍해진다.

우리는 어쩔 수 없는 선택들을 이어왔던 것이다. 나는 영화나 드라마를 볼 때, 선과 악이 극명하게 구분된 영화나 드라마를 좋아하지 않는다. 가끔 극적인 효과를 위해 '악역'이 '절대 악'으로 그려지는 경우가 많은데, 사실 '교도소'에 가보면 억울한 사람들 천지고, 죄를 몰랐다는 사람이나 무죄라고 주장하는 사람들 천지다. 악역이라는 역할도 자신의 위치에서 자신에게 이득이 될 만한 일들을 하다 보니 그렇게 되는 경우가 많은데, 간혹 주인공을 괴롭히는 것이 오직 그들의 존재 이유인 것처럼 그려지는 배역들은 정말 보고 싶지 않게 한다.

특히 우리나라의 일제시대를 그린 영화들이 그런 편인데, 조선인에게 이유 없이 욕하거나 괴롭히는 걸 즐기는 일본인들로 비치는 영상들이 간혹 있다. 하지만, 그저 사람을 괴롭히면서 비열한 웃음을 짓는 걸 즐기는 건, 일본이라는 국적을 가졌기 때문에 그렇게 될 리는 없다.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은 참 명작이다. 우리나라의 교과서만 하더라도 마치 일본이 조선말부터 우리를 괴롭히기 위해 존재했고 철저하게 그들의 방식으로 역사가 흘러가는 것처럼 서술해 놓는다. 하지만 사실 모든 것은 그때마다의 선택의 결과일 뿐이다.

일본은 실제로 미국에 의해 개항하게 되었다. 그 과정이 우리가 일본으로 개항했던 '운요호' 사건이랑 같다. 일본은 자신들이 개항하고 어떻게 시장이 열리고 어떻게 그들이 성장해 가는지를 살펴보며, 그 답습을 조선을 상대로 했다. 단지 그 결과거 성공적이었을 뿐이다. 우리의 비극은 정조가 물러선 그 이후부터 시작했다. 정조가 물러나고 순조가 재위를 하게 될 때, 순조의 나이는 11살이다. 당연히 세도정치가 판을 칠 수밖에 없다. 그리고 다시 헌종이 즉위였고 헌종 역시 나이가 8세였다. 그리고 즉위한 다음 왕은 강화도령인 철종이다. 권력들이 왕이라는 이름으로 허수아비가 필요했던 시기에 아무런 힘이나 영향력 없이 재위 기간을 보내다, 후사 없이 철종이 승하하자 고종이 12세의 나이로 즉위한다.

이렇게 조선이라는 나라는 조선 후기가 되면서 나이 어린 왕들이 순서대로 즉위하는데, 그 이유는 단순하다. 왕이 어리면 수렴청정을 할 수 있는 시기가 주어지고 그 시기에 외척 세력들이 득세하기 때문이다. 자식이 왕인데 왕의 어머니가 힘이 세지는 건 당연하다.

이처럼 어린 왕을 꾸준하게 내세우던 중심 없는 조선이 무너지는 건 어쩌면 당연했다. 책에서 그려진 고종은 참으로 무능하다. 아버지와 아내에게 휘둘리며 스스로 중심 없이 흔들린다. 그러는 와중에 500년 조선의 역사가 말 그대로 역사로 묻힌다. 책에서는 그런 조선의 역사를 보며 '무능하다' 혹은 고종을 보고 '무능하다' 등의 표현을 하지 않는다. 다만 조선의 상황을 열거 해갈뿐이다. 객관적인 상황을 보여주며, 그 판단을 독자에게 넘긴다.

이 책의 저자는 일본인이다. 나는 예전에 일본에는 종이 접기에 관련된 고서도 있다는 내용을 들은 바 있다. 일본이나 서구 선진국들은 '이런 것들도 다 기록이 되어있단 말이야?' 싶은 기록물들을 갖고 있는데 참으로 부러웠었다. 이 책은 쓰이길 소설로 쓰여 있다고 하지만, 아주 조그만 표현 정도만 소설성을 가미했을 뿐, 거의 사실 기반인 경우가 많았다. 이런 책이 우리의 손에 쓰이지 않았다는 건 참으로 씁쓸하다.

나는 이 책을 읽는데 꼬박 이틀이 걸렸다. 책은 두툼하니 첫 페이지를 넘길 때는 부담이 있지만, 한번 넘어간 페이지는 아주 빨리 읽힌다. 그만큼 재미있다. 사실 이 책은 너무 재밌게 봤기 때문에, 다음에 시간을 두고 한 번 더 읽어볼 의향도 있다. 그전에 슬픈 조선 2도 읽어 봐야겠다. 는 생각이 든다. 사실 이 책의 독후감은 쓰고 나서 너무 아쉽다. 이 책에 대해 많이 남기지 못한 것 너무 아쉬울 만큼 만족했던 책이다. 나중에 언젠가 다시 이 책에 관한 독후감을 한 번 더 작성해야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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