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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생이 언제나 정답은 아닌 이유_희생의 가치에 대해서

by 오인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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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피엔스에게는 굉장히 독특한 습성이 있는데 바로 '내 희생의 댓가'가 상대에게 '만족'을 줄 것이라는 기대다.



가장 흔한 경우라면 '기근, 가뭄, 전염병, 전쟁, 홍수' 같은 천재지변이 발생했을 때다. 사람들은 이런 경우에 신의 분노를 달래기 위해 '가장 순수하고 귀한 존재'를 제물로 바쳤다. '신'이 그것을 요구했다거나 '필요'했다는 증거는 어디에도 없다. 그저 스스로에게 가장 중요한 것을 내어 놓으면 상대가 그 '희생'의 가치를 알아줄 것이라는 기대가 있기 때문이다.



이게 왜 특이한고하면, 사실 나의 희생은 그저 '희생'일 뿐, 상대에게 그 어떤 생산적인 이득을 가져다 주지 않는다. '공리적인 입장'에서 누군가의 '희생'은 아무런 실질 효용을 창출하지 못한다. 되려 '집단 전체'로 보자면 그저 '마이너스'가 되는 상황일 뿐이다. 그럼에도 우리는 꾸준히 자신을 '생채기' 내어 상대를 만족시킬 수 있다는 오만한 이기적 사고방식을 갖는다.



"'당신의 이득'이 무엇인지 모르겠지만, '나의 희생'으로 만족하시오."



이런 이기적인 희생은 꽤 작은 부분에서도 온다. 사랑하는 사람이나 가족, 자녀와 부모 사이에서도 언제든 발생한다.



고대 카르타고에스는 '몰록 신'을 위해서 아이를 불태워 바치는 풍습이 있었다. 무언가도 될 수 있는 어린 아이, 무언가도 잉태할 수 있는 젊은 처녀를 태워 죽이는 방식으로 신에게 자신의 충성을 다 했다.


그 역사의 흔적은 파편화 되어 현대 사회에서도 역시 적용되는데 '나의 시간, 욕망, 자유, 자존감'을 제물로 받쳐 상대에게 바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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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만 생각해보면 나 역시 비슷한 사고 방식을 가진 채, 젊은 시기를 살았던 듯 하다. 가령 상대가 '미안해 할 정도'로 스스로를 갉아내면 어느 순간, 상대와의 위치 싸움에서 꽤 유리한 고지에 서게 되는 경우가 있다.



급여보다 더 많이 일해 버린다거나, 할 몫을 더 많이 챙겨 간다거나, 시키지 않은 일까지 더 함으로써 상대의 '죄책감', '미안함' 때로는 '상대에게 중요한 사람'이 되어 누구도 신경쓰지 않는 심리적 '우월감'을 챙겨가곤 했다.



이런 희생의 습관은 때로 꽤 긍정적인 결과를 만들어 내기도 했는데, 고대인들이 아이와 처녀를 끊임 없이 불태워 죽였던 것처럼 나또한 그 공식에 매몰되어 더 많은 시간과 감정, 경제적 능력을 소모하도록 했다.



다만 어쩌다 공감능력이 결여됐거나 이를 이용하는 '임자'를 만나게 되는 경우가 있다. 그들의 경우에는 '미안함'도 없고, '죄책감'도 없고, 때로는 '중요한 사람'보다는 '쓰다 버릴 소비적 인간'이 필요한 사람을 만나게 되는 경우가 있다.



그 상황에 당면하면 나는 상대가 알아줄 때까지 내 모든 것을 갈아 넣었다. 시간이면 시간, 열정이라면 열정, 때로는 내가 좋아하거나 사랑하는 모든 것들도 싹다 갈아 넣으며 '언제까지 네가 미안해 하지 않을 수 있나 보자'라는 얼토당토 않는 오기를 갖곤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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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과는 단순하다. 서서히 소모되는 시간이 길어지면 결국 나는 '매몰비용의 오류'에 빠져 헤어나오지 못하고, 그간 쌓아올렸던 긍정적인 결과물을 다 토해냈다. 마치 어디선가 많은 꿀을 물어서 모아놓고는 양봉업자에게 다 토해놓는 듯.



돌이켜 생각해보면 자신을 파괴하는 방식의 '희생'은 상대에게 '만족'이라는 착시를 불러 일으킬 수는 있지만 본질적인 면에서 완전히 잘못됐다. 사실 '기근, 가뭄, 전염병, 전쟁, 홍수' 이런 것들은 때가 되면 일어났다가 또 때가되면 사라지기도 하는 일이다. 거기에 '희생양'을 얼마나 더 불태워도 결과는 달라지지 않는다.



'내 희생의 가치'를 분명 상대도 알아 줄 거라는 무지에서 오는 '바람'이 스스로를 병들게하고 있지 않았는가 생각해볼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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