걸어가는 길목에 '바위'가 있다.
가던 길에 '바위'가 왜 있게 됐는지, 바위를 만나게 된 '나'에게는 어떤 잘못이 있는지, 그걸 따지고봐야 아무런 의미가 없다. 우리는 알고 있다. 말하지 못하고 의도도 갖지 않는 자연 현상을 대하는 기본적인 태도다.
그저 '저기 바위가 있구나'하고 돌아가면 그만이다.
따져 묻거나 탓한다해도 '그것은 무응답의 상태'로 머물고 있을테니까,
마찬가지다. 어떤 장애를 만났을 때, 신체적 장애, 정신적 장애, 환경적 장애.
그 대상은 탓하거나 따져 물을 대상이 아니다.
'아, 저게 저기에 서 있구나' 하고 그저 인지하고 갈 길을 가면 된다.
원활한 진행을 방해하는 무언가를 만났을 때, 실패, 실수, 방해를 만났을 때.
'좌절'이나 '탓'은 무의미해 보인다.
'추상적 개념'의 '방해물'에 우리는 왜 엄청난 의미를 부여 하는가.
그것은 해결책이 아니다.
해결책이란 '아, 여기 바위가 있구나'하고 넘어가던, 돌아가는 것이다.
목적지는 항상 직선으로 도달하지 않는다. 도착하기 위해서 때로는 '좌회전'과 '우회전'을 해야 하고 어떤 경우에는 뒤를 돌아 가야 한다.
방향을 알면 그저 주어질 길을 갈 뿐이다. 가는 중에는 빨간불 신호에 걸려 멈춰도 그것이 영원을 의미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고 있고, 때로는 목적지를 등지고 걸어간다고 하더라도 장기적으로 목적지로 향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제주에서 서울로 가기 위해서는 끊임없이 북쪽으로 가는 것이 정답이겠지만, 실제로 차를 타고 북쪽을 등지기도 하고 서쪽으로 가기도 하며 남쪽으로 걷기도 한다. 그래도 그것이 목적지에 다가간다는 느낌을 잃지 않는다.
목적지와 멀어지거나, 느려져도 조급해지지 않는 이유는 그 모든 행위가 목적지에 안전하게 도달할 수 있는 과정 중 하나라는 사실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목적지와 멀어지게 하는 모든 방해물과 길들도 따지고보면 중간 단계일 뿐이다.
목적지까지 존재하는 수많은 신호등의 색깔에 의미를 부여하면 멀리 가지 못한다. 그저 나아가고 있다는 인지만 가지고 묵묵히 향해 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