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자 할아버지가 말한 '무위자연'이란?_무위자연

by 오인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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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자철학에 무위자연(無爲自然)이 있다.


여기서 '무위(無爲)'는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라는 의미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은 '게으름'과 다르다. '인위(人爲)적'으로 하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한다. 사람의 행위에는 '의도'가 분명하게 들어난다. 그것을 하지 말라, 즉 '무위(無爲)'하라는 것이다.



'무위(無爲)'는 '자연(自然)'과 동의어나 다름없다. 흔히 말하는 '자연(自然)'은 '나무, 풀, 구름'과 같은 것들과 다르다. 여기서 말하는 '자연(自然)'은 '스스로 자(自)'에 그러할 연(然)을 사용한다. '스스로 그러함'을 말한다.



억지로 꾸며내거나 의도를 갖고 억지로 만들어 내지 않고, 사물이나 사람, 세상이 본래의 모습 그대로 존재하는 상태를 말한다.



노자가 말하는 이상적인 삶의 방식은 '인위적 강제'를 '제외'한 삶을 말한다. 그저 모든 것을 '본래'의 '순리'에 두고 그 흐름을 따르는 것이다.



어찌보면 굉장히 무기력하고 회의적인 듯 보인다. 다만 '노자'의 사상은 '무기력'과 '회의'와 전혀 다른 방향에 서 있다. 되려 굉장히 능동적이다. 방치하고 포기하는 태도가 아니라 '사물'과 '사람'의 본래적 흐름에 민감하게 주의를 기울이고 그 흐름에 맞춰 가는 적극적이고 능동적 선택이다.



인간의 의도가 과잉 투영되면 왜곡과 충돌은 불가피하다. 모든 존재는 스스로 가진 고유한 자율성과 리듬이 있다.



운동을 마치고 돌아오는데 그런 생각이 들었다. 예전에 군에서 행군하던 시기에 출발과 도착지점에 대해서 말이다.


이 이야기는 '노자'철학과 닿으면서 꽤 멀다. 아마 이야기를 중간까지 들어보지 않는다면 '당최 노자로 시작해서, 무슨 소리를 하는거지', 할 수도 있겠다.



군대에서 행군을 할 때 였다. 나름 꽤 무거운 군장을 둘러메고 천근 같은 군화와 만근 같은 K2 소총, 머리를 짓누르는 군모를 써서 첫 걸음부터 지쳐 마땅해야 한 행군이었다.



20대 초반 젊은 남성들이 모여 있어서 그랬는지, 당시 행군 첫 걸음은 '소풍' 나가는 듯 했다. 대열을 맞춰 걸어 갔으나 가장 마음 맞는 이와 함께 열을 맞췄다. 이유는 단순히 걸어가는 것이 '심심'해서 였다.


'노래'를 부르는 사람, 지난 이야기를 하는 사람, 농담하는 사람, 서로 웃고 떠들면서 행군을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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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를 걷다보니, 점차 수다의 양이 줄어든다. 다시 얼마를 걸어간다. 모두가 입을 다물고 풍경을 바라본다. 다시 얼마를 걸어가니 풍경을 바라보는 이도 없다. 모든 이들이 앞사람의 군화발을 쳐다 볼 뿐이다. 그 다음 기억 다른 전우들이 무엇을 하고 있는지 기억에 나질 않는다.



다음 나의 시선은 앞 전우의...



'왼발... 오른발... 왼발... 오른발... 왼발... 오른발....'



그랬으니까...



처음에는 지나간 과거 생각, 부모님 생각, 가족과 친구 생각, 살면서 했던 실수, 자신에 대한 자책, 기뻤던 일, 슬펐던 일... 모든 걸 다 끄집어 낸다. 그러다 어느 순간이 지나면 내 인생에 떠올릴 만한게 더 없나..., 하고 메모리를 뒤적거리다가.. 아는 노래를 다 불러본다. 마음속으로..



그렇게 마음속으로 노래를 다 불러 본 뒤에는, 봤던 영화나 드라마의 어떤 장면을 머릿속으로 그려본다. 그리고 이런 저런 공상...



