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나라 장수가 창과 방패를 동시에 팔면서 시작됐다는 '모순'은 대체로 '나쁘다'고 여겨진다. 무엇이든 뚫는 창과 무엇이든 막는 방패를 동시에 판다는 점에서 양립할 수 없는 두 무언가가 부딪친다.
어쩌면 '멍청'하거나 혹은 '나쁜 것'으로 알고 지내던 '모순'에 대한 개념이 깨진 계기가 있다.
'법륜스님'의 강연에서다. 한창 어려운 시기를 겪고 있을 때, '법륜스님'의 강연을 찾아보곤 했다. 많은 질문과 대답이 오가는 와중 스님은 명쾌한 해답을 즉각적으로 내뱉으셨다. 말 그대로 즉각적인 대답이 이름만큼 '즉문즉설'다웠다.
그렇게 한참을 영상을 찾다보니 의아한 점이 있었다. '스님'의 해결책에 모순이 있다는 점이다. 스님은 한 어머니와 딸의 갈등에 대한 질문에 답을 하셨다. 어머니의 행동이 잘못됐다는 이야기다. 고개가 끄덕여질 만큼 논리적으로 수긍될 해결책이었다.
'그렇구나'
하고 얼마 뒤 다른 영상을 보게 됐다. 그 영상에서는 틀림없이 비슷한 상황임에도 '딸'의 행동이 잘못됐다는 말씀을 하셨다. 그밖에도 워낙 질문하는 사람이 많다보니 상황은 때로는 새롭기도 했지만 대체로 비슷했고 겹치는 경우고 많았다.
남편와 아내, 부모자식, 직장, 연인, 진로...
사람들이 다 비슷한 고민을 하고 살고 있구나, 생각했다.
어쨌건 여러 질문은 모순된 해결책을 만들어 낼 수 밖에 없었는데 스님의 반응은 너무 당연했다.
결과적으로 '모든 이들의 입장을 관통할만한 진리에 가까운 절대 답변이 없었다. 올바르게 서기 위해서는 왼쪽에 선 사람에게는 오른쪽으로 움직이라고 말하고, 오른쪽에 선 사람에게는 왼쪽으로 움직이라고 말해야 하는 것처럼 스님의 답변은 매번 '오른쪽, 왼쪽'하며 바뀌어 갔지만 그 모순이 결코 모순처럼 보이지는 않았다.
그 뒤로 나 또한 '모순'을 받아들이고 때로는 즐기기로 했다.
'나의 내면 깊은 곳'으로 들어가면 저도모르게 가지고 있는 편견같은 것들이 있다. 그것이 왼쪽이든, 오른쪽이든 쏠려 있다는 느낌이 강하게 들면 되려 반대방향을 '자극'하여 올바르게 놓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정치적 성향을 굳이 밝힌 적은 없지만 거의 수년간 쌓아 온 나의 블로그 글에는 '좌' 혹은 '우'에 관한 글들이 다수 있다. 어떤 경우에는 '성경', 어떤 경우에는 '불경', 어떤 경우에는 '사서삼경'을 말했다. '환경과 기후'에 관한 이야기에서도 '부정적' 혹은 '긍정적'인 글을 쓰기도 했고 그밖에 다양한 견해에 두가지를 모두 썼다. 이 둘은 모두 모순됐지만 그냥 꾸준하게 썼다.
대부분의 글이 '모순'인 경우가 많아 사실상 내 말을 내가 반박할 수 있는 자료는 '블로그'에 너무나 많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이 양립할 수 없는 두 쪽이 사실은 '사실'의 영역보다는 '주장'에 영역에 가깝기 때문에 정답이 없다는 것.
코끼리가 '동물'이라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지만 코끼리가 '위험'하다는 의견에는 '그럴 수도,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코끼리는 동물이 아니다라고 말하는 것은 분명 옳지 않지만, 코끼리는 위험할 수도 있고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는 것은 명백히 모순은 아니다.
우리 모두가 맹인인데 코끼리를 얼마나 정교하게 더듬던 그 모양이 어떤지, 어찌 알 수 있겠는가, 어쩌면 코끼리 다리통을 만지던 내가 가끔 코끼리 코를 만지게 되는 상황이 올지도... 모두가 진실을 말하면서 모순적인 삶을 사는 것은 아닐까.
사회 대부분이 이처럼 '사실'과 '진리'를 가지고 고민하고 있지 않기 때문에 대부분의 인간 사회 문제는 어느쪽도 정답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또한 실제로 의뢰가 들어온 변호사가 '어느 의뢰인'의 입장에서도 변호를 잘해야 능력있는 변호인이 되는 것처럼 가장 중요한 것은 하나의 진리를 고수하는 것이 아니라 '어느 편에서도 의견을 낼 수 있는 능력을 기르는 것이 중요한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