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나들이_별이 내리는 숲 도서관

by 오인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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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마트워치에 표시된 기온을 보자니, 무려 35도다.



밖이 나가기가 무서운 건 이제는 극한의 추위가 아니라 더위인 듯하다.


아이들과 매주 수요일에 다니던 도서관 일정을 일요일로 변경했다. 이유는 단순한데 아이들이 학교를 마치고 돌아오는 일정이 꽤 들쑥날쑥해졌다.



학년이 높아지면서 아이들이 친구를 사귀기도 하고 친구와 놀이터에서 놀다 오기도 한다. 그러면 1시 귀가는 거의 지켜지지 않는다. 2학년 2학기 반장 선거에서 두 아이 모두가 고배를 마셨다.


반장은 되지 않았지만 역시 학교에서 '정리'를 담당하는 '깔끔부장'인가, 뭔가를 맡는다고 한다. 내 생각에는 그냥 '당번'이 하던 일 같은데 '부장'이라는 직책으로 학교 끝나면 거의 항상 정리를 하고 오는 모양이다.



어쨌건 토요일 하루는 아이에게 무제한 '마인크래프트' 시간을 허락해 줬다. 일주일에 유일하게 '패드'로 게임을 허락하는 날을 '토요일'로 잡았다. 본래 '일요일'이었다. 다만 하율이가 패드를 많이 했더니 밤에 잠이 오지 않는 것 같아서 '토요일'로 바꾸자고 제안해서 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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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은 무제한이지만 결코 실제 무제한은 아니다. 일단 매번 30분씩 알람을 맞춰 놓고 쉬어야 한다. 30분이 너무 짧다며 불평을 하던 아이들은 잠깐 쉬는 시간에 인형놀이나 그림그리기를 하다가 '게임'을 잊곤 한다. 그밖에 반드시 해야하는 일을 중간 중간에 넣어 두었다.



가령 일기쓰기, 학교 숙제하기, 집안 청소하기, 빨래 접어 놓기, 이불 정리 하기 등 그렇다. 게임에 몰입하면 중간 중간에 이런 잡일을 핑계로 30분에서 1시간씩 쉬어야 한다. 아침에 1시간, 점심에 1시간, 저녁에 1시간 식사 시간에도 게임은 할 수 없다. 샤워하는 시간과 학교 준비하는 시간을 빼고 나면 실제로 아이들이 게임을 할 수 있는 시간은 4시간 안쪽이 되는 것 같다.



본래 결코 게임이나 영상 매체에 노출 시키지 않고자 했는데 사실상 아이를 길러보는 그것이 말처럼 쉽지 않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그래도 나름 음지의 무언가를 제도권에 편입시키고자 하는 정부정책처럼 어느정도는 인정하고 끌어 앉고 가야 한다는 사실을 받아 들이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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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과 도서관을 갔다. 제주에는 '별이내리는숲'이라는 어린이 도서관이 있다. 평일에는 여느 도서관과 다름이 없다. 다만 주말이 되면 이곳은 '도서관'과 '키즈카페' 그 경계 어느 곳과 같다. 아이들은 뛰어 다니고 적잖은 소리로 대화한다. 그 분위기에서 책을 읽는 아이와 읽어주는 부모가 가득하다.



바로 옆에는 '학생문화원'이 있다. 학생문화원 지하 1층에는 1시부터 '플레이 팡팡'이라는 곳이 열린다. 오락기, 당구대, 탁구대, 노래방 등이 있다. 아이들과 3시30분까지 놀았다. 땀이 삐질삐질 날 만큼 놀았다.



탁구라는 것을 처음 쳐 본 아이들이다. 생각해보니 누군가의 삶에서 '처음'을 함께 한다는 것은 참 경의로운 일이다. 사람은 '처음'을 잊지 못한다.


성인이 되어서도 '처음'인 것들이 참 많다. 처음과 둘, 셋이 점차 반복되고 그런 것들은 관성으로 계속하게 된다.


나중에 어떤 것들은 타성에 젖어 이유도 모르고 하게 되는 경우가 있다. 그러면 '처음'과 다음 몇번을 제외하고 모든 경험은 기억에서 사라진다.


어떤 처음은 불분명하고 모호해서 기억이 나질 앉지만 대부분의 인상 깊은 첫기억은 그 다음이 모든 순간을 더한 것보다 강하게 머릿속에 각인된다.



'딸'이 아니라 '어떤 누군가'의 머릿속에 '강한 강인'을 심어주는 행위는 얼마나 경의로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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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께서 예전에는 '바둑'을 많이 두셨는데 연세가 드시고 나서는 '벗'들과 '당구'를 즐기신다. 솔직히 고백해보자면 나의 경우에는 '당구장'을 태어나서 딱 한번 가 본 것 같다. 그것이 앞서 말한 '처음'의 기억이다.