그 뒤에는 점차 몸속의 피가 '머리'에서 '다리'로 내려오면서 머리는 '공'하게 된다. 그냥 '걷는다'를 제외한 모든 것이 사라진다.



'나'도 사라지고 그냥 '걷는다'만 남는다.



그 상태가 되면 스트레스나 고민, 이런 것도 억지로 끄집어 내려해도 떠오르지 않는다.



사람마다 차이는 있겠지만 정신력과 체력은 같은 에너지를 사용한다. 고로 하루 에너지를 소모하지 않으면 불필요한 생각이 많아진다. 생각이 많아지면 꽤 불행한 생각으로 넘어가는 경우가 많다. 그리고 나에게 속삭이는 굉장한 유혹들도 모두 그런 생각에 기인한다.



고로 가장 좋은 것은 '결정'을 제외하고 '생각'을 지우는 것이다.


생각을 지우는 가장 좋은 방법은 '체력'을 소진하는 것이다.


'체력'을 소진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운동'인 것 같다.



이것이 노자의 '무위자연'과 무슨 상관인고 하겠지만 행군의 과정이 '무위'와 길을 같이 한다.



행군은 '걷는것'이다. 행군을 하기로 했으면 '걷는것'에나 집중하면 된다. 그리고 그것을 제외한 모든 것을 지워내야 한다. '무위'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



얼마나 더 가야하지,


다리가 아프다,


나는 예전에 왜 그랬을까,


지금 포기하고 조금 쉴까,



모든 것들이 위(爲)에 가깝다. '위'라는 것은 '위조하다'나 '위하다'에서 쓰이다 싶이 '행동을 하다'라는 의미를 갖는다. 거기에 '자연'을 합쳐 '무위자연(無爲自然)'을 완성하면 '본래의 자연스러움'을 두고 나머지는 모두 하지말라,는 의미가 된다.



자연은 당위성인가, 자연은 있는 그대로의 상태, 즉 사실을 말한다.


당위는 마땅히 그래야 한다는 의도나 의지를 말한다.



'왜 해야 하는가', '하면 무엇이 좋은가'. 이런 잡다한 것은 '당위성'에서 출발한다.


일반적으로 자연은 사실의 영역에 속한다. 그 자체로 그러하다일 뿐, 어떤 규범이나 명령을 전제로 하지 않는다.



노자가 말하는 '자연'은 무작위처럼 보이지만 '스스로 그러함' 자체에 그러해야 하는 것은 그러해야 한다는 '당위성'이 존재한다.



물은 아래로 흐르고 불은 위로 올라간다. 즉 이는 모든 순리에는 자연스러움과 당위성이 존재한다. 여기서 당위성에는 '인간의 해석'이 들어가서는 안된다.


물이 왜 아래로 흘러가야 하는가, 라는 질문은 배제 해야 한다. 그저 그렇게 해여야 하는 당위성과 그렇게 하기에 그냥 둔다는 순리라는 모순이 역설로 물려 있다.



다시 군대 이야기로 돌아와서 출발점과 목적지가 정해져 있는 상태에서 또한 군이라는 피치 못하는 시스템 내에서 출발지에 서 있는 나는 일정 순간에 반드시 '목적지'에 서 있어야 한다. 그것은 '스스로 그러함' 즉 자연적 당위성이다.


거기에 나의 '당위성'인 해석은 들어가서는 안된다. 그 외에 모든 것은 '무위'해야 한다.



실제로 체력이 떨어지면 정신적 에너지는 '해석'을 하지 못한다. 그러면 '무위'하게 된다. 그러면 해야하는 본래의 목적을 제외하고 아무것도 하지 않고, 생각하지 않게 된다.



그런 의미에서일까.



덜 먹거나 혹은 먹었으면 운동으로 에너지를 소모하고 자는 것이 어쩐지 가장 '무위자연'을 실천하는 일이지 않을까 싶다.



운동을 하고 덜 방전된 체력을 가지고 하게 된 '시잘데 없는 공상'을 이렇게 글로 풀어 놓고 잠에 들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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