붙잡으려 하지말고, 머물게 하라_근자열 원자래

by 오인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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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춘추시대, 초나라 섭공은 자신의 영지를 떠나는 문제로 고민하고 있었다. 성벽을 높이고 세금을 줄여도 백성들은 여전히 영지를 떠났다. 답답한 섭공은 공자를 찾아 물었다.




"어찌해야 백성들이 돌아오겠습니까?"



공자는 잠시후 답했다.



"근자열 원자래, 가까운 이들을 기쁘게 하면, 먼곳에 이들이 찾아옵니다."



이 말은 정치의 원리를 말하는 것 같지만, 삶의 원리를 더 닮았다. 떠나가는 것을 잡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그것은 관성을 타고 더 멀어져가며 다시는 돌아오지 않는다. 손에 쥔 모래처럼 막으려 하더라도 손가락 사이로 빠져 나가기 마련이다.



돌아선 이들을 설득하는 것은 비교적 어려운 일이다. 다만 이미 함께 하고 있는 이들을 즐겁게 하는 일은 쉬운 일이다.



서양의 스토아 철학자 에픽테토스도 이렇게 말했다.



"네가 통제할 수 있는 것 부터 다스려라."



멀리 있는 사람, 이미 떠나버린 시간과 사건, 멀어져 버린 마음.



이런 것들은 내가 통제할 수 없는 영역이다. 그것이 나와 함께 하고 있을 때 최선을 다해 살피는 것은 최선이겠으나, 그것이 멀어져간 뒤에는 미련을 버리고 남아 있는 것에 최선을 다해야 한다.



멀어지면 멀어질수록 그것을 통제하기가 얼마나 어려워지는가. 점차 멀어지는 그것을 좋은 마음으로 보내주고 가까이 있는 것을 기쁘게하면 멀리서 새로운 것들이 다가오기 마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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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 우주의 크기를 보자면 지름이 대약 930억 광년에 이른다고 한다. 여기에는 2조 개의 은하, 수천조 개의 별이 있다. 밤하늘을 수놓는 그것들은 여기와 지금을 아름답게 만들어 줄 수는 있지만 내가 그것들에게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그것들은 최소 930억년 전에 출발한 '환영'일 뿐이다. 한 천문학자가 말하길 우주에 떠 있는 수많은 별들 중 다수는 이미 사라진 별일 수도 있단다. '별'은 사라졌는데 별이 내뿜었던 '빛'만이 수억 광년을 날아와 마치 있는 것처럼 착각하게 한다.



밤하늘에 있는 별 중 가장 가까운 곳에 이르는 것만도 굉장한 힘이 들어간다. 그리고 그것이 사라졌는지 어쨌는지는 알 수 없다. 다만 가장 확실하게 존재하고 우리가 영향을 끼칠 수 있는 것은 어디에 있는가. 바로 '지금'과 '여기'에서 나와 함께 남아 있는 것들이 아닌가.



함께 하고 있는 것을 기쁘게 할 수 있는 가장 쉬운 방법은 무엇인가. '감사하는 마음'이다. 감사는 내가 가진 것을 풍성하게 만들고 없는 것을 바라보는 대신 이미 곁에 있는 것에 집중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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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적인 방송인 오프라 윈프리는 '매일 감사일기'를 쓴다고 고백한 바 있다. 그녀는 하루에 단 다섯 가지라도 감사할 일을 적는다. '멀리'에 있는 미래와 성공, 이미 떠난 '인연'과 '과거'가 아니라 지금 확실하게 존재하는 작은 순간과 존재, 사람들에게 감사한 마음을 갖는다.



어부는 바다에서 물고기를 잡을 때, 단지 '더 많이 잡는 것'에만 집중하지 않는다. 더 많이 잡는 것보다 중요한 것은 이미 잡은 물고기를 놓치지 않는 것이다. 어부는 새로운 맊시를 하면서 잡아올린 고기가 다시 빠져나가지 않도록 가두리 안에 안전하게 넣는 일부터 최선을 다한다.



우리 삶도 마찬가지다. 새로운 것을 얻는 것. 떠나간 것을 붙잡는 것보다 중요한 것은 이미 가지고 있는 것들이 흘러가지 않도록 하는 것이다.


이는 앞으로 나에게 다가올 '미래'나 '성공', 이미 지나간 '과거'와 '인연'이 덜 소중하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어쩔 수 없다'는 것을 인정하자는 것이다. 아직 오지 않은 것들과 나를 스치고 지나간 것들 역시 매우 소중하다. 다만 그것은 내가 어찌할 수 없는 통제밖의 것들이다. 중요한 것은 나의 통제권에 있는 것들에 대해 집중하는 태도다.



니부어 목사는 이렇게 기도했다.



"바꿀 수 있는 것을 바꿀 용기, 바꿀 수 없는 것을 받아들이는 평온, 그리고 그 둘을 구분할 지혜를 주소서"



이 기도는 근자열 원자래와 크게 다르지 않다.



가지고 있는 것에 소중히 해라. 그러면 떠나려던 인연도 다시 마물고, 시쳐 지나가려던 기회도 발걸음을 멈출 것이다.



결국 삶의 지혜는 멀리를 향해 손을 뻗는데 있는 것이 아니라, 지금 내 곁에 있는 것들을 기쁘게 한는데에서 출발한다. 그 작은 기쁨이 쌓여, 언젠가 멀리 있는 것까지도 자연스럽게 다가오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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