친구와 성인이 된 후 '당구장'이라는 곳을 갔다. 규칙도 모르고 방법도 모른 상태에서 쭈뼛쭈뼛 거리다가 돌아온 기억이 있다. 그리고 그 뒤로 당구장을 가 본 적은 없다. 이후 해외에서 '바'에서 일할 때, 그것에 당구대가 있었다. 그때 몇번 큐대를 잡아 본 것이 마지막으로 나는 사실 당구에 대한 기억이 거의 없다.



할아버지댁에 놀러가면 할아버지가 항상 보시는 당구 채널과 할아버지의 취미가 당구라는 사실이 아이들에게 인상이 깊었던 듯하다. 아이들은 제법 그럴싸한 자세를 취하며 당구를 친다. 처음에는 어설프다가 나중에는 꽤 규칙 지킨다.



아무리 당구를 즐기지 않는다고 해도 나 또한 흉내는 낼 수 있기에 아이에게 모습을 가르쳐주고 규칙을 알려 주었다. 대략 한시간도 넘게 아이들이 놀가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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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정도 시간이 지났더니 한 아버지와 아들이 당구대로 들어왔다. 아버지는 아들에게 꽤 열정적으로 방법을 설명한다. 시범도 보여주고 시선과 각도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 파지법이나 힘조절, 맞춰야 하는 위치도 설명한다.


우리 딸이랑 비슷한 또래의 아이가 얼마의 수업을 듣고 꽤 잘친다. 어쩐지 '아빠 역할'로써 순식간에 2등으로 밀린 모양새다.



거기에는 게임기도 있고 노래방도 있다. 어린시절 오락실도 즐기지 않았다. 오락실을 갔던 기억도 다섯번은 되나, 싶다. 도대체 뭐하고 지냈는지 알턱이 없다.



40대가 되면 어릴 때 더하지 못한 취미를 즐길 수 있다. 가령 어린 시절에는 며칠 용돈을 모아야 먹을 수 있던 '빼빼로'가 그렇다. 어린시절 지금도 기억에 남는 하나는 일주일 용돈 1000원이었다는 사실이다. 1000원이면 200원짜리 빼빼로를 하루에 하나씩은 먹을 수 있었다. 칸쵸는 300원이었는데 칸쵸를 먹기 위해서는 하루 빼빼로를 건너 뛰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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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이유로 '빼빼로'를 잔뜩 사놓고 먹는 사람도 있단다. 재력이 제법된 어른 아이는 당시 못했던 것들을 마음껏 할 수 있는 나이가 됐다.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보니, 나의 경우에는 그렇게 단절했던 취미가 없었다.



만화책, 오락실, 당구도 마찬가지고...



뭐.. 어른이 되면 실컷해야지! 했던 그런 결핍의 경험이 없다. 결핍의 경험이 없다는 것은 '풍족'해서가 아니다. 깡촌에서 자라난 나의 집은 감귤저장창고를 보관한 판자촌 같은 집이었다. 그런데 결핍의 흔적이 없다는 것은 어떤 의미에서 꽤 유복한 가정 환경이 있는 것 같다.



흔히 말하는, 가정적인 아버지, 현명한 어머니.. 뭐 그런 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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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시절에는 그런 가정의 모양이 일반적이라고 생각했다. 고등학교를 가면서 가정의 모양이 꽤 제각각이라는 사실을 알았고 성인이 되면서 생각보다 내가 누린 어린 시절이 유복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결핍은 상대적인 감정이다. 모두가 없을 때는 결핍을 느끼지 못한다. 초등학교 시절, '이웃사촌'이라는 말이 교과서에 나왔을 때, 왜 우리집은 이웃사촌이 없냐고 어머니께 이사를 가자고 졸랐던 기억이 있다.



학교를 끝나면 친구들과 놀고 싶고 저녁이 되면 그냥 불켜진 이웃집으로 누군가 함께 하고 있는 심리적 위안을 갖고 싶었던 것 같다. 그러나 결국 내가 군대를 갈 때까지 우리집은 이웃사촌 없는 '촌'이라기보다 '산'에서 나오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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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저런 기억이 아이를 키우면서 새록새록 떠오른다. 어느날 갑자기 뿅!하고 마흔이 된 것 같은 '자아'에게 '아이'는 너의 유년시절을 기억하라, 하고 상기 시키는다.


이 나이에 나는 무슨 생각을 하고 있었을가, 생을 절반정도 살게 됐을 때, 아이를 가지면서 지난 반쪽의 삶을 되돌려 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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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명한 것은 육아를 하는 것은 '삶을 두번 살 수 있는 기회'이면서 내가 놓친 오답을 정리하는 오답노트를 학습하는 시간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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