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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가장 아껴 읽었던 책_나는 북경의 택배기사입니다

by 오인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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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병렬 독서를 하면서 가장 아껴 읽던 책, '나는 북경의 택배기사입니다'를 완독했다. '책'의 관전 포인트는 '중국이라는 국가', '새로운 직업', '다양한 관점'이다. 딱히 중국에 '로망'이 있는 것은 아니고, '택배기사'에 대한 관심이 있는 것도 아니다. 다만 책의 장점이 '간접체험'이지 않겠나, 말그대로 '임의 선택'한 책이다.


한 권의 책을 완독하려면 최소 다섯 시간에서 아홉시간까지 걸린다. 하루가 24시간, 자는 시간 8시간을 빼면 18시간 중 9시간을 다른 삶으로 채워 산다는 것은 '나'라는 본체와 '타인'이라는 '복제'의 '간접체험'을 나눠 사는 것이다.


삶을 아무리 다채롭게 산다해도 직업과 나이, 경험은 경험에 한계가 있다. 한 권의 책을 흥미롭게 읽고나면 다른 한 삶의 농축된 진수를 여과없이 삼킨 기분이 든다.



어린시절부터 '촌'에서 자랐다. 내가 살던 곳은 읍단위 보다 낮은 동이었다. 초등학교 시절 친구들은 학교 근처에 있는 동에 사는 아이가 멀리 떨어진 동에 사는 아이를 놀리는 경우가 있었다. 고등학교 올라가서는 놀랍게도 나는 나를 놀리던 더 넓은 '동'의 아이와 '한 묶음'이 되어 '시' 단위의 아이들의 놀림거리가 됐다. 나이가 들면 나중에는 '제주'로 묶여졌고 해외로 나갔을 때는 '동양인'으로 묶였다. 결과적으로 지위는 무대를 옮길 수록 점점 넓어졌고 넓어질수록 나를 수식하는 단위가 함께 넓어졌다. 그런 의미에서 원초적으로 시골에 대한 향수가 있다. 시간이 지나 이제 대한민국에서 '촌'과 '도시'의 격차가 거의 나지 않는다. 내가 살던 어린 시절에는 KBS1과 KBS2, MBC. 이렇게 세 채널이 나오는 집으 주변에 흔했다. 사촌의 집에 갔을 때, 거기에는 SBS가 나온다는 이야기를 듣고 수 킬로미터도 떨어지지 않은 촌 동네에서도 전봇대가 들어가느니, 마느니 하는 차이로 아주 큰 문명의 차이를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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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이라던지 미국에 대한 환상은 없다. 다만 동남 아시아라던지 아프리카에 대한 환상은 가지고 있다. 태국이나 베트남을 갔을 때, 내가 눈길을 둔 곳은 '관광지'가 아니라 '관광지'로 이동 중 보여지는 '허름한 시골집'들이었다. 어린시절 '감귤창고'를 개조하여 만든 주택에 살면서 '벌레'와 '곰팡이'를 만나는 것은 꽤 흔한 일이 었다. 동네에는 아파트가 딱 두채 있었는데 그 아파트에 사는 친구네 집에 '바퀴벌레'가 나왔다고 호들갑을 떨던 모습이 충격이었다. 어쨌건 그런 향수를 가진 채 지금도 살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시골 혹은 개발도상국 사람들이 살아가는 모습은 나의 어린 시절 같고 어쩌면 같은 언어를 사용하는 대한민국의 아무개 보다 더 많은 것을 공유하고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



흔히 말하는 '개발도상국'이나 '성공한 사람들'이 쓰는 에세이는 우리네 삶과 너무 거리가 멀다. 책에서 말하는 '도전정신', '진취적인 삶'. 이런 것은 꼭 대단한 사람들의 삶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택배 회사를 옮기면서 면접을 앞두고 있을 때, 자전거 가게를 하면서 고객을 대할 때도 비슷한 용기가 필요하다.


'빌게이츠', '워렌버핏' 등의 대단한 이야기를 할 때, 대부분 그들의 얼마나 대단한 사람들인지에 대해 초점을 맞추고 있다. 다만 그들이 만약 소말리아 내륙에서 태어났다면 과연 그 위대한 업적을 할 수 있었겠는가, 반문할 수 있다.



그들이 미국에서 태어나서 미국이 위대해진 것이 아니라, 미국이 가지고 있는 환경의 축복을 그들이 받고 있는 것이다. 대단한 이들의 업적과 용기, 선택과 지혜를 폄하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분명한 것은 모두가 각자의 위치에서 꽤 대단하고 진취적인 삶을 선택하는 경우가 많다는 것을 말한다.


예전 내가 일하던 곳 사장님은 '자리가 사람을 만든다'라는 이야기를 많이 하곤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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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 로마군은 수천 명 단위로 군단이 움직이곤 했다. 전투 중에 그러다 지휘관이 죽게 되면 당장 누구라도 그 상황에서 명령을 내려야만 하는 위치에 놓이게 된다. 그때 하층 귀족 혹은 평민 병사가 현장에서 지휘를 맡는 경우가 간혹 있었다. 그들은 공을 세운 뒤, 제국 최고의 장군으로 임명되곤 했다. 여기에는 '노력'과 '능력'보다는 그저 설명할 수 없는 '운'이라는 것도 한몫으로 크게 작동한다.


러시안 룰렛 게임을 하다가 우연히 살아남은 한 사람이 자신의 승리에 대한 강연을 하는 것이 의미가 없듯. 어떤 의미에서 인간 사회는 크게 대단하거나, 크게 못나지 않은 적정한 수준의 무언가들이 우월함과 열등감을 주거니 받거니하며 살아가는 세상이다.


고로 '대단한 사람의 성공담'을 읽는다고 대단한 사람이 되는 것은 아니며 그 '대단한 사람' 역시 '대단한 사람'의 '성공담'을 읽고 '대단한 사람'이 된 것도 아니다. 그들 역시 평범한 집안에서 평범하게 자신의 몫에서 최선을 다하던 '평범한 사람'일 뿐이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가 알아야 하는 것은 '평범한 사람들의 많은 이야기들'이지 않을까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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