뜨거운 냄비를 만지려는 아이에게 가득한 것은 '호기심'과 '탐구욕'이다.
아이에게 '그것이 뜨겁다'고 아무리 알려줘도 아이는 이해하지 못한다. 그럴 때, 가장 좋은 방법은 아이에게 '냄비'를 만지도록 하는 것이다.
아이의 손을 뜨거운 냄비에 데도록 하라는 의미가 아니다. 아이의 손을 잡고 그것이 얼마나 뜨거운지 빠르게 살짝 건들 수 있게 하는 것이다.
'아무리 말로 설명해도 직접 경험해 보는만 못하다'
어디서 보건데, 실수를 하지 않는 가장 완전한 방법은 '실수'를 해 보는 것이란다.
아이가 뜨거운 냄비를 '덥썩'하고 잡지 못하도록 그리고 지워지지 않는 상처가 남지 않도록 주의깊게 뜨거움을 경험시키는 것이다. 통제 가능한 위험 속으로 잠시 아이를 밀어 넣고 학습을 시키면 아이는 두 번 다시 그 냄비를 만지지 않는다.
때로는 '객기'와 '용기'를 혼동할 때가 있다. 그말은 무슨 말인가.
아이가 팔팔 끊는 냄비에 손을 가져가는 것은 '용기'가 아니다. 그것은 무지로부터 나온 '객기'다. 뜨거운 냄비가 뜨거운 줄 알면 쉽게 손이 가지 않는다. 그것을 이겨내고도 해야하는 일을 할 때, 그것을 '용기'라고 부른다.
아이로부터 배울 때가 많다.
아이를 키운다는 것은 새로운 스승을 두는 셈이다. 성인으로써, 부모로써 아이의 성장을 돕고 있지만 실제로 성장하는 바는 나이다.
대략 나이가 서른즈음 되면 인간에게 '정체성'이라는 것이 생긴다.
'서른'이라고 말한 이유는 그 정도면 대부분이 '직업'을 갖고 '생업'을 갖기 시작해서다. 초등, 중등, 고등, 대학 시기에 사람들의 정체성은 고작해봐야 '학생'이다.
그러나 사회에서 스스로 혹은 환경적으로 '역할'과 '책임'을 부여 받으면 정체성이 생긴다.
누군가는 '가수'이고, 누구는 '의사'이며, 누구는 '요리사', 누구는 '변호사'일지 모른다.
그 사람의 직업만 보고도 대중은 '사람'을 '일반화'하기 시작한다.
'목사'라던지, '스님'이라고 한다면 갖게 되는 일종의 '이미지'
'교사'라던지, '강사'라고 했을 때 갖게 되는 이미지.
'군인'이라던지 '경찰'이라고 했을 때 갖게 되는 이미지.
직업이라는 '역할'이 부여되면 사람들은 자는 시간을 제외하고 대부분의 시간을 '그 역할'에 대해 생각하고 산다. 거기서 벗어나지 못한다.
즉 '자신'은 잃어버리고, '직업'이 주는 '롤'에 갖힌다.
그러나 그즈음 아이가 태어나면 본디 자신의 역할이라고 생각했던 것에서 벗어나 생각할 수 있다.
모든 것이 '새로운 사람'에게는 움직이는 구름이나, 기어다니는 개미도 호기심의 대상이다. 그러나 대략 서른즈음 되면 삶은 루틴화되고 자신 또한 직업이 주는 일반화의 대상이 된다.
고로 '아차.. 나도 저랬었지...'하는 깨달음이 문득 찾아오는 것이다.
어느 순간 아이와 바라본 구름이, 나에게도 특별했던 시절이 있었다는 것을 잊고 살았다. 바쁘다는 핑계로, 먹고 살아야 하는 이유로 삶을 축약해버린 채, 무미건조한 루틴을 돌고 돌았다.
그 루틴 속에서 나는 서서히 자신을 망각하고 잊었다.
한번은 아이가 물었다.
'아빠, 구름은 왜 움직여?'
왜 그런가..
아이가 알아듣기 어려운 '과학용어'를 배제하고 이해를 시키기 위해 아주 작은 어휘만으로 구름이 움직이는 이유를 설명해야 했다. 고로 아이와 많은 대화를 하고 함께 생각 할 수밖에 없게 된다.
아이는 모든 것이 처음이다. 뜨거운 냄비의 아찔함이나, 구름의 움직임도, 기어다니는 개미의 작은 발걸음도 모두가 생의 첫만남이다. 아이에게는 삶이 늘 살아 있는 수업이며 스스로 질문을 던지고 답을 찾아가고 있다.
아이를 보며 생각한다.
나의 질문은 언제부터 멈춰있던가. 언제부터 삶에 대한 호기심과 탐구욕을 잃었다.
삶을 이미 모두 다 아는 것처럼 지루해졌다. 그러나 다시 생각해보면 전혀 그렇지 않다.
아직도 모르는 것이 투성이다.
아이가 그것을 가르쳐줬다.
'다 알고 있다'는 오만이 삶을 지루하고 심심하게 만든다. 당장 자신의 손톱을 구성하는 원소들의 비율도 답하지 못하면서 '세상 모든 답을 알고 있다는 착각'에 빠져, '이번 시험지는 시시하네'하고 교만 떨고 있었다.
그렇게 무지하다가 언뜻 나조차 뜨거운 냄비 같은 것을 만질 때가 있다. 그리고 알게 된다. 나는 무지해서 용감했었구나.. 하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