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습관은 첫 번째 본성을 파괴하는 두 번째 본성이다."
검소함은 종종 오해를 만든다. 많은 이들은 '검소함'을 '궁상 맞음'이나 '궁핍'과 혼돈한다. 다만 본질적으로 검소함이란 결핍에 의한 수동적 자세가 아니다. 되려 자발적이고 능동적인 삶의 태도다. 즉 이는 '선택'이다.
사람은 소비를 통해 순간적인 행복이나 만족감을 얻을 수 있다. 다만 이는 지속되지 않는다. 쇼핑몰에서 물건을 사면 순간적 기쁨은 느낄 수 있다. 소비를 통한 충족감이란 모래 위에 쌓는 성과 같다. 물질적 풍요만으로는 결코 안정적인 행복을 얻을 수 없다.
단순한 예로 그렇다. 당장 서점에 가면 수북하게 책이 쌓여 있다. 거기서 필요하던, 필요치 않던 최대한 많은 책을 구매하고 돌아온다고 해보자. 그렇게 집에 구매한 책이 쌓여 있다면 그것은 과연 무슨 의미를 가지고 있는가.
진정한 의미의 소비란 단순히 '수'적으로 많이 갖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필요한 만큼만 집어 오는 것이다. 그리고 그 책을 잘 읽고 마음에 담고 삶에 이용할 수 있다면 종이 위에 활자로 인세된 '책' 자체는 뗄감으로 써도 문제가 되지 않는다.
본질은 스스로 무엇이 필요한지를 아는 것이다. 그리고 필요한 것을 담담하게 들고 나올 수 있는 것이며, 최소한 자신이 필요한 그것을 사올 수 있을 정도의 경제적 자유로움은 취하고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만에 하나를 위해, 혹시라도 있을지 모르는 미래를 위해 일단 최대한 많이 쌓고 보자는 의식은 '불안'에 기인한다.
다람쥐나 개미는 도토리를 모으거나 먹이를 쌓는다. 꿀벌은 온종일 꿀을 채집한다. 잉여물 저장을 하는 생명체들이다. 이들은 스스로를 보호할 능력이 없음을 알고 있다. 혹독한 겨울이 오면 자신을 지킬 힘이 없는 약한 존재들은 사전에 모아둔 것을 먹으며 생존을 도모한다.
다만 호랑이나 사자는 여분의 먹이를 굴 속에 감추지 않는다. 포식자는 오늘 사냥하고, 배부르면 그냥 남긴다. 고로 배부른 포식자는 불필요한 사냥을 하지도 않는다. 그들의 하루는 느긋하게 주변을 바라보며 휴식을 취하며 보낸다. 필요할 때 다시 사냥하면 되기 때문이다. 그들이 그렇게 게을러질 수 있는 이유는 '게을러서'가 아니라 '능력'을 믿기 때문이다.
나뭇가지에 앉아 있는 새는 가지가 부러질까 두려워 하지 않는다. 새의 믿음은 밟고 있는 나뭇가지가 아니라 자신의 두 날개에 있기 때문이다.
고로 잉여물에 대한 믿음이 아니라 자신에 대한 믿음이 확고해야 한다. 그러면 검소할 수 있다. 언제 무너져도 다시 회복할 수 있다는 자신감은 말그대로 포식자의 사고방식이다.
자연선택적으로 초식동물의 눈은 주변을 감지하기 위해 눈이 양 옆에 달려 있다. 이들은 언제 어디서 포식자가 나타날지 모르기에 항상 주변을 살핀다. 조금이라도 이상한 낌새가 있으면 온몸을 긴장시키고 도망칠 준비를 한다. 풀을 뜯는 순간에도, 발 밑 땅보다 머리 위의 하늘을 더 신경쓰고 살아간다. 그들에게 세상은 위험으로 가득한 공간이다. 그들에게 살은 불안의 연속이자 생존을 위한 숙명과 같다.
반면 포식자는 다르다. 사자나 호랑이 등 포식자의 눈은 앞을 향해 있다. 독수리는 먼 곳을 주시한다. 그들은 주변을 두리번 거리지 않는다. 목표를 정하고 집중한다. 그들의 눈이 목표한 한 곳을 응시할 수 있도록 진화한 이유는 '주변'을 경계할 이유가 없고 목표물을 빠르고 정확하게 포착하기 위해서이다. 끝까지 한 점을 응시하며 기회를 노린다. 기회란 있을 수도 있고, 없을 수도 있다. 성공할 수도 있고 실패할 수도 있다. 그러나 그들은 없는 기회를 불안해 하지 않는다. 실패한 사냥에 마음 상해 하지 않는다. 그저 담담히 다음 사냥감을 기다릴 뿐이다.
목표를 절정하고 집중하는 순간 잡념은 사라진다. 강한 존재는 불안을 피하지 않는다. 한 곳을 바라보고 원하는 것을 얻을 힘을 기른다.
검소함이라고 한다면 '사자'와 '호랑이'와는 거리가 멀다. 그들은 언제든 원하는 사냥감을 얻을 수 있다. 고로 잉여물을 만들기 위해 에너지를 낭비하지 않는다. 사자는 하루중 거의 스무 시간 가까이를 잠자거나 쉬거나 빈둥거리며 휴식한다. 보통 나무 그늘 아래나 시원한 곳에서 낮잠을 잔다. 사냥시간은 고작해봐야 3~4시간에 불과하다. 낮에는 더워서 활동을 하지 않는다. 밤에는 시원해져서 사냥에 나선다. 그들의 사냥은 실패할 수도 있지만, 사냥에 실패하면 다시 오랜 시간 쉬면서 에너지를 충전한다. 실패를 위해서 잉여물을 쌓느라 에너지를 낭비하지 않는다.
강한 근육과 힘을 필요로하는 이들은 단기적 폭발력을 가져야 한다. 고로 짧은 시간에 많은 에너지를 사용한다. 이들은 사냥 후 회복과 에너지 절약이 중요하기 때문에, 하루 대부분을 쉰다
'사피엔스'의 저자 '유발 하라리'는 '농업혁명'이 인류사 최대의 실수라고 말한다. 인간은 본래 채집과 사냥을 하는 '포식자'의 위치에서 '잉여생산물'을 쌓고 사는 '피식자'의 위치로 스스로를 끌고 갔다. 고로 항상 불안을 마음에 두고 살아가게 됐다. 다만 우리의 눈은 어디에 위치하고 있는가.
다만 '검소함'의 핵심은 '능동적 선택'이다. 타의에 의한 '수동적 결핍'은 '가난'일 뿐이다. 능력을 키우고 수익을 늘리며 자산을 확대하되, 불안을 해소하기 위한 목적으로 '소득'과 '자산'을 올리겠다는 생각은 되려 독이다. 그저 여유로운 포식자의 위치에서 검소한 삶을 유지해야 한다.
뿐만 아니다. 검소함은 물질 너머의 본질을 볼 수 있게 한다. '검소함'을 습관화하면 외적인 것에 자유로워진다. 내적 가치에 집중하게 된다. 스스로 무엇을 원하고 의미가 있는지 성찰하게 된다. 단순히 숫자나 양에 의해 움직여지는 수동적 행동에서 자유로워진다. 비싼 옷이나 자동차로 겉을 포장하지 않고 좋은 책과 생각으로 자신을 채워도 부족함을 느끼지 못한다. 소비가 줄면 자유가 온다. '나'를 움직일 수 있는 무기가 외부에서 사라진다. '얼마'정도면 '움직일 수 있다'는 시장가치가 사라지면 나를 대하는 상대의 자세가 달라진다.
불필요한 소비가 사라지면, 그만큼의 시간과 정신적 에너지는 내부에 쌓인다.
현대 사회는 소비를 통해 끊임없이 유혹한다. 광고는 가진 것 보다 더 많은 소비를 부추긴다. 가진 것보다 더 많은 소비를 하는 것은 '유아적 소비력'에 가깝다. 아이는 절제하지 않는다. 아이는 흘러가는 수돗물을 잠거야 할 이유를 정확히 알지 못한다. 흘러내리는 콧물을 소매로 '스윽'하고 닦을 정도로 길게 보지 못한다. 음식물을 왜 남기면 안되는지 이유를 찾지 못한다. 고로 절제와 자제는 꽤 유아적인 성품에서 멀어져 '성인'으로 다가가는 길이다. 고로 검소하게 사는 것은 우아하고 품격있는 삶이다. 스스로를 깊이 이해하고 그에 맞게 삶을 절제 할 수 있는 절제력을 가졌다는 의미다. 검소함은 과잉된 것을 걷어내고 본질만 남긴 바와 같다.
나에게 남은 것이 온통 본질인 사람들에게는 삶이 가치있는 것으로 채워지기 마련이다.
단, 오해를 말아야 하는 것은 검소하게 사는 것은 '무능력'과 정반대되는 개념이다. 되려 아주 능력있음을 입증하는 내적습관에 가깝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