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수 청소라는 직업에 대해 생각해 본 적 없다. '김완 작가'는 특수 청소를 하고 있다. 그의 직업은 자살한 사람의 마지막을 정리하는 일이다. 매 38분마다 한 명씩 자살로 목숨을 잃는 나라에서 '특수 청소'에 대해 큰 생각을 해 본 적 없었다는 것이 꽤 이상할 정도다. '김완 작가'의 책에는 특수청소를 하면서 겪은 다양한 이야기가 묘사되어 있다.
꽤 인상 깊은 이야기라면 자기 죽음에 드는 가격을 알아보기 위한 남자의 이야기다. 자기가 죽고나면 그 청소 비용이 대략 얼마가 드는지 알고자 했던 사람의 인생은 과연 무엇으로 채워져 있었을까.
김완 작가에 따르면 비슷한 문의는 적지 않다. 다수의 사람들이 자신의 죽음에 책임을 지고 떠났다. 아이러니이다. 스스로의 삶에 책임을 포기하며 죽음에 책임을 지는 모습 말이다. 그의 말에 따르면 죽음을 선택하는 다수에게 비슷한 공통점이 있다. 밀려 있는 전기요금이라던지, 기타 독촉장이 그렇다.
법원의 어떤 독촉은 채무자의 사망을 확인하고 상속자를 찾는다. 이런 이유로 자살하는 이들의 주변인 심지어 가족마저 그들의 죽음을 외면하기 시작한다. 모두가 상속포기를 하고 나면 법은 독촉 절차 중지에 들어간다.
모든 이들이 외면할 때, 최후까지 그들의 '안녕'을 확인하는 이들이 '채권자'라는 사실은 꽤 씁쓸하다. 우리는 얼마나 많은 이들을 외면하고 있나.
스탈린은 '한 사람의 죽음은 비극이지만, 수백만의 죽음은 통계일뿐이다.'라는 말을 했다. 어쩌면 우리는 매순간 일어나는 비극에 대해 무관심하다. 단순히 그것은 '통계'와 '숫자'라고 여긴다.
죽음에 대해 얼마나 경각심을 갖고 있는가. '죽음'이라는 사건은 개인에게 결코 가볍지 않다. 어떤 개인이라도 '죽음'은 '전지구적 종말'과 같은 끝을 말하며 그가 구축했던 모든 세계와 과거, 현재, 미래가 무너지는 일이다. 이런 죽음에 대해 얼마나 생각하고 살까.
산 사람들은 죽음에 관한 언급 자체를 불경한 일로 여긴다. 독특하게도 대한민국에는 매1분 30초마다 한 명이 목숨을 잃는다. 많은 죽음은 꽤 우리와 격리되어 결국 남의 일이다. 그 비극이 '숫자'나 '통계'가 아니라 '이야기'라는 사실을 알고나면 모든 죽음의 서사가 안타깝다.
수필은 쓰여진지 꽤 오래된 듯하다. 어째서 이 책을 지금에와서 읽게 됐는지 아이러니하다. 글을 읽으며 생각이 많아진다.
'이완 작가'는 자신의 직업을 두고, 타인의 죽음으로 생계를 이어가는 직업이라고 했다. 그의 직업은 '철학'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고 '죽음'을 떼어 낼 수 없다. 그가 바라보는 죽음은 그런 의미에서 '철학적일 뿐만 아니라 현실적'이기도 하다. 죽은 이들이 남기곤 흔적은 '지독한 악취'와 '기름', 혈흔'처럼 현실적이다. 죽음에 대한 이야기가 꽤 매스컴에서 말하는 바와 같이 '아름답게만 그려지지 않는 이유는 그가 죽음을 바라보는 시선이 누구보다 '삶'에 직결되어 있어서다.
꽤 오랜 시간 동안 한 문장, 한 문장을 곱씹고 읽게 됐다. 문장이 얼마나 좋은지 직업이 '글쓰는 사람'인가. 했더니, 실제 글을 쓰는 직업을 갖고 있었다. 좋은 글을 쓸 수 있는 사람이 많아지면 직업에 대한 철학적 깊이도 간접적으로 느껴 볼 수 있다는 점에서 많은 생각이 드는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