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번을 재독하다가
결국 소장용을 구입했습니다.
'구의 증명'이라는 소설인데요.
블로그를 보니, 2024년 3월 20일에
전자책으로 리뷰를 남겼던 적이 있네요.
간략한 내용은 이렇습니다.
'구'라고 하는 남자 아이와
'담'이라고 하는 여자아이의
사랑 이야기 입니다.
아, 다시 말하자면
식인에 관한 이야기 입니다.
아, 다시 말하자면 이별에 관한 이야기 입니다.
소설은 매우 짧고 쉽게 읽힙니다.
군더더기 없이 이야기는 전개 되는데요.
풋풋한 청소년, 청년의 사랑 이야기였다가
분위기와 맞지 않게
그로테스크합니다.
그러나 그것이 잔혹성과 도덕적 파괴와는 분위기가 다른데요.
사랑하는 사람의 육신을 먹는 장면도
그다지 표면적 묘사를 하지 않습니다.
만약
너 때문에 내가 알코올 중독자가 된다면
너는 술병을 치우는 대신
내 술잔에 술을 따라줘야 해.
사랑이라는 것이 무엇인지 많이 생각하게 합니다.
어쩌면 그럴지도 모르겠습니다.
둘다 사랑의 표현이겠습니다만...
조금더 원초적고 표면적인 '원'이라도 채워주고 싶은 마음이요...
혹은
그런 부분이라도 채움을 받고 싶은 마음일지요..
소설의 마지막에는
'9와 숫자들'의 '창세기'라는 곡을 들었다는 이야기가 나옵니다.
소설을 완독하고 나면
'작가의 말' 페이지를 읽으며
유튜브에서 '9와 숫자들'의 '창세기'라는 음악을 들어봅니다.
댓글을 '쭉'하고 내려봅니다.
대부분이 소설을 읽고 넘어왔나 봅니다.
예전에 가수 '윤종신' 님이 했던 말이 있는데,
평범한 일상에 '이어폰'만 착용하면
세상이 모두 '뮤직비디오'로 바뀐다는 이야기요.
책을 읽을 때
가사가 있는 노래를 듣는 걸 좋아하지는 않지만
책의 분위기를 정확히 표현해주는 노래 같습니다.
개인적으로 좋은 책이라고 한다면
마지막 책장을 덮은 순간부터 영향을 끼치는 듯 합니다.
불현듯 책의 내용이 떠오르거나
삶의 가치관에 영향을 끼치거나
그런 책들이요.
몇번을 다시 읽다가 책을 구매했다는 것은
그 만큼 책을 덮은 뒤에도 생각이 많이 났다는 의미 입니다.
표면적으로는 '식인'이라는 소재일지 모르지만
책을 읽고나면 '식인'은 문학적인 장치일 뿐
그 이상도, 그 이하의 의미도 없는 것 같습니다.
책을 잔혹사고 무섭게 만들려면
괴기한 묘사를 덧붙이면 될텐데...
작가의 의도가 그것이 아니라는게 여실하죠.
개인적으로 느끼기에
책이 주는 메시지는
'존재'에 관한 이야기 같습니다.
존재를 '증명'하는 이야기죠.
저는 그렇게 느꼈습니다.
사랑을 했던 기억이나 존재
사람이 살았던 인생 그런 것들도
한 1000년이 지나서 '존재'를 증명할 수 있을까요?
시간이 한참 지나고 나면
혹은 공간을 한참 확장하고 나면
모든 것은 '존재'했다고 할 수 없을 만큼
찰라이자 점 같은 순간이겠지요.
그래도
존재했다고 인정하고 싶은 그 순간과 상대입니다.
그것을 어떻게 증명할 수 있을까요.
상대가 있었다는 것을요.
혹은
사랑이라는 것을요..
그것을 증명할 방법은 있을까요?
그렇다면
그것들은 과연 존재했던 것들일까요.
이상 너무 좋아서 재독 삼독을 넘어 소장을 하게 됐던
'구의 증명'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