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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체르노빌의 목소리

by 오인환

최근 얼마 간, 블로그를 정리하고, 글쓰기를 쉬었다. 글을 쓰는 시간을 줄이고 책을 읽는 시간을 늘리다 보니, 자연스럽게 독서량은 늘었다. 내가 '독서시간 확보'라는 계획을 실행에 옮기고, 제일 처음 읽었던 책이 아닌가 싶다. 우연히 유튜브에서 체르노빌에 관련한 연관 동영상을 시청하게 된 적이 있다.

아이를 키우는 집이라, 웬만해서는 스마트폰을 우리 부부는 꺼내 들지 않는다. 기왕이면, 책을 보는 가풍을 만들어 주자는 우리 부부의 철학에 따라, 스마트폰을 멀리하다 보니, 유튜브나 영상매체를 접하는 기회가 줄어들게 되었다. 하지만 우연하게 시청하게 된 체르노빌에 관련한 영상은, 연관된 다른 영상으로 이어지고, '김익중 교수님'의 탈원전 강의까지 들어가서 보게 되었다.


독서의 기본은 호기심에서 시작한다고 했던가, 갑자기 궁금해졌다. 체르노빌은 어떤 곳이고, 과연 방사능이란 무엇일까? 막연한 호기심을 가지다, 우연하게 네이버 추천도서에 이 책을 보게 되었다.


활자를 읽은 지, 꽤나 지났고 페이지도 꽤나 넘어갔다. 하지만, 나에게 난독증이 있는지, 도무지 내가 무슨 글을 읽고 있는가 싶어 몇 번을 앞으로 넘어가면 읽었다. 앞 문장과 뒷문장 사이에는 친절한 '연결사'나 설명 따위가 생략되었다.

이 글을 읽을 때, 나는 동시에 강원국 작가 님의 '대통령의 글쓰기'라는 책도 함께 읽었었는데, '완벽'이라고 하는 것은 더 이상 덧붙일 게 없을 때가 아니라, 뺄 게 없을 때라는 말이 생각이 났다. 불필요한 접속사나, 연결사, 부사를 과감하게 생략해서 깔끔하고 단순한 글이 좋은 글이라고 했다.

이 책의 작가가 노벨상 수상자이기 때문일까? 내가 단순하게 그의 필력을 이해하기에 독서력이 부족해서 일까.. 고민을 했지만, 우여곡절 끝에 3일에 걸쳐 이 책을 마무리 지었다.

책은 작가가 녹음기를 들고 가서, 벨라루스에 사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녹음해다가 적어둔 것이라고 보는 것이 좋을 것 같다. 친절한 설명 없이, 작가는 독자의 독서력을 믿고, 과감하게 본론만 던져 놓는다.

어떤 말을 누가 했고, 왜 갑자기 이런 이야기를 했는지에 대한 설명도 과감하게 생략한다. 읽고 있으면, 내가 무엇을 읽고 있는가 의문이 들 정도이다. 하지만 완독하고 나서 나는 이해했다. '이래서 좋은 글이구나.'

확실하게 '책'에서 말하고자 하는 핵심만 남고, 군더더기는 모두 증발했다. 때로는 인터넷에 자극적인 '사진' 혹은 '영상'들로, 우리에게 가십거리나 호기심의 대상이었던 체르노빌이, 어떤 '역사적 사실'을 벗어나, 누군가에게는 '현실'이 되고, 영화나, 드라마처럼 해피앤딩이나, 새드 앤딩처럼 결말이 지어지지 않은 '삶'의 일부라는 사실...

이 곳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특별하다고, 남다르다고 볼 수도 없는, 우리의 또 다른 모습일 것이다. 단지 시기와 장소의 차이일 뿐이지, 이 인터뷰의 대상들은 우리가 될 수도 있고, 우리가 아는 사람들이 될 수도 있었다. 그들을 괴롭히는 것은 '방사능' 뿐만이 아니었다. 사건 이후 그것들을 관리하는 관리자와, 방관하면서 재미 삼아 구경하는 구경꾼들의 시선일 것이다. 방사능의 반감기를 10만 년, 혹은 30만 년이라고 했던가?

잊히지 않고, 달라붙어서 꾸준하게 들러붙는 방사능 물질은 어쩌면 세슘이나 스트론튬 따위가 아니라, 우리들의 시선들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